유리천장 위엔 지붕이 있었다

교수가 돼도 여전한 여성 연구자의 고달픔

  교수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부딪힐 때마다 무기력을 학습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힘들게 살아남아 교수가 된 이들의 삶은 어떨까. 한 명의 연구자 대신 ‘여성’교수로 호명되는 학계에선 이들은 수많은 고정관념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성교수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려움을 짚었다.

여성스러운 연구와 교육이 따로 있을까

  지난해, 서울대 공대 전기정보학부는 73년 만에 첫 여성교수를 임용했다. 처음으로 여성에 한정한 채용공고를 낸 결과였다. 당시 학부장이던 이병호 전기정보공학부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교수를 일부러 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며 ‘직전 채용공고의 지원자 12명 중 여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여학생 비율이 15%가 넘는 공대의 여성교수 비율은 4%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건설환경공학부와 조선해양공학과에는 아직 여성교수가 한 명도 없다. 

  공학과 같이 여성연구자의 비율이 낮은 학문 분야일수록 여성교수는 여학생들에게 뚜렷한 역할모델이 된다. 2019년 서울대 여교수회가 진행한 ‘여성교원의 대표성과 지위변화’ 연구에 참여한 G 교수는 여성교수로서 자신이 여성 학문후속세대의 ‘징검다리’ 역할이 됐다고 말했다. 소속 학과 학문후속세대의 95%는 여성이었지만 여성교수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기웃기웃하며 나이는 몇이나 됐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등을 궁금해한다.” 남성 위주의 학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교수의 삶은 존재 자체로 후배 여성 연구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여성교수는 연구 이외의 분야에서도 상당한 부담과 압박을 받는다. 여성교수에게 몰리는 특정 업무들이 있다. ‘여성교원의 대표성과 지위변화’ 연구에서 심층면담을 주도한 신혜경 교수(미학과)는 “아직도 많은 경우 학생 지도나 상담,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은 여성교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성교수에게 과도하게 가해지는 특정 업무 부담을 지적했다. 심층 면담에 참여한 H 여성교수는 자신이 다른 남성교수에 비해 학생상담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며 ‘심지어 몇 번 이상 다른 선생님한테 가기 전에 저에게 먼저 보내 ‘애벌상담’을 하고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성 위주 학계에서 소수자인 여성교수는 주류로부터 배제되기 쉽지만, 같은 이유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연구자이기 전에 집단 내 유일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앞선 연구의 심층면담에 참여한 I 교수는 소속 학과의 대외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자신이 차출됐다고 회상했다. ‘여성교수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 임용된 남성 조교수들은 오지 않았지만, 그는 유일한 여성교수라는 이유로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업무 호출에 응해야 했다.

  여성교수들은 연구에서도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학계에서 연구자들의 인맥은 연구 수주의 성공과 규모를 좌우한다. 신혜경 교수는 “심층면담을 통해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은 연구 능력으로 결정되기보단 인간관계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친분이 곧 능력이 되는 폐쇄적인 학계 문화를 지적했다.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것은 주로 여성이다. 연구비 규모에 따라 작은 수주는 여성교수의 몫이 되고 큰 수주는 남성교수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의 2017년 이공계열 연구비 통계에 의하면 남성이 평균 1억 860만 원을 연구비로 쓸 때, 여성은 평균 4,330만 원을 사용했다. 많은 경우, 구색 맞추기를 위해 몇몇 여성교수들은 연구에 ‘들러리’로 세워지고, 여성교수들은 고립돼 ‘섬처럼’ 연구하거나 ‘끼워 넣어진’ 느낌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과 가정’이란 이중 굴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자녀 양육과 교육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진다. 직업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여성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신혜경 교수는 심층면담 과정에서 이공계열 여성교수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크게 놀랐다고 전했다. 면담에 참여한 이공계 여성교수들은 결혼이나 출산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조교수급의 여성교수들은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40대 후반의 여성교수들은 대부분 가정을 꾸려 출산을 하거나, 어린 자녀를 키우는 생애 단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공계 학과의 경우 교수가 담당 연구실의 연구비를 계속 수주해야 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으로 연구실을 비우기 쉽지 않다. 남성교수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과에서는 ‘이례적이고 유별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스럽다. STC 제도(Stopping Tenure Clock, 교원임기신축운영제도)는 출산, 육아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 승진심사 기간(Tenure Clock)을 멈추는 제도로 2010년에 도입됐다. 출산·육아 휴직과 별도로 운영되는 이 제도는 남성 일반의 생활 경험에 기반한 대학 조직을 반성하며 여성 연구자의 연구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련됐지만, 10년 동안 제도를 활용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STC 제도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남성 연구자에 비해 연구실적이 떨어지는 걸 우려해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교수들 사이에선 승진뿐 아니라 연구실적 평가에도 STC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연구실적의 공백을 학계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순진 교수(환경대학원)는 현재 여성 구성원에 한정된 STC 제도를 남성에게도 확대 적용하고 자녀 양육을 넘어 부모 돌봄과 같이 폭넓은 가족 돌봄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교수는 “(STC 제도가) 여성에게만 적용되면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선입견이 강화될 수 있다”며 육아를 해야 하는 시기에는 남성교수도 자유롭게 STC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야 가정 친화적인 제도의 본 목적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 교수는 가족이 치매와 같은 돌봄이 필요한 질환을 앓을 때도 STC 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면 “돌봄 노동을 보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것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또한 “자녀 양육과 관련된 제도를 학내 정책으로 만들게 되면 성 역할을 고정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며 돌봄의 사회화를 다각도에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말했다.

요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여성의 자리

  지난 6월 서울대 다양성위원회가 발표한 ‘다양성보고서 2019’에 따르면 서울대 주요보직의 여성교수 비율은 17.7%로 2018년에 비해 5.2% 증가했지만, 평의원회의 여성교수 참여 비율은 8.9%에 그쳤다. 평의원회 규정 제3조에는 평의원 구성 원칙 중 ‘평의원회를 구성할 때에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별 구성 관련 조항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양성평등기본법을 반영할 것인지 명시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가 설립한 공공기관에서 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촉위원의 경우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현재 평의원회의 여성교수 참여비율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양성보고서 2019

  주요의사결정기구에 여성 보직교수가 부족한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여성교수에게 보직 기회가 적게 주어지고, 여성교수에게 보직의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보직을 고사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많다는 것이다. 2016년 여교수회에서 주최한 ‘의사결정 구조의 성 평등성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던 양현아 교수는 본부 보직과 같은 상위 보직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과대학 보직 선출부터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총장이 임명하는 본부 보직의 경우 총장의 의지로 다양한 교수들을 보직에 배치할 수 있지만 “선출직인 대부분의 단과대학 보직의 경우 단과대 교수들 사이의 관계와 그 속에서 발휘되는 네트워킹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과대 내부에서 선출된 학장은 함께 일할 부학장을 선임할 수 있고, 실무를 익힌 부학장은 이후 학장이나 본부 보직 등 다른 주요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커진다. 네트워킹 중심의 단과대 보직 선출이 낳는 문제는 연쇄적이다. 여성교수는 남성 중심의 ‘정치 활동’에서 곧잘 소외되고, 결국 학장이나 부학장 같은 주요 단대 보직으로부터 멀어지기 쉽다.

  몇 안 되는 여성 보직교수가 되더라도 남성 보직교수와는 다른 시선 속에서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학내 다양한 위원회들에서 보직을 맡아온 윤순진 교수는 보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여교수’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윤 교수는 학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는 편인데 그때마다 “말을 너무 많이 한다거나 다른 여교수들처럼 정숙하지 않다는 시선을 은연중에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의 고군분투는 늘 당사자의 몫이었다.

  보직 제안을 받고도 이를 고사하는 여성교수들은 많은 경우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겪는다. 윤순진 교수는 “본부 같은 주요의사결정기구의 보직을 맡게 되면 다양한 위원회 등의 만찬이나 조찬 약속이 자주 있는데, 생애주기 상 어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교수들은 어려움을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제안을 거절하는 또다른 이유로는 여성교수 스스로 자신이 중요한 보직을 맡게 될 때 여성을 대표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는 데에 있다. 보직 제안을 받거나 경험한 많은 여성교수들은 보직을 맡게 되면 스스로 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실수 없이’, ‘원칙대로’ 일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현아 교수는 이를 두고 “많은 소수자 집단에서 보이는 특징”이라며 여성으로 대표되는 심적인 부담으로 거절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희진 (동양화 15)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권리

  여성교수가 겪는 어려움이 혼자만의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여성교수의 비율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 신혜경 교수는 “여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싶거나 앞으로 공부할 생각이 있더라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여성교수 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면 공부에 욕심을 내기 쉽지 않다”며 학문후속세대들이 여성교수가 되는 일을 ‘닫힌 길’로 생각하지 않도록 여성교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현아 교수는 여성교수가 우리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남학생들도 여성교수들을 통해 앞으로 여성 동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고 이는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성희롱, 성추행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 보는 시각을 대학에서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 여성교수들이 겪은 일상적인 어려움은 여성교수 비율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숫자는 곧 문화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숫자의 변화를 늦춰왔다.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여성교수가 연구자가 아닌 여성, 혹은 여성의 대표로 자리 잡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모면책으로 여성을 고용한다면 여성은 또다시 타자화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 만연했던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여성교수의 수적 증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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