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뒤편의 어둠에서, 이제는 빛 속으로

가혹한 노동환경 속 첫걸음 뗀 IT·게임업계 노동

  국내 게임업은 30여 년 된 신생 산업인 동시에 대표적인 고성장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은 10년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에는 전년 대비 20%의 성장률을 보였고 2018년에는 전년 대비 8.7%의 성장률을 보였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4위다.

  눈부신 압축 성장의 뒤편엔 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었다. 게임업계의 노동환경 실태는 아직 열악하고 그 개선 속도도 더디다. 산업의 규모가 외적으론 크게 성장해 왔지만 산업의 내실은 부실하다. 소규모 회사가 만들어지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게임프로젝트는 깔끔하게 잊히고 프로젝트 구성원은 실패자라는 낙인과 함께 당연하다는 듯 구조조정을 당한다. 게임업계 종사자의 노동 보호는 요원한 걸까.

게임업계 노동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2016년 한 해 동안 넷마블에서 두 명의 젊은 개발자가 돌연사했다. 당시 무료노동신고센터가 500여 명의 게임 개발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 한 번 출근하면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렀다는 응답이 30%를 넘었다. 2017년에도 넷마블에서 일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고인이 게임 업데이트를 앞두고 주90시간 넘게 일한 사실이 드러났다.

  ‘크런치 모드(Crunch Mode)’는 불과 몇 년 전까지 IT·게임업계에서 암묵적으로 승인돼 온 노동 관행이었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크런치 모드 탓이다. 넥슨 노동조합(노조) ‘스타팅포인트’ 조성원 홍보부장도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 그는 게임 개발의 중간 시연 단계에서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을 근무했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또는 이틀 출근했다. 상부로부터 수정사항을 즉각 반영해 달라는 요구가 수시로 밀려왔다.

  2년 전부터 모니터 뒤편의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2018년 9월 국내 1위 게임업체인 넥슨의 게임업계 1호 노조 설립이었다. 뒤이어 스마일게이트, NC 등도 노조 설립에 동참했다. 성공의 그늘에 가린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모이면서 게임업계의 노동 운동이 태동했다. 게임 산업의 성장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기성 언론의 의제선정을 극복하고 게임업계의 ‘노동’을 사회적 의제로, 업계 내의 논의 테이블 위로 올리려 노력했다.

  효과는 상당했다. 조성원 홍보부장은 “주52시간 상한제 도입과 함께 최근 게임업계에서도 노동환경이 매우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52시간 상한제는 300인 이상의 기업에 적용돼 게임업계 대형 회사들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조 홍보부장은 “넥슨의 경우, 주52시간 상한제 실시 이후 근로시간 외 PC 잠금 등이 정착되면서 크런치 모드의 관행은 대부분 사라졌다”며 “일부 조직에서 업무상 바쁜 시기에 연장근로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으나 사측에서도 가능한 요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IT·게임업계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가 분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포괄임금제, 다른 형태로 바뀌었을 뿐

  변화의 바람은 포괄임금제에도 불었다. 조성원 홍보부장은 “최근 게임업계에서도 대규모 사업장을 위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넥슨, NC,넷마블에서 모두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문제는 소규모 IT·게임업계 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임금산정방식의 일종으로, 근무시간을 명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울 때 일정 부분의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을 미리 계산해 지급하는 제도다. 근무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근무환경이거나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등의 경우 임금을 포괄적으로 산정해 편의를 도모하자는 것이 본래 취지다.

  IT·게임업계에서 포괄임금제는 무임금노동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조성원 홍보부장이 “게임업계 노동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제도는 포괄임금제”라고 손꼽을 만큼 포괄임금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게임업계는 근로시간 산정이 용이한데도 대부분 포괄임금제 혹은 유사형태를 채택해왔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면 실질적으로는 무제한의 초과근로를 했더라도 이에 비례한 초과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시간 산정이 명확히 가능한데도 포괄임금제를 채택하는 경우 사법상 무효라고 본다. 그러나 법적 다툼에는 사실상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불법적 관행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행정력을 동원해 사업장에 지침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것 뿐이다. 2017년 10월,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 발표를 예고하고 초안을 마련했다. 당시 

지침은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으면 명시적 합의가 있어도 무효’라는 원칙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안이 마련된 이후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노동부는 의견수렴 중이라며 지침 발표를 미루고 있다. 노동부의 방관으로 아직도 많은 근로자들이 위법한 근로환경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포괄임금제는 임금체불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악질적이다. 근로자가 초과근로시간이 포괄임금제에 약정된 근로시간을 초과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근로자는 실근로시간에 따른 초과근로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요구가 정당함에도 회사가 포괄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시한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포괄임금제 활용 사업장 실태조사 및 분석’에 따르면, 최강연 노무사는 “현장에서 대부분의 근로자가 포괄임금제에 약정된 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로한 경우 차액정산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은 사용자가 노동자와의 합의 없이 연장노동을 시키거나, 합의했더라도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노동을 시킨 경우를 막기 위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임금체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회피하는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8년부터 포괄임금제 폐지 여론이 급물살을 타자 회사들은 포괄임금제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기까지 했다. ‘펄어비스’의 ‘재량 없는 재량근무제’가 대표적인 예다. 일단, 펄어비스의 제도는 형식적, 내용적 측면 모두에서 재량근무제로 보기 어렵다. 최강연 노무사에 따르면 ▲사용자가 재량근무를 개별 노동자에게 강요한다는 점 ▲근로자 대표가 형식적으로 정해져 정체가 불분명한 점 ▲의장이 업무수행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시적인 지시를 한 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업무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점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주말 근무를 지시하거나 자다가도 출근하게 하는 점 등으로 미뤄 봤을 때 노동자에게 재량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펄어비스의 노동자들은 ‘재량 없는 재량근무제’로 장시간·무임금 노동에 전보다도 더 시달리고 있다. 재량근로제 하에서는 초과노동 입증이 법적으로 무의미하다. 따라서 악용이 쉬워지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포괄임금제보다 더 불리하다. 심지어 재량근로제는 노동자 개인의 재량과 성과에 기반한 업무를 위해 도입됐는데, 팀프로젝트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는 게임업계에서 이를 운영한다는 점부터 모순적이다.

▲넥슨의 근로시간 셧다운제 ©최강연 노무사

  포괄임금제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불법적인 근로시간 셧다운제로도 변형됐다. 월 52시간·주 평균 1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면 근무시간 기록 시스템을 셧다운시켜 추가적인 근무시간 입력이 불가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표면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이다. 게임업체인 A사는 주 평균 52시간 이내는 근무시작 시간에 ‘플레이’ 버튼, 근무종료 시간에 ‘정지’ 버튼, 비근로시간 입력은 ‘업무중’ 버튼을 사용해 실근무시간을 정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주 평균 52시간 근로를 초과하는 경우 명백히 업무시간에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플레이’와 ‘정지’버튼이 비활성화된 회색 버튼으로 바뀐다. 실제 근무를 해도 초과 근로시간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넥슨도 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무를 하는 경우 근태입력창이 비활성화된다. 근로시간이 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면 출장·외근 등으로 입력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 ‘근로시간 수정 자체가 불가합니다’라는 알람이 간다. 공공연하게 근무시간 조작이 발생하는 셈이다.

‘협박사직’이 된 권고사직

  권고사직은 업계의 또 다른 주요 폐해다. 권고사직은 본래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을 권유하고 근로자가 자유의사에 따라 사표를 제출해 퇴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사측이 권고사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부당해고라는 위험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노동법상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경우는 엄격하게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는 개별 프로젝트 종료 시 구성원을 내쫓는 관행이 있는데, 프로젝트의 종료는 법적으로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게임업계에서는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쉽게 해고해왔다. 최강연 노무사는 “권고사직은 오염된 언어다. 협박사직이 옳은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IT·게임업계 노동자들이 권고사직에 쉽게 순응하는 이유는 이를 따르지 않을 때 엄청난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직 권고에 따르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왕따, 혹은 갑질 등을 당하며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 무엇보다 이직의 길이 막히게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노동자에게 가장 위협적이다. 이직이 잦은 게임업계 특성상 평판 조회의 일종인 ‘레퍼런스 체크’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람에게 이직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는 과정이 채용의 한 과정으로 자리잡았다. 사용자는 이를 이용해 타 기업이 레퍼런스 체크를 요구할 시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겠다며 노동자를 협박해 사직을 ‘권고’한다.

  노동자 개인에게 과중한 책임을 지우는 업계 특유의 구조와 관행은 권고사직을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많은 게임업계 회사는 한두 개의 게임을 개발하는 소규모 벤처 회사로 시작했다. 따라서 예전에는 게임프로젝트의 실패가 회사의 파산으로 직결돼 구성원들이 퇴사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이런 맥락이 관행으로 굳어져 지금의 업계 노동자들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프로젝트 실패 시 퇴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권고사직으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최 노무사는 “권고사직은 종국엔 노동자 개인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청에 신고(진정)이나 고소·고발을 해도 구제받을 수 없다”면서 노동자 대다수가 권고사직을 당하고 법적으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권고사직 앞에서 IT·게임업계 노동자들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IT·게임업계 노동이 나아가야 할 길

  신생 IT·게임업계 노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조성원 홍보부장은 노조에서 희망을 찾는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 환경 개선을 목표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업계 내부의 개인주의와 이로 인한 정보의 단절 극복이 촉구된다. 게임업계에선 연봉협상 시에도 주변 동료들의 연봉이나 표준연봉 등의 정보가 없다. 때문에 IT·게임업계 노동자들은 자신이 능력과 성과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논하기 어렵다. 분위기와 정보의 부족은 이런 식으로 포괄임금제나 권고사직의 일상화에 대항할 수 있는 노동자간의 연대를 약하게 만든다.

  권고사직에 관련해서는 사직 철회기간(cooling off system)의 법정화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사직의 의사표시 이후 일정 기간 내에 그 법적 성질을 묻지 않고 철회할 수 있는 기간을 법정화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사직서 제출 강요에 대한 효과적 대응방안이 될 수 있다.

  최강연 노무사는 위법한 업계 관행개선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이고 상시적인 근로감독을 통한 노동인권 보장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최근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탄력근로제 논의가 다시 부상하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최근 예고한 조치들이 주 40시간 법정근로를 다시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부의 의견대로 일시적 업무량 증가에 따라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면 크런치모드의 부활은 필연적이라고도 전망했다. 현재 IT·게임업계 노동자의 의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사용자들의 민원을 정부가 스펀지처럼 수용하는 의견 수렴 구조도 변화가 필요한 대상이다.

  대다수의 IT 콘텐츠 소비자들은 모니터 뒤편의 일에는 무감각하다. 기성언론이 설정하는 의제도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 일쑤다. 최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을 통해 게임업계의 노동실태에 관한 담론이 어렵게 부활했다. 그러나 ‘노동’은 논의에서 빠진 채 대리게임 논란과 욕설 논란이 본질을 흐렸다. 모니터 뒤편의 사람들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는 이루기 힘든 꿈에 불과한 것일까. IT·게임업계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기나긴 여정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모니터 앞의 사람들이 모니터 뒤편의 삶에 대해 관심을 비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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