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짜리’ 영화관을 찾아가다

독립·예술영화관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다
ⓒ복합문화공간 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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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건물에 들어가 팝콘을 손에 안고 티켓에 적힌 상영관을 찾아 들어간다. ‘영화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의 영화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의 상영관만을 갖추고 다른 영화관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상영하는 소규모 영화관도 있다. 독립·예술영화관이다.

독립·예술영화관, 어디까지 가봤니?

  독립영화란 창작자의 독창적 의도를 우선시해 상업영화에서 보기 힘든 표현을 시도한 영화를, 예술영화란 작품의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새로운 주제로 문화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영화를 가리킨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벌새’, ‘안녕, 티라노’, ‘윤희에게’를 비롯해 409편의 개봉작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심사를 거쳐 독립·예술영화로 인정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는 독립·예술영화를 중점적으로 상영하는 71개 상영관을 독립·예술영화 전용상영관으로 지정하고 있다. 전용상영관은 연간 상영일수의 60% 이상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조건으로 문체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2020년 6월 현재 전용상영관으로 등록된 71개관 중 2개관(서울 KU시네마트랩, 부산 국도예술관)은 폐관했으며, 멀티플렉스 3사(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가 운영 중인 상영관이 33개다. 나머지 36개의 상영관은 개인사업자, 비영리단체, 일반 기업 등에 의해서 운영 중이다.

  전용상영관 지정은 영화관 단위가 아니라 상영관, 즉 스크린 단위로 이뤄진다. 여러 상영관을 갖추고 동시에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대형 멀티플렉스는 보통 여러 상영관 중 1개관을 전용상영관으로 지정해 운영한다. 하지만 그 밖의 전용상영관들은 영화관 전체에 1~2개의 상영관만 갖추고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용상영관으로 등록되지 않은 독립·예술영화관들도 있다. 자체휴강시네마는 독립·예술영화와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지만, 전용상영관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13석 규모의 단관 영화관인 이곳에서는 단편영화와 장편 독립·예술영화가 상영된다. 자체휴강시네마 박래경 대표는 “원래는 단편영화만을 상영했는데, 올해 2월 대학동 고시촌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장편 독립·예술영화도 상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상영부터 이벤트까지, 작지만 특별하게

  수많은 독립·예술영화 중 어떤 작품들이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될까. 독립·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 김상민 대표는 “배급사를 통해서 배급 받는 개봉작만으로 ‘에무시네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면 기획전을 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영화 ‘엉클 분미’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작품을 상영한 기획전을 소개하며 “아피찻퐁 감독은 태국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는 등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이런 배경에서 제작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우리 영화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내려간 영화들을 상영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1월 개봉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독립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개봉한 지 약 5달이 지난 6월 초에도 에무시네마에서 상영 중이다. 다수의 영화관에서 이미 상영이 끝난 작품들을 놓쳤거나 재관람을 원하는 관객들이 타겟이다. 종로구에 위치한 독립·예술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개봉 1년이 지난 영화 중에서 관객들의 투표를 거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영화를 재상영하는 ‘인디돌잔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관에서는 영화 상영을 넘어 관객과 극장이 소통하거나 관객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사들을 마련한다. 영화 상영 후 출연 배우와 감독이 영화관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열거나, 관객과 영화관 직원이 함께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식이다.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상영관만의 강점이다. 김상민 대표는 “행사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다 보면 관객들이 영화관에 바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며 “영화 ‘기생충’ 개봉 후 관객의 제안으로 ‘짜파구리’ 파티를 하기도 했다”고 예시를 들었다. 한편 인디스페이스 이은지 홍보팀장은 “상영 후 감독과 배우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인디토크’ 프로그램이 지난해에만 약200차례 진행됐다”며 관객과 감독, 배우들이 만나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디스페이스 영화관 라운지와 상영관 ⓒ인디스페이스

스크린 뒤에 가려진 속사정

멀티플렉스가 스크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운영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인디스페이스는 불안정한 사정으로 인해 개관 2년만인 2009년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가 2012년에서야 다시 문을 열었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내에서 운영되던 ‘KU시네마트랩’을 비롯해 압구정의 ‘스폰지하우스’, 종로의 ‘씨네코드 선재’, 부산의 ‘국도예술관’ 등 독립·예술영화 팬들에게는 익숙했던 영화관들이 최근 5년 사이에 문을 닫기도 했다.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있을 때 사람들은 공간을 찾는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게 하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결국 영화다. 독립·예술영화의 생태계가 안정돼야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독립·예술영화계 전반의 상황은 어떨까.

  김상민 대표는 지난해 한국 독립·예술영화계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벌새’, ‘메기’, ‘김군’과 같은 작품들이 개봉했고, 영화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고 말했다. 독립·예술영화관으로서 실감하기로는 사정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윤희에게’나 ‘벌새’와 같은 페미니즘 영화나 이옥섭 감독의 ‘메기’,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등 여성 감독들의 영화 등이 호평을 받는 등 독립영화의 질적 성장도 두드러졌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영진위가 발표한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1,740편 가운데 독립·예술영화는 409편이다.2018년의 496편에 비해 2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관객 수는 약 809만 명으로, 2016년 967만 명으로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감소세에 있다. 전체 영화 개봉작 중 독립·예술영화의 비율은 2015년 이후 30% 안팎에 머물다 지난해 23.5%로 하락했고, 관람객 점유율 역시 최근 5년간 4%대에 머물렀다.

한국 독립·예술영화만 놓고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가운데 국내에서 제작된 작품은 121편이다. 전체 독립·예술영화 중 한국 영화를 찾은 관객의 비율은 재작년 12.9%에서 2019년 35.7%로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다룬 ‘항거: 유관순 이야기’ 관객 수가 115만 명에 달해 국내 제작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의 40%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양극화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자체휴강시네마는 영화관을 이전한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으로 방문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조금 더 찾아오기 좋은 낙성대 근처로 자리를 옮겼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강의 시행으로 관객 수가 크게 줄었다”고 박래경 대표는 이야기했다. 에무시네마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다. 김상민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일주일에 약 500명의 관객이 찾아왔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절반 이상 줄었다”며, “갑자기 적자가 심해졌는데 방역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손 쓸 도리가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영화관이 살아남는 방법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들은 수익을 내기도, 이름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코로나 19 사태와 같은 예기치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겪는 어려움도 크다. 박래경 대표는 이런 현상을 “안 그래도 허약한데 큰 병에 걸린 셈”이라고 진단한다.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립·예술영화관이 선택하는 생존전략은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고 차별화하는 것이다.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전용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만을 상영하고 있다. 이은지 홍보팀장은 “대기업 상영관들이 오래전부터 전용상영관으로 지정받은 상황에서 차별화된 기획과 행사로 극장만의 색깔을 살리고자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에무시네마에서 아파칫퐁 감독의 작품을 상영하며 독재정권에 저항한 것을 조망한 것도 영화관의 이런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김상민 대표는 설명했다. 영화관이 가진 공간적 특징을 강조하기도 한다. 에무시네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음악공연장, 북카페, 갤러리 등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김 대표는 “책을 전시하는 카페와 연계해 책과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상민 대표는 앞으로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모두 같은 개봉작들만 상영하는 게 아니라, 단관 개봉 등으로 특색을 갖추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배급사들 역시 소규모 영화관보다 큰 규모에서 상영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대기업 상영관들이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려 한다면 소규모 영화관들은 경쟁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색깔과 방향을 갖고 차별화하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가 바라는 방향이다. 실제로 에무시네마가 배급총괄을 맡은 피에르 프랑수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의 기억’이 전국 15개 독립·예술영화관에서 6월 11일 개봉하기도 했다. 

  독립·예술영화가 작은 규모로 투자를 받아 제작돼 소규모 배급으로 적은 수의 상영관에서 개봉하는 방법이 선택지로 자리잡는다면 독립·예술영화관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김상민 대표는 “현재는 독립·예술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사비를 쏟아붓는 구조다. 실패하면 큰 손해를 보고 성공해도 큰 이익을 못 보게 돼 있어 제작자들도 몇 차례 독립·예술영화를 만들다가 상업영화로 전환하거나 아예 접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소규모 투자, 배급으로 독립·예술영화관과 연결해서 소규모로 상영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지금보다 위험을 덜 감수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그러기 위해 우선 독립·예술영화관이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독립·예술영화와 영화관에 느끼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도 중요하다. 박래경 대표는 “독립·예술영화가 어렵고 우울한 영화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세져 버렸다”며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상영할 작품을 선정할 때 처음 독립영화를 보는 관객이 부담을 적게 갖도록 오락성 있는 영화도 선택한다. 박 대표는 이 점에서 영화제와 영화 제작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영화제 등에서 우울한 주제로 영화들이 편중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서 ‘독립영화는 우울한 영화 아니냐’는 사람들의 말에 반박하기도 어렵다”며 “코미디를 찍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한 주제라도 최소한의 위트를 갖고 숨 돌릴 틈이 있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집에서도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시대에 영화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래경 대표는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극장 안에서만의 경험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까 한다”며, 영화를 감상하는 장소로서의 영화관의 메리트를 강조했다. 이은지 홍보팀장은 “스크린을 통한 체험, 현장에서 이뤄지는 이벤트를 누리려 방문하는 관객들이 꾸준히 있다”며, “다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맞이할 변화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한 번 개봉에 몇만 명만 관람해도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 독립영화지만, ‘천만영화’보다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색다른 영화들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배우들을 만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호기심에 한 번 찾아간 독립·예술 영화관의 매력에 빠져 단골이 되기도 한다. 아직 영화관도, 독립·예술영화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더 많은 곳에서 더 좋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관객들에게도 영화인들에게도 분명 환영할 일이다. 독립·예술영화관의 저변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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