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14일,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서울교통공사노조)은 4개월 동안 진행된 노사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파업 돌입 직전인 16일, 서울교통공사 측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돼 지하철은 정상 운행됐으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올해 1월엔 전동차 출입문 곳곳에 서울교통공사노조 승무노동자들의 입장이 담긴 전단지가 붙었다. 노조가 지난해 11월 사측이 지시한 일방적인 근무시간 변경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며 작업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노조는 21일에 예고한 작업 거부에 승무분야 3,250명 인원 중 90%에 육박하는 2,830명의 참여를 예상했고 소식이 전해지자 지하철 대란이 초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승무노동자들은 대중교통 이용 불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감수하고서라도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이는 승무 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승무노동자의 노동실태를 돌아보고 첨예한 노사 간 대립 상태를 살펴봤다.
퇴보는 결사반대
지금의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되기 전, 2003년부터 2016년까지 5~8호선을 담당했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만 9명의 기관사가 자살을 택했다. 공공운수노조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중 7명은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의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일련의 승무노동자 자살 사건은 승무분야 근무환경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 서 울시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2012년 ‘지하철최적근무위원회’를, 2014년에는 ‘기관사근무환경개선단’을 설치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두 조직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종합대책안이 나왔다. 제안된 권고 사항의 일부는 추진됐지만 노조 측이 강력하게 요구해 온 승무분야 증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력 충원은 지난해 10월에야 약속됐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승무분야 안전 인력 증원, 임금피크제 폐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당시 노사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통해 209명 인력 증원과 임금인상 등에 합의했다. 마무리되는 듯했던 갈등은 재발했다. 임단협 한 달 후인 11월 16일, 서울 교통공사 측이 승무분야 인력 충원 약속을 이행하는 대신 12분 연장근무를 일방적으로 지시했기 때문이다. 인당 근로시간을 연장해 전체 작업 인력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 김태호 전 사장은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승무시간 조정으로 106명의 운영인력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약속 파기에 대한 분노는 지난 1월 21일 작업거부 선언으로 표출됐다. 당시 ‘12분 연장근무 지시에 승무노동자들이 반발했다’는 헤드라인이 포털과 언론사 홈페이지를 메웠다. 분명 당시 늘어나는 작업시간의 평균값은 인당 12분이었다. 하지만 12분은 노동자들의 늘어난 업무량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기관사들의 근무표를 의미하는 ‘다이아(diagram)’를 살펴보면 일부 다이아는 1시간 이상 운전시간이 늘기도 했다. 지하철은 교대 장소가 정해져 있어 정확히 12분만 더 타고 바로 내릴 수 없어서다. 서울교통공사 단체협약 제5조에 따르면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서울교통공사 취업규칙은 노사 간 합의 없이는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없다. 본래 노사 간 합의된 기관사의 운전 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다. 사측의 일방적인 12분 연장근무 지시에 따른다면 5시간 30분이 넘는 장시간 다이아도 발생하게 될 예정이었다. 노조 측은 이와 같은 장시간 운전이 합의되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므로 위법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또한 특정주에 52시간, 특정일에 12시간의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교번 근무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문제는 노동시간의 증가만이 아니다. 노조 측은 지난 10월 임단협을 무시하고 연장근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서울교통공사의 행태가 노사 간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 설명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법률원 조연민 변호사는 “사실 일반적 상황에서는 계약을 위반했다고 (형사) 처벌을 할 순 없지만, 단체협약만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합의하기에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특수하게 보호한다”며 서울교통공사가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벌칙조항을 둬 단체협약 위반과 관련해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어 조 변호사는 “단체협약을 10월 16일에 체결해놓고 11월에 노동시간을 합의 없이 연장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작업거부 건에 관한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의 입장은 일관됐다. 투쟁을 통해 얻어낸 근로조건이 과거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 서울교통공사노조 승무본부 박찬용 사무국장은 “19년 전에도 사측은 합의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해 4시간 42분 근로를 지시했고 이에 승무원 단독파업을 한 적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 같은 일이 2019년에 또 다시 일어났다”며 “노조원들은 합의에 어긋나는 일방적 구조조정과 노동조건의 퇴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이번 작업 거부의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노조 이열우 영등포지회장은 “2017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이전 두 노조는 투쟁 역사가 다르고 노동 조건에도 다소 차이가 있었다”면서 “문제는 통합 후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어떻게든 인원을 감축하고 구조조정을 하는 등 더 나쁜 근로조건으로 두 노동자 집단 간 차이를 조정하려 하는 행태”라고 힘줘 말했다.
승무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는
인력 충원 문제, 다이아 작성 표준화 및 기본적 근무환경의 개선은 승무 노동을 둘러싼 노사 간 주요 쟁점이다. 그렇 다면 실제 승무노동자의 노동실태와 업무 특성은 어떠할까. 전동차 운행 업무는 시민의 공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강한 압박을 기본으로 갖게 한다. 특히 차장과 함께 2인이 열차에 탑승하는 1~4호선과 달리 5~8호선의 경우 열차 한 대당 한 명의 승무원만 탑승한다. 승객 수백 명의 안전을 승무원 혼 자 책임지는 상황에서 승무노동자 개인이 짊어지는 부담은 상당하다. 이 때문에 2014년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안’에서도 2인 승무제 실시를 권고한 바 있다.
교번근무는 지하철 승무노동자들의 특수한 업무 방식이다. 통상근무처럼 사람의 생체리듬에 따라 일하고 휴식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 운행 시간에 맞춰 사람이 배정되는 방식을 말한다. 매일 출근시간부터 식사시간, 수면시간까지 달라져 생체리듬이 무너지기 쉽다. 게다가 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분 단위로 운영되고 시간이 지켜지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크다. 승무노동자 A씨는 “하루에 알람을 10개 넘게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아침에 일어날 때뿐만 아니라 쉴 때도 알람을 맞춘다”며 승무노동자의 직업적 특성을 설명했다.
지하에서 움직이는 전동차 내 고립된 기관실에서 근무를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건강 문제도 발생한다. 어두운 지하에서 형광등만 몇 시간씩 바라보면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공기나 소음 문제도 심각하다. 열차가 폐쇄된 지하 공간의 공기를 밀고 나가는 구조기 때문에 분진과 중금속 물질이 운전실로 유입된다. 승무노동자 B씨는 “방사능 물질인 라돈도 기관실로 유입된다”며 “4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운전을 한다”고 전했다. 소음이 가장 심하다고 알려진 5호선 승무노동자 A씨는 “열차레일과 차륜이 부딪히면서 나는 쇳소리는 정말 심하다”고 설명했다.
고정된 자세로 4시간씩 운전을 하고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 수도 없어 생리 현상에도 애로사항이 있다. 그나마 있는 화장실 등의 시설도 열악하다. 박찬용 국장은 “회차 장소에서나 화장실에 갈 수 있는데 그나마 있는 화장실조차 청결도가 너무 낮거나 매번 고장이 나 사용할 수가 없어 계속해서 고충을 토로하고 개선을 요구 중”이라고 전했다. 식사시간 역시 불규칙하기 때문에 위장병을 앓는 승무노동자도 많다. 몇몇 승무노동자는 생리현상을 피하려 열차 운행 몇 시간 전부터 일부러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도 전했다.
박찬용 국장은 승무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통틀어 “노동밀도가 높다”고 표현했다. 4시간 30분이라는 운전 시간만 두고 보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나 기관실이라는 환경의 특성, 안전과 시간에 대한 부담이 노동 강도를 급격히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승무노동자들이 일방적 연장근무 지시에 따라 발생하는 비정상적으로 긴 다이아를 우려하는 이유에 직결된다.
휴일근무 역시 문제가 된다. 지하철 운행량은 정해져 있어 누군가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면 다른 기관사가 운행량을 채워야 한다. 이런 경우가 휴일에 발생하면 휴일일지라도 출근해 근무를 대신해야 한다. 대체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관사는 휴일을 반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휴일대체근무수당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고 다른 노동 분야와 공사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노동권과 경영효율 사이의 줄다리기
지난 1월 노조의 작업거부 사태는 서울교통공사가 근무시간 조정 잠정 중단을 선언하고 다이아 원상회복을 약속하며 마무리됐다. 그러나 박찬용 국장은 “근무시간 개악 잠정중단과 다이아 원상 회복은 미봉책”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잠정적’이라는 표현은 서울교통공사가 언제든지 다시 노동자에게 불리한 근무 시간 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승무노동자들은 일단 다이아 작성 기준 및 승무업무 시스템의 표준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승객들의 이용실태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 양측이 노력해 다이아 작성 기준을 마련해 호선마다 차이가 큰 승무 업무를 표준화해야 한다는 요구다.
승무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제기한 인력 부족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지난해 10월 16일의 노사합의에 따르면 노사정협의회를 거친 후 1월 중 사측이 결정해 상반기부터 인력을 충원하기로 돼있었다. 하지만 충원은커녕 진행 상황조차 노조 측에 알려지지 않은 채 2월이 됐다. 노조 측은 고용노동부에 공사 측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합의 사항 불이행에 대해 제소해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노동부는 계속해서 답변을 유보하고 있다.
사실상 인력 부족 상황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사측이 연장근무를 지시한 원인도, 휴일 대체 근무가 필요한 원인도 결국 승무 인력이 부족한 상황 자체에 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기관사 개인의 근무조건을 변경해 최대한 적은 인력을 충원하려 하고, 노조 측은 현재의 근무조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력을 충원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립은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요구 사항을 실현하기 위해선 우선 노사의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 노조는 이번 사건 책임자들에 대한 사측의 징계 예고로 혼란한 상황이다. 한편 노조 측도 근로시간 연장 관련 단체협약 위반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변경 관련 불충분한 노사합의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사측을 고소 및 고발했으나 이 역시 취하되지 않은 상태이다. 지하철은 정상 운행됐지만 징계 및 고소 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승무노동자와 교통공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정상 궤도에 이르지 못했다.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의 ‘경영 효율화’ 기조는 인력 충원 및 노동조건 개선과 상충한다. 이에 대해 조연민 변호사는 “공공성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하는 공기업에서 경영평가를 하고 있는 현 운영 구조 자체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경영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수익을 얼마나 내는지가 평가 항목에 들어가고 경영평가에 따라 임원에게 성과급을 주다 보니 운영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근로자들의 근무환경보다는 경영이익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방적 노무관리에서 벗어나 근로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노사갈등 해결의 실마리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지방공기업법의 적용을 받아 경영부문에서 상부 지자체인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다. 따라서 사용자의 처분권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자율적 경영은 어려운 상황이다. 노조 측 요구사항에 대해 사측이 ‘서울시에 문의하고 알아보겠다’는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다. 정작 서울시는 지난 1월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작업거부 건에 대해 ‘노사 양측이 협상을 하고 있으니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사관계는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과제들을 싣고, 지하의 노동자는 오늘도 어두운 철로 위를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