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병원) 약물안전센터(구 약물유해반응관리센터, 이하 센터)에서 연구간호사로 근무하던 직원 A씨는 올해 3월 같은 센터 K교수의 갑질과 폭언을 견디기 힘들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2011년 센터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A씨는 연구간호사 업무 외에 예산과 행정업무를 맡으며 K교수의 개인 연구간호사로 일했다. 입사 2년 뒤에는 병원 소속 단시간간호직(1년 6개월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A씨는 계약이 종료된 후 타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2월 단시간간호직으로 서울대병원에 재입사했다. 당시 K교수는 A씨의 재입사를 환영했다. 단시간간호직 계약이 끝나는 2017년, A씨는 무기계약직 심사에 합격해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됐다. 올해 3월부턴 서울대병원의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이 되기까지 평탄해 보이는 시간이었지만, A씨는 그 8년의 시간동안 K교수 아래서 과도한 업무와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연구 간호사들은 센터의 일이 많아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K교수는 그때마다 새로운 직원을 바로 채용하지 않고 A씨에게 별도의 임금을 줄 테니 일을 좀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수의 말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A씨는 담당 업무가 아닌 일들까지 해내야 했다.
K교수는 A씨에게 ▲방전된 자동차 배터리 충전 ▲개인 물품 국제배송 ▲고모의 정형외과 진료 동행 ▲대학원 수업 시간에 커피 배달 ▲K교수의 동문회 공지나 회비 수합 ▲논문 참고문헌 검색 ▲학회나 휴가 기간 등에 반려견 돌봄 등 센터 업무와 무관한 일들을 피해자에게 지시 혹은 부탁했다. A씨는 한두 번 부탁을 수락하는 일은 직장 동료로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갈수록 부탁의 횟수는 잦아지고 간격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난임치료 중 들은 ‘육아휴직은 안된다’는 말
2017년 A씨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K교수로부터 “인사팀에선 정규직 직원을 새로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A씨를 선택해 (A씨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신청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무기계약직 역시 병가가 허용됨에도 불구하고 이후 K교수는 A씨에게 “(무기계약직이 돼도) 육아휴직은 안 되는 거 알지?”라며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난임으로 고생하던 A씨는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 미뤄왔던 2세 갖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A씨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자 K교수는 ‘육아휴직은 안 되지만 무기계약직이 된 김에 난임 치료를 받으라’는 말을 했다. A씨는 K교수의 허락을 받아 두 차례의 시험관시술을 받았다. 두 번째 시술에서는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임신에 성공했으나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까지 해야 했다. 입원과 수술로 병가가 잦아지자 A씨는 K교수의 눈치를 봐야 했다. A씨는 수술 전 K교수를 만나 ‘병가를 써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K교수는 “육아휴직도 안 되는데 무슨 병가냐”며 A씨의 손을 뿌리치고 나갔다고 털어놨다.
수술 후 일터로 돌아온 A씨는 병가를 언짢게 생각한 K교수의 눈치를 계속해서 봐야 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이석증이 생겨 응급실을 갈 정도였다. A씨는 “유산 후 우울감과 업무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져 병원에 출근하면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증상은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고 A씨는 결국 휴직을 결심했다.
A씨는 휴직신청을 위해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서를 받아 K교수를 찾아갔다. A씨에 따르면 K교수는 “휴직 한 달 가지고 되겠어? 우리 과 모 교수는 10년간 공황장애를 앓는데 치료 잘 안 되던데?”라고 말했다. 비아냥에 가까운 말이었다. A씨가 그동안 과도한 병원 업무로 힘들었다고 말하자 A씨의 개인사로 힘든 것을 일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어 ‘남편과는 별일 없냐’, ‘친정과는 문제 없냐’고 물으며 병의 원인을 개인사로 돌리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나선 “뒷구녕으로 뽑아줬더니 병가를 가? 뒷구녕으로 뽑아줬더니, 뒷구녕으로 뽑아 줬더니”라고 말했다. A씨는 세 차례나 반복된 ‘뒷구녕으로 뽑아줬더니’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휴직을 한 뒤에도 A씨의 뇌리엔 교수의 폭언이 강하게 남았다. 일주일 뒤, A씨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정신을 잃었고 한동안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A씨는 “교수님의 폭언이 너무나 수치스러워 정말 괴롭고 죽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치료를 받아 상태가 안정된 A씨는 세 달간의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신청했다. K교수가 있는 센터로 돌아가는 것은 괴로웠지만 일을 다시 하고 싶은 열망이 컸다. 가능하다면 교수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복직 이후 K교수는 A씨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바로 앞에서 인사를 해도 모른 척 지나갔고 A씨가 해왔던 업무들에서 A씨를 제외하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문제제기, 돌아온 2차 가해
K교수가 있는 센터에서 계속 일을 하는 A씨로선 문제제기 과정도 고통스러웠다. 떠오른 지난 일들이 견디기 힘들어 약물을 복용했고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약물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7월, A씨는 공론화를 결심했다. A씨는 병원과 노조의 1차 교섭에서 직접 K교수의 갑질 사실을 알리고 병원의 조사를 요구했다. K교수의 센터 연구비 횡령과 관련된 폭로도 포함됐다. 교섭 장소에 있던 병원장은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병원장 직권으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조사는 서울대병원 인권센터(인권센터)와 감사팀을 통해 진행됐다.
인권센터 조사는 빠르게 이뤄졌지만 A씨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사하는 동안 A씨는 2차 가해에 노출됐다. 인권센터 측은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동료 직원들에게 A씨가 주장한 피해사실에 대해 ‘(K교수의 폭언을) 직접 들었냐’는 식의 확인질문을 반복했다. 한 참고인은 녹음기가 꺼진 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해당 참고인은 A씨와의 메일을 통해 인권센터 측의 질문이 사건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조사 과정 중 K교수와 가까운 B교수는 A씨의 폭로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찍어 보내며 ‘이게 뭐하는 거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연구비 횡령에 대한 감사팀의 조사에도 문제가 있었다. A씨에 따르면 K교수는 자신에게 책정된 연구간호사 인건비의 초과분을 병원 측에 반납해야 했음에도 이를 반납하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K교수는 연구 참여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병원 본부가 연구간호사들에게 임금의 초과분을 입금하게끔 하고, 연구 간호사들에게는 다시 해당 초과분을 센터 계좌로 이체하도록 했다. K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모은 센터 계좌의 돈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이체했다. 인건비의 초과분이 K교수의 개인 계좌로 옮겨진 것이다. 회의비 항목으로 책정된 예산을 회식비로 지출하는 일도 빈번했다. 또한 K교수는 업무 집행 후 반납해야 하는 잔여 예산을 반납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평소 거래하는 업체에 선결제한 뒤 나중에 쓰도록 했다. 선결제는 계획된 예산 중 집행되지 않은 잔여액을 숨기고,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부정 회계의 한 방식으로 꼽힌다.
센터에서 예산 업무 주담당자였던 A씨는 증거가 담긴 통장 사본을 제출하고 당시 같이 근무했던 연구간호사를 증인으로 세웠다. 감사팀에선 퇴사한 직원은 증인이 될 수 없다며 인건비 반환 대상이 됐던 직원을 조사하지 않았다. 한 감사팀 직원은 A씨에게 “회의비를 회식비로 지출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감사팀은 퇴사한 동료 연구 간호사들은 조사하지 않은 채 A씨의 증언을 조사에 축소 반영한 채로 A씨에게 조사를 마무리하는 확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A씨는 지난 10월 18일 병원 측과의 교섭에서 감사팀 조사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감사실장은 조사과정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으며 현재 추가조사가 진행 중이다.
징계 없이 끝난 인권센터 조사
감사팀의 연구비 횡령 조사와 함께 진행된 인권센터의 조사는 K교수의 행위가 인권침해 행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K교수의 인권감수성의 부족을 드러내는 사건이란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K교수에 대한 조치로는 어떤 징계도 없이 인권감수성 교육 권고만이 내려졌다. A씨가 인권센터 조사결과에 항의하자 자신의 직권으로 조사하겠다던 병원장은 인권센터 조사결과는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답을 했다. A씨는 인권센터의 조사결과에 대해 “한 사람의 삶을 짓밟은 인권침해 사건을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단정 짓고 단순히 교수 개인의 인권감수성의 문제로 치부한 심의위원 회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요청으로 A씨의 진술에 대해 법률 자문을 한 공공운수노조법률원 이종희 변호사에 따르면 상급자의 지위를 이용해 A씨에게 개인적인 일을 부탁 혹은 지시한 것은 서울대학교 병원 임직원행동강령(임직원행동강령) 위반에 해당한다. 임직원행동강령은 지위를 이용해 직무관련 임직원으로부터 사적 노무를 제공받거나 요구, 약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제16조 6). A씨에게 담당 업무가 아닌 일을 지시하며 별도의 임금을 지급한 일에 대해선 K교수가 임직원행동강령의 동일 조항과 원장의 허가 없이 직원은 타 직무를 겸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 서울대학교병원복무규정(복무규정) 제10조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변호사는 휴직 관련 면담 과정에서 폭언을 하며 병가를 질책한 일은 복무규정 제6조 성실의무, 제7조 친절공정의 의무를 위배하는 행위 혹은 복무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로서 인사규정 위배에 따른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외에도 그는 선결제 등의 방식을 통해 연구비를 용도 외로 전용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형법 제356조)에 해당한다고 봤다. 연구참여율을 조작해 남는 인건비를 개인 계좌로 옮긴 것 역시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일상적 인권침해를 낳은 수직적 병원문화
A씨가 용기 내 노조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던 건 올해 2월에 서울대병원 의무기록팀 직원이 보직자로부터 10여년 간 갑질을 당한 사건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의무기록팀 사건의 가해 직원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개인 심부름을 시키고 이행 여부를 모두 카카오톡 메세지로 보고하게 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뒤 직원들 사이에서는 수직적 병원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가해 직원은 보직 해제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오랜 사적인 업무지시와 폭언에도 징계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K교수 갑질 사건과 대조적이었다. 민주노총 공공 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김태엽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은 의무기록 팀 갑질 사건과 A씨의 경우를 비교하며 “병원 내 교수와 직원의 수직적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해 직원에겐 징계를 내리지만 가해 지목 교수에 대해선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병원 당국을 비판한 것이다.

지난 11월 20일엔, 서울대병원 노조 게시판에는 또 다른 갑질 사건에 대한 제보 글이 올라왔다. 영상의학과 C교수와 그의 장모 D씨가 신장투석을 위해 찾은 응급실에서 간호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병원의 수직적 문화는 노동자의 일상의 인권침해를 낳는다. 김태엽 분회장은 “작년에 감마나이프센터의 모 교수가 직원에게 개인적인 일을 지시한 일로 사과한 뒤 업무에 맞는 수당을 지급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해당 직원이 센터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기에 제대로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공론화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A씨는 K교수의 연구비 횡령과 관련된 감사팀의 재조사 결과를 기다릴 예정이다. 그는 인권센터 결정에 대해선 “아쉽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8개월을 돌아보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힘들었을 때 노조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관심이 큰 도움이 됐다는 A씨의 말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개인에게 주변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