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책 대신 총을 든다면?

연구실을 비워 내무반을 채우려는 국방부

  국방부는 지난 5월 17일, 병역자원 부족을 근거로 전문연구요원(전문연)을 포함한 대체복무제도 대부분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방부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이공계 대학생들과 과학기술계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또한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들과도 제대로 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폐지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을 뿐, 수개월 째 사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방력≠군사력, 군사력≠병력

  국방부가 전문연 폐지를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병역 자원의 감소인데, 이는 20년 전부터 예상되어 온 문제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역 자원의 감소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연 폐지를 통해 사병 2500명을 더 확보하는 것은 절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애당초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역 자원 감소는 겨우 수천 명의 현역병을 추가로 모집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 국방력은 군사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포함한 국력으로 결정된다. 국방부는 병력 수에 집착하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공계 박사급 인력이 내무반에 있을 때와 연구실에 있을 때, 어느 쪽이 국가적 차원에서 유익한 선택일까?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과학자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연구실에서 내쫓는 것은 명백한 국가적 손실이다. 한 발 양보하여 군사력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더라도 결론은 다르지 않다. 현대는 병력의 양보다는 무기의 질과 군의 첨단화 및 현대화 수준이 더 중요한 시대다. 사병 몇 천 혹은 몇 만 명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보다 국방기술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 정부도 수 년 전부터 국방개혁 2020 등의 정책을 마련하며 병사 수 감소에 대비하며 국방기술력 강화를 추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기술력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제도인 전문연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며,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다. 병사 수가 감소하고 국방 및 과학기술력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전문연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제도의 개선과 확대다. 이를 통해 우수한 연구 인력들을 양성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혜 논란‘의 본질은 

  국방부가 주장한 전문연 폐지의 다른 근거는 ‘병역의무 형평성’이다. 사실상 이공계 출신만 혜택을 보는 전문연 제도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전문연 복무자들 역시 전문연 제도를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특혜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전문연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다른 대체복무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나 미필 청년들이 현역 입대에 비해 전문연을 비롯한 대체복무를 선호하는 것은 대체복무가 대단한 특혜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현역병으로 입대하였을 때 겪게 될 권위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많은 경우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소위 ‘군대 문화’를 조금은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필 청년들은 대체복무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현역 입대를 기피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군대, ‘온갖 자유를 박탈당하며 시급 300원에 착취당하러 가는’ 군대를 기피하는 것이다.

  국방부가 추구하는 병역의무 ’형평성‘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모든 청년들을 예외 없이 공평하게 착취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국방부가 해야 하는 일은 ‘형평성‘을 말하며 대체복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에 대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적 착취를 멈추는 것이다. 시급 300원에 착취당하는 청년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반인권적인 소위 ’군대 문화‘를 개선하고, 병사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으며 존중받을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눈감고 귀닫은 국방부

  이번 사태에서 국방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학기술계, 특히 이공계 학생들과의 소통이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티끌만큼도 담지 않은 기만적인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그 결정이 당사자의 대학 입학부터 석사, 전문연, 박사까지 최소한 10년 이상의 인생 계획을 뒤집어 놓는 결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전문연 폐지 계획이 알려진 것조차 국방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라 한 기자가 입수한 계획안에 의해서였다. 국방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전문연 폐지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각계각층의 이공계 종사자가 반발하고 나서야 이루어 졌다.

  이공계 대학생들은 14696명의 폐지 계획 철회 서명운동과 수차례의 기자 회견, 각종 민원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철저히 일관된 자세로 성의 없는 매크로 답변만 반복했다. ‘현역복무인원 보충’이라는 기조 하에, 연구 현장과 이공계 대학생들의 미래는 물론 국가에 대한 신뢰까지 곱게 갈아 넣은 국방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이공계 학생들은 분명하게 분노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와 같은 졸속한 방식으로 전문연이 폐지되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고,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우수인재의 해외 유출도 심화될 것이다. 국방부는 근시안적인 전문연 폐지 계획을 철회하고 다양한 사회 분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특히, 이제라도 이공계 학생들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도정근(물리천문 15) 

자연과학대학 학생회 전문연TF(‘전반사: 전문연구요원제도 축소 및 폐지 정책을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할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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