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넷, 2011년까지 7년 동안 창조컨설팅이 와해시킨 노동조합(노조)의 수다. 헌법 제32조와 제33조에 명시된 노동자의존엄성과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문구가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창조컨설팅은 ▲단결권 침해 ▲어용노조 형성과 차별로 기존 노조 와해 ▲손해배상 청구금액 부풀리기 ▲원청의 개입 등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2003년부터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해왔다. 하지만 창조컨설팅과 그의 자문을 받은 회사에 대한 고소가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비교적 잘 조직됐던 노조들을 일개 회사가 어떻게 파괴할수 있었던 것일까. 노동자와 노조가 피를 흘리는 동안 정부와 법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서울대저널>은 노동권을 둘러싼 행정적, 법적 공백을 짚고 노동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보려 한다.
노동3권 보장하지 못하는 노조법
2010년 1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를 설립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이른바 복수노조 허용 조항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명시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이에 따르면 여러 개의 노조 중 더 큰 규모의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가 된다. 사용자가 교섭대표노조를 거부할 경우 각 노조가 개별적으로 사용자와 교섭을 행할 수 있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첫 번째 방법은 사용자 친화적인 노조인 어용노조를 조직하는 것이다. 복수노조가 합법화됐기에 사용자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어용노조를 조직할 수 있다. 어용노조는 노동자의 자주성을 중요한 가치로 명시한 노조법에 어긋난다. 하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신규 노조 설립에 있어 신고주의를 취하기에 노동조합 설립 조건을 충족한 노조라면 어용의 성격이 짙어도 노조로 인정하고 있다.
복수노조와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조건도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교섭창구 단일화란 여러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노사 교섭을 위해 노조들끼리 교섭을 행할 노조나 대표단을 새로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어용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에서는 교섭에 어용노조도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개별 교섭도 가능하다. 사용자나 노조에서 노동위원회에 신청하면 교섭단위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는 개별교섭 제도를 악용한다. 교섭단위를 개별 노조로 분할해 어용노조에만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혜택으로 다른 민주노조의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옮길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민주노조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유혹이다.

노동쟁의행위의 합법성에 대한 협소한 정의도 노동권의 발목을 잡는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분쟁은 크게 권리분쟁과 이익분쟁으로 나뉜다. 현재 노조법은 이익분쟁에 의한 단체행동만을 노동쟁의행위로 인정하고 있다. 권리분쟁이 이미 확정된 권리를 해석, 적용, 준수하는 것을 둘러싼 대립이라면 이익분쟁은 앞으로 권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익과 관련된 갈등이다. 따라서 임금체불, 정리해고 등 이미 노동자에게 보장된 권리를 침해한 것에 대한 노동쟁의행위는 모두 불법행위로 분류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본부 법규국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노동쟁의행위의 목적대상을 제한하는 나라는 OECD 가입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며 “법에서 노동쟁의를 협소하게 정의하면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법적으로 부정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되면 형사상의 책임뿐만 아니라 민사적인 책임도 뒤따른다.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물어내야 하는 것이다. 협소한 합법의 영역과 수십 억의 손해배상액은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짓누르고 있다.
노동3권 침해받아도 해결은 요원해
현 노조법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3권을 침해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정의한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자와 노조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일단 고용노동부를 거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노동자나 노조의 신고가 들어오면 고용노동부는 공안검찰의 관리를 받는 근로감독관을 파견한다. 근로감독관은 경찰로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다. 검찰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기소가 결정되면 형사재판이 열리고 사측은 피고로서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를 통한 사법적 처벌은 해결 가능성이 낮은 선택지다. 근로감독관의 부족한 역량이 발목을 잡는다. 박성우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이 공안부 검찰의 지휘를 받다 보니 노사관계를 공안의 시각에서 보수적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장인 송영섭 변호사는 “검사의 수가 부족해 한 검사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의 노동쟁의행위를 동시에 담당한다”며 “이들은 쟁의행위에는 신속하게 대처하지만 부당노동행위는 느리게 처리한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기소율도 현저히 낮다. 검찰의 기소로 재판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건은 벌금형인 약식기소로 끝난다. 가까스로 정식재판이 열려도 판결까지는 몇 년이 걸린다. 빠른 시정조치를 바라는 노동자와 노조에게 몇 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판결도 대부분 가벼운 양형을 선고한다.


두 번째 방법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소속의 준사법적 행정기관으로서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쟁의와 갈등을 조정한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판단하고, 부당노동행위로 판명이 난 사용자의 행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다. 사용자의 불법 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제는 노동위원회 제도의 장점이자 존재 의의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구제조치 또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접수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서 부당노동행위 각하 판정 대비 인정 건수의 비율이 5%의 언저리를 맴돈다. 15%를 웃돌았던 2007년의 수치에 비해 한참 밑이다. 설령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아도 사측이 노동위원회의 구제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은 아득해진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해야 하며, 사용자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도 불복할 경우 행정소송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법적 절차의 대안으로 각광받은 노동위원회는 낮은 인정비율과 행정절차의 늘어짐으로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신규노조 등록 시 정부 심사권 강화, “양날의 검”
어용노조의 설립으로 기존 민주노조가 위협을 받자, 일각에서는 노조설립의 신고 단계에서 어용노조의 등록을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김상은 변호사는 “노동조합이 일단 설립되면 자주성을 결여한 노조(어용노조)도 교섭권을 가지고 단체협약에 참여하게 된다”며 “이를 계속 방치하다 법원에서 공방을 벌이게 될 경우 많은 비용과 많은 이들의 고통이 수반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에 대한 심사 자체를 강화해 어용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심사권의 강화가 노동조합에 관한 정부의 간섭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전 국회의원은 “현재의 심사도 기준이 엄격하다”며 “한국에서 노조의 설립은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의 이정희 부연구원은 “노동부의 심사권이 강화되면 회사 주도의 노동조합을 적발해 설립을 저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노동부의 감시감독을 강화시키면서 자생적인 노조의 설립이 방해를 받을 위험도 있다”며 “이는 양날의 검”이라고 말했다.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하는 행정당국의 전문성 길러야
그렇다면 어용노조로 인한 기성 노조 와해는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박성우 노무사는 “당국이 어용노조를 비롯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의 검찰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인정비율이 낮다. 박 노무사는 “현행법이 노동자와 노조에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물증을 요구하고 있지만 부당노동행위는 구체적인 증거를 잡기 어려운 범죄”라고 밝힌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엄격한 법리적 판단보다는 노사관계의 정황을 살펴 추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성우 노무사는 부당노동행위의 판단에 있어, 노사관계의 갈등과 협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행정감독관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현재 지방노동위원회는 전국노조 출신의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그리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위원장이 추천하는 공익위원으로 구성된다. 박 노무사는 “오랜 기간 노사관계와 관련된 일을 하면 경향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정파적인 인물은 들어올 수 없다는 이유로 관련 분야의 경력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이혼 전문 변호사, 무생물체 연구 교수 등 노사관계 부문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노동위원회에 들어왔다”며 “노동위원회는 행정기관의 독단적인 행정 판단을 막는다는 취지에 맞게 노사관계 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송영섭 변호사는 “부당노동행위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운영방식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한다”며 노사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근로감독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로감독관의 권한도 강화해야한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전 의원은 “근로감독관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기소 의견을 송치해도 상위의 검사가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가 있다”며 “근로감독관에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형 기준 높여 사용자 솜방망이 처벌 막아야
현재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법적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이다. 검찰로 송치된 사건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약식 기소로 끝난다. 정식 기소로 처벌을 받아도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드물다. 민변의 김상은 변호사는 “벌금형은 크게 효력이 없다”며 “사용자의 노조 파괴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노조 파괴 행위로 기소가 된 사용자들에 대한 처벌이 명확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노동자가 사용자라인을 정지시킨 경우 모두 실형을 선고받는 것에 비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원의 양형 기준은 너무 낮다”며 “노조법 위반 행위와 노조 와해가 노동자에 미치는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양형 기준과 법정형의 상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전 의원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볍기에 사용자가 헌법과 노조법을 쉽게 위반한다”며 “한 번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기업의 경제적 상황에 큰 타격을 줄 정도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제도를 마련해, 사전에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막아야한다”고 전했다.

단체행동권 보장, 합법적 파업 영역 확대에서 시작해야
노동쟁의행위를 협소하게 정의하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크게 위협받는다. 은수미 전 의원이 2015년 11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노조법에 명시된 노동쟁의행위의 정의를 개정하기 위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이 발의안은 노동쟁의행위를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에서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변경하면서 권리분쟁도 합법적인 테두리에 포함시키고 있다. 박성우 노무사는 “1997년에 노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모두 정당한 쟁의로 인정했다”며 “법조항만 개정하면 해결될 간단한 문제”라고 말했다.
헌법은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인간은 인간다운 노동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노동3권을 보장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불법행위와 행정당국의 방관 사이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