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도서정가제(정가제) 관련 법률인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는 책값 할인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기존의 정가제가 책의 정가에 붙는 할인율을 최대 19%로 정했다면 작년의 개정법은 할인을 최대 15%로 제한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할인을 왜 막느냐’며 정가제를 ‘제 2의 단통법’에 비교하는 등 거센 반감을 표했다. 법이 개정된 지 반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출판시장은 활기를 조금 회복해가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오해는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정가제가 필요한 이유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의 다양성 보존과 소비자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정가제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서점은 출판사가 정한 정가대로 팔아라’이다. 정가제는 1977년부터 출판계와 서점계의 자율적인 결의로 실시됐다. 90년대 대형할인서점과 온라인서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성장하면서 중소 서점은 시장 경쟁력을 잃어갔다. 정가제의 법적 규제력이 요구됨에 따라 2002년에 정가제는 처음 법률로 제정됐다. 하지만 작은 서점을 보호하려는 것이 정가제의 유일한 취지는 아니다. 정가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작은 출판사와 도서 소비자들의 경제적, 문화적 이윤을 키우는 것이다.

과당할인경쟁 속에서 책값 할인이 커질수록 책의 정가는 높아진다. 정가에 할인을 전제로 한 거품이 끼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연감》의 자료에 의하면 평균 도서 정가는 2005년부터 증가 추세다. 이렇게 정가가 높아지면 서점 사이의 할인 경쟁이 생겨난다. 소비자가 책값에 부담을 느껴 판매량이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아지는 정가에 발맞추어 모든 서점이 할인 폭을 키울 수는 없다. 같은 책이라도 출판사가 서점마다 다른 가격으로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서점이 거래하는 책값이 정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공급률’이라고 한다. 어떤 책의 정가는 만 원인데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공급할 때 가격이 7천 원이라면 이때 공급률은 70%다. 공급률이 70-80%면 서점은 책값을 할인할 수 없다. 적어도 25-30%의 이익을 남겨야 서점 운영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정가대로 팔아야만 정가의 30%인 3000원이 남는다. “그런데 할인을 하지 않으면 남들과 경쟁이 안 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을 하죠” 관악구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을 운영하는 김동운씨의 말이다. 하지만 만약 공급률이 50%라면 서점은 소비자에게 정가의 20%할인을 하고서도 3000원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왜 공급률에 격차가 있을까? 서점이 규모가 크고 인터넷으로 접근이 가능하면 그만큼 책이 소비자에게 쉽게 노출되고 판매량이 비교적 높을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급률은 통상적으로 작은 서점과의 거래에서보다 도매 서점의 거래에서 5-10%가 낮게 설정된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과의 거래에서는 남은 재고를 반품하는 조건으로 공급률이 5% 정도 추가적으로 낮게 설정된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만이 매년 상승하는 책의 정가를 낮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정가제로 할인경쟁이 완화되면 도서 정가에서 과도한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 이는 작은 서점의 숨통을 틔워줄 뿐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실적인 정가 하락이 중요한 것이지 (책값을 낮추는)명목상의 할인은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하며 “정가제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거품이 제거돼 책값이 낮아지면 소비자는 어느 서점에서 가격이 더 싼 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소비자 자신이 원하는 책이 있다면 어느 서점에서든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정가제는 책의 다양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공급률이 독보적으로 낮게 공급되는 부류의 책이 있다. 바로 매출이 클 것이라고 예측되는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는 낮은 공급률로 인해 할인 폭이 크고 판매부수도 많다. 이러한 이유로 책의 상업성은 저작단계부터 무시될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즉 책이 가치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는 다양하고 우수한 질의 책을 출판하고 신진저자들을 배출하려는 출판사에게나, 가치 있고 다양한 책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나 실망스러운 시장이다. 정가제는 공급률을 직접 규제하지 못하지만 할인 제한을 통해 공급률 격차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가제는 책의 다양성과 문화적 가치를 증진한다.
정가제는 구간과 신간의 공존에도 도움이 된다. 개정 이전의 정가제는 신간의 할인율만 규제했다. 정가제가 개정되면서 구간(舊刊)도 신간과 동일한 할인율 제한을 받게 됐다. 양철북 출판사 대표 조재은 씨는 “시장을 차지하는 신간 대 구간의 비율이 6:4를 유지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구간 할인율이 워낙 높다보니 신간 대 구간의 비율이 역전됐다”며 신간이 가격경쟁력을 잃어 출판 시장에서 책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정가제는 신간 대 구간의 비율을 정상화하여 신간과 구간이 동등한 조건에서 가치 경쟁을 하게 한다.
정가제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서연) 회장은 정가제의 영향으로 “사회 전반에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모니터링 결과 보도자료에 의하면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60%-70%에 달하던 광폭적인 할인 경쟁이 멈추었고 ‘개정 정가제 시행 전 주간베스트 20위권(교보문고 기준)에신간이 13종을 차지했던 것에 비해 시행 후 3개월째에는 신간이 18종을 차지’했다. 또한 신간 단행본 도서 평균정가가 4.2% 하락했다. 하지만 정가가 실질적으로 하락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서점‘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씨는 “소설 단행본 가격의 하락은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할인을 금지하는 완전정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문과학서적에 한해서는 체감하는 바가 전혀 없다”고 언급했다. 김 씨는 또한 “매출이 늘 만큼의 변화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단, 작은 서점들이 반기는 큰 변화가 하나 있다면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이 책을 공급받는 경로가 지역의 작은 서점들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개정 정가제 시행 전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은 최저가입찰제도로 도서를 공급받았다면 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관들은 지역의 작은 서점들이 투찰할 수 있는 학교장터를 통해 도서를 공급받고 있다. 서점 ‘그날이 오면’도 올해 상반기에 처음으로 지역 도서관과 계약을 여러 건 맺었다.
한편, 정가제가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개정된 정가제는 인터넷 서점의 무료배송, 카드사 할인 등을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15% 할인 제한이 무색하게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다른 유통경로를 이용하여 정가제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간 경우도 있다. 홈쇼핑채널을 통해 할인을 크게 하여 책을 판매하거나 책을 경품으로 하여 판매를 하는 등의 편법 판매가 등장했다.
박대춘 한서연 회장은 “경품에 대한 제한 역시 개정법이 포함하고 있지 않아 지난봄에 치열한 경품 마케팅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 4월 8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경품제공(추첨식 경품 포함)의 경우 정가의 15% 이내에서만 허용”한다는 후속 조치를 취했고 경품 경쟁이 완화됐다.
이에 대해 정가제가 취지에서 벗어나 형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양철북 출판사 대표 조재은씨는 도서를 구매한 사람들 중 몇 명을 추첨하여 강연에 초대하는 것과 같이 도서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혜택 또한 ‘경품’으로 해석되어 규제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할인판매는 엄격하게 제한하되 선별된 경품은 가능하게”하여 규제 범위를 정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정가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해 ‘출판‧유통업계 자율협약’이 체결됐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요구에 응해 같은 해 12월에는 ‘자율도서정가협의회’가 결성됐다. 그러나 법률의 개정이 없는 민간차원의 노력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박대춘 한서연 회장은 “강제성이 없는 민간 차원의 협약이고 ‘자율’협의회다보니 한계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출판계, 서점계 측 ‘완전정가제 도입이 필요해’
서점 ‘그날이 오면’ 대표 김동운 씨는 현행 정가제가 허용하는 최대 할인 폭인 “15%가 웃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현행 정가제는 서점에게 정가 15% 할인을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날이 오면’을 비롯해 서점들 중에 완전정가제를 고수하는 서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김 씨의 설명에 의하면 서점을 찾은 손님이 ‘정가를 다 받느냐’며 발길을 돌리는 일이 잦다고 한다.
김 씨는 “(할인이)없어져야 소비자에게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가도 눈에 띄게 안정화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소비자 반감도 크죠”라고 덧붙였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백원근 씨는 “(할인)15%를 인정하는 정가제는 다른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완전정가제 시행을 지지했다. 그는 “완전한 정가제로 가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서점들이 존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완전정가제를 통해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 또는 제 3의 유통 경로에서 책을 판매하는 가격이 같아지고 출판시장의 기회균등이 담보된다는 설명이다.
책의 소비자는 그 책이 쓰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제한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언어권의 출판 시장이 커지고 책값은 낮아진다. 이런 이유에서 영어권 국가들은 페이퍼백(paperback) 책을 만들어 팔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페이퍼백 책은 접착제로 붙여진 속지와 종이 표지로 만들어져 값이 싸다. 서점이 페이퍼백 책을 판매하며 박리다매를 하는 것은 수 만 부 발간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책 한 권을 출판하면 평균 2천부를 발간한다. 우리나라처럼 규모가 작은 출판 시장은 정가제 없이 이상적인 경제적 안정과 문화 다양성을 획득하기 힘들다. OECD 국가 중 비영어권 국가인 프랑스, 독일, 일본 등 16개 나라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정가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좋은 저자를 발굴하고 마케팅을 하기 위한 기반이 약한 작은 서점이나 작은 출판사의 조건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가제는 자본주의 사회 속 작은 출판 시장에서 그들이 제공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완전정가제가 시행되는 시장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신문 시장이다.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신문을 구매하든 소비자는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 가격 경쟁 때문에 언론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씨는 “책의 저작단계, 생산, 유통, 가격 설정, 모든 면에서 한국어로 된 책의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완전)정가제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