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우는 세상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대표

  2015년 5월 20일 인천 송도에서‘ 2015 세계교육포럼’이 열렸다. 주요 패널들의 발언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그 때, 한 여성이 번쩍 손을 들었다.“ 이 자리는 향후 15년간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리인데 한 시간 반 동안 자기 칭찬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을 이어 나가려던 순간 마이크가 꺼졌다. 그 여성은 큰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청중석에 앉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5월 20일, 작은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은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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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대표 ⓒ 문주은 사진기자

“나는 그때 화가 나 있었다”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모모)’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연구하는 단체다. 모모라는 이름은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운다는 모토에서 나왔다. 또한 모모란 이름은 미하일 엔데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특히 모모는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사 및 교육활동가 프로그램을 제공해 일선 학교에서의 평화교육담론 확산을 추구한다. 여기서 평화교육이란 전쟁, 테러, 폭행과 같은 직접적 폭력 외에도 사회 내 간접적, 구조적 폭력을 알아차리는 민감성을 깨우는 것이다. 그를 위해 모모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수직적 강의보다는 수평적 참여, 문화예술과 현장체험과 같은 실천적 방식을 이용한다.

  문아영 대표가 패널들의 말에 반박했던 포럼의 주제는 ‘교육이 발전을 이끈다: 한국 교육의 사례를 들며(Education Drives Development: Example of Republic of Korea)’다. 교육이 국가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국가 발전에 연결된 교육을 정책적으로 고민해보는 자리였다. 그러나 한 시간 반 동안 패널들에게서 나온 말은 한국의 교육열과 그 교육열이 이끈 경제성장에 대한 자화자찬이었다.“ 사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문 대표는 기본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논의해야 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그저 한국의 교육에 대한 칭찬뿐인 상황이 어이없었다. 그는“ 교육과 경제 발전간의 상호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교육포럼에서는 교육의 질적 측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운영 방식도 문제점으로 짚었다. 무엇보다 이 포럼이 다양성과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유네스코(UNESCO)가 주최한 포럼이었기에 그녀가 느끼는 실망감은 컸다. 그녀가 자신의 발언에서 ‘패널과 질문자가 모두 남성인데 이제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되었다’ 라 말한 이유다.

“상자 밖을 나가도 괜찮아”  학창 시절의 문아영 대표는 오히려 모범생에 가까웠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공부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구나’를 느끼며 공부에 몰두했다. 본래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했으나 수능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자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다. 한국교원대학교 독어교육과에 진학한 후에는 ‘초등교육을 복수전공하지 않으면 너만 뒤처지는 거야’라는 주위의 말에 초등교육을 공부했다. 그녀는 이 시기를 “사회가 만든틀 안에서 살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안정적인 삶을 걸어왔지만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초등교육이었지만 그 공부가 방법론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며 그녀는 학교 공부에 회의를 느꼈다. 주변에서 임용고시 준비에 매진할 때 문 대표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 이에 초등임용고시를 보지 않았다.  문 대표의 이런 모습에는 동생의 고등학교 자퇴가 큰 영향을 끼쳤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문학 책을 읽던 동생이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어요. 그런데 동생이‘문학책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라 선언하고 학교를 자퇴한거죠.” 그 전까지 문 대표는 단 한 번도 학교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동생의 자퇴는 문 대표에게 큰 충격이자 ‘정해진 길을 벗어나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었다.   주어진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한 또 다른 계기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에 겪었던 경험이다. 문 대표가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던 2007년에 국가성취도평가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그때 함께 근무하던 동료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했던 아이들에게 시험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알려줬다. 시험 당일, 해당 교사를 대신해 교감선생님이 시험 감독을 하러 들어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반의 아이들이 교감선생님께 자신들에게는 시험을 볼지 안 볼지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며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학교 안팎에서는 아이들과 시험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 얘기한 교사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그 판단이 어른의 판단보다 더 현명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경험은 문 대표로 하여금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임용고시를 보지 않은 초임 교사였기에 그녀는 그 동료 교사와 반 아이들의 행동에 감동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과도 교사와 학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임용고시를 본 사람은 그 사람만의 몫이 있는 거고, 그렇지 않은 저는 저만이 할 수 있는 몫이 있는 거죠”, 그녀가 말했다. 이처럼 그녀만의 작은 방식들을 통해 문 대표는 사회가 정한 상자 밖을 나가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평화”

  3년의 기간제 교사 생활을 마무리한 후 문아영 대표는 아동권과 아동교육권을 더 공부하고자 대학원에서 국제인권법공부를 시작했으나, 한 학기만에 휴학했다. 이후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에서 일을 하던중, 평화학을 전공한 교수를 만났다. 그와 대화를 하며 문 대표의 마음에는 가해자의 인권도 같이 다루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주장할 수 있는 평화라는 개념이 깊이 들어왔다. 그녀는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과 평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이 두 가지 주제를 잡을 수 있는 곳은 코스타리카에 위치한 유엔평화대학이었다.

  

  유엔평화대학은 전 세계에 쌓여있는 평화 문제를 접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60여 개국, 약 150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언론, 인권, 젠더, 법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가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었다. 평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역설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는 모습도 문 대표에게는 흥미로웠다. 이스라엘에서 왔던 이들은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다가도 이스라엘의 국가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의 인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만나기만 하면 갈등을 빚곤 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갈등상황을 매일 마주하면서 문 대표는 평화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2012년 여름, 그녀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고민이 다가왔다. 한국에서 평화교육을 내세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제약하는 한국 공교육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비영리단체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됐다. 비영리단체 설립과 관련해 모아둔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면서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의 취지와‘ 모모’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 등을 담은 제안서를 작성했다. 이후 주변 지인들 중 두 사람이 합류해 총 세 명의 창립멤버가 모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2주에 한 번씩 만나 준비 작업을 거쳤고 이윽고 2013년 1월 모모의 첫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평화교육 프로그램은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시민활동을 해온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으로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통해 평화교육 모델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초보 교육자들의 입장에서는 활동가들을 대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워크숍은 성공적이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은 배신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시민운동가들은 초보 교육자들이 말하는 평화에 뜨겁게 호응했다. 긴장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감기에 걸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문 대표는 워크숍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첫 워크숍에서 만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100회의 워크샵 진행’을 목표로 세웠던 첫 해에 모모는 170회의 워크샵을 진행했다. 출범 2년차인 2014년부터는 프로그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판타스틱 평화교육’,‘ 학부모 평화교육’,‘ 모모수다원’,‘모모평화대학’,‘ 평화교육진행자되기 입문과정’,‘ 모모평화대학’ 등 학술적인 공부모임에서부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으로 확장됐다. 만나는 사람도 예비 및 현직 교사, 시민활동가, 교육과 평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 등으로 확장됐다. 처음에는‘ 평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둘기와 전쟁, 통일문제를 떠올렸던 사람들이 점차‘ 일상에 숨어있는 구조적 폭력’내지 ‘적극적 평화’ 개념을 고민하게 됐다.

“빨리 청소년을 만나야겠다”

  7월의 마지막 주, 모모는 청소년 대상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인 ‘집시(GYPCI,Glocal Youth Peaceful Community Innovator)’를 진행했다. 집시는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질문과 문화예술활동을 중심으로 내면에 지닌 평화민감성을 깨우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은 모모 출범 첫 해부터 문아영 대표의 머리 속에 있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세월호에 대한 기성세대와 언론의 반응을 보면서 위기의식이 들었어요.” 점차 고령화와 덩달아 보수화되는 사회에서 청소년만의 감수성과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문 대표는 2015년을 시작하며 ‘올해는 반드시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목표를 세웠고, 집시는 이런 목표 아래 기획됐다.

  외부의 지원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힘겨움도 있었다.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위기 청소년’을 목표로 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모모는 청소년 자체를 시민권 사각지대에 놓인 존재로 봐요. 따라서 청소년들 안에서‘ 위기 청소년’ 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굉장히 폭력적이죠”라며 비판했다. 시민권에 있어서 이미 약자인 그들을 또다시 더 약한 자와 덜 약한 자로 구분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결국 집시는 모모 자체 재정으로 운영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고, 폭력이나 권력, 구조문제 등에 대해 공부했다. 집시가 진행되던 네 번째 날 참가자들은 삼각산 재미난 마을, 종로 창신동 공공공간, 용산 해방촌, 강남 개포동과 포이동으로 답사를 떠났다. 그 장소에서 돌아온 후 놀랍게도 아이들은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며 그날 밤을 지새웠다. 문 대표는 그런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열일곱 살짜리 고등학생이 그 얘기를 해요. ‘사회가 말하는 잘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좋은데도 자신은 약자들을 위해 살고 싶다. 그런데 그러면 너무 힘들 것 같아 고민’이라고요.” 또 다른 아이는 용산 참사 현장을 돌아보며 ‘재개발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많이 희생시켰다면 그 땅을 잘 써야 하는데 왜 이 땅은 버려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현장에서 얻은 자신만의 질문이었다.

우만사_ⓒ오마이티비_5월 20일 열린 세계교육포럼 직후 문아영 대표가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_세계교육포럼 관련 첫 문단이면 좋을텐데 사진 과잉이 될것 같으면 적절하게...jpg
▲ 5월 20일 열린 세계교육포럼 직후 문아영 대표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말하고 있다. 

ⓒ오마이티비

“작은 행동과 고민은 큰 담론과 맞닿아 있다”

  사회가 말하는 ‘잘 사는 삶’에 동화돼가는 20대의 우리 역시 청소년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물었다. 문 대표는“청년들의 삶은 분명 바빠요. 하지만 내 삶이 바쁘고 내가 잘 사는 것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못 본 척한 결과라면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요?”라는 질문으로 대답했다. 문 대표는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청년을 비롯한 전 세대가 갖기를 바랐다. 고민하지 말라 채근하는 사회에 맞서‘ 자신의 존엄성과 타인의 존엄성, 나아가 타인의 고통이 어떻게 연루되어있는가’등을 고민하며 나와 타인의 연결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서울대생들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다른 형태의 사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아영 대표는 “(청년들이) 자기 마음의 강한 끌림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한번은 그 끌림에 자신을 맡겨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물론 그것이 무작정 이상만을 좇는 선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떠한 선택이더라도“진정 자신이 돼 선택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문아영 대표에게 꿈과 목표를 물었다. 그녀는 “무진장 많은데?”라 말하며 전쟁이 줄어든 세상, 유엔(UN)의 민주화, 군비축소 등 거창한 주제들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모가 실천적 연구공동체가 되고,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모모를 하고, 세상에서 평화문제가 핵심논의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꿈들 중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공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변화의 행동이 꼭 거대한 무언가는 아니다. 문 대표는 “글로컬(glocal)한 오늘날 지금 이 자리에서의 작은 행동과 고민이 큰 담론과 맞닿아있어요”라 말하며 추상으로 느껴지는 평화개념은 우리의 삶에서 찾아보면 그리 멀지않다고 지적했다. “모든 상투적인 것에 저항하고 전복하는 것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신의 관심사를 굉장히 추상적인 사회문제로 확장시키기 전에 내 주변, 내 지역에서의 차별을 먼저 고민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녀가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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