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치스탄…’, ‘미.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터넷 뉴스에 자주 달리는 댓글이다. 장애인용 주차장에 주차한 국회의원, 구급차, 소방차가 지나가도 비켜주지 않는 차량들, 각종 문화재에 사랑을 맹세한 내용의 낙서들, 사진 촬영을 금지한 미술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여배우가 그 대상이다. 11월 15일부터 16일까지 동대문 어울림광장에서 열린 ‘피카츄 쇼타임’ 행사에서는 피카츄를 보기 위해 동대문 유구 전시장을 짓밟는 시민들의 모습이 SNS에 퍼져 키보드평가대 위에 올랐다. 피카츄를 사랑한 이 시민들은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미개한 쓰레기들’이라는 평을 획득할 수 있었다.
네티즌들은 이처럼 미비한 시민의식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은 아직 후진국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반복되는 ‘미개한’ 사례에 아예 ‘민족성’을 지적하고, ‘조선인’ 운운하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과연 네티즌의 말대로 우리는 그 민족성 자체부터가 문제였을까? ‘4계절이 뚜렷하고 불고기와 김치가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리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애써 부인해봤다. 혹시나 민족성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식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도로교통법, 소방기본법,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문화재보호법 등을 찾아봤다. 법은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각 상황에 맞는 세세한 규정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13년,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중요한 ‘골든타임(5분)’ 안에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도착한 비율은 58%에 불과했다. 그럼 내 편의와 눈앞의 이익에 ‘법 따위’를 가볍게 무시해주는 국민들이 결국 문제인것인가?
왜 ‘김치스탄’의 국민들만 유독 ‘안 걸리면 되지 뭐’, ‘이정도야 뭐’라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까? 집 쓰레기를 가져와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은 며칠 전 들른 은행의 쓰레기통에도 붙어있었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높은 신분이니까’, ‘높은 사람 의전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는 생각이 국회의원의 차량을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미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는 긴급차량이 접근하면 모든 차량이 일제히 도로 양쪽으로 붙어 긴급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 결과 2013년 미국 뉴욕 및 버밍엄에서는 소방차가 골든타임을 지킨 비율이 100%를 기록했다.
이들 지역과 우리나라 ‘긴급차량 진로 양보 및 일시정지’ 법규 간의 차이점은 첫째, 벌금의 액수다. 한국의 도로교통법 제156조에 따른 과태료는 최대 20만원이지만, 실제 시행규칙을 찾아보면 자전거 2만원에서 승합자동차 5만원이 최대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오리건 주에서는 긴급차량이 접근했을 때 길을 비킨 뒤 일시정지하지 않을 경우 83만원의 벌금을, 캔터키 주에서는 7~60만원의 벌금 또는 30일의 금고형을 내린다. 미네소타 주의 휴스턴 카운티에는 19만원의 벌금과 함께 법률 위반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시에 벌금을 두 배로 늘려서 부과한다는 규정이 있다. 캐나다는 41~53만원의 벌금을 내며, 러시아는 7만~9만원의 벌금을 내거나 2~6개월 간 면허가 정지된다. 둘째는, 이러한 법률을 실제로 ‘시행’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긴급차량 진로 양보 및 일시정지’를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제 29조는 2011년 9월에 개정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이를 어긴 차량의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2014년 10월이 처음이다. 불과 한 달 전의 일로, 법 개정 3년만의 첫 사례인 것이다. 게다가 주정차 단속과는 달리 긴급차량 진로 양보 및 일시정지 여부를 단속하는 담당 공무원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이제 한국의 제도는 ‘반쪽짜리’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맞춘 합리적인 규정을 만든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진’ 시민의식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해당 규정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때까지는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벌금 강화와 같은 강력한 처벌만이 해답은 아니다. 긴급차량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자면, 뉴욕 시에서는 벌금제도 이외에 긴급차량과 연동돼 작동하는 신호 체계, 민간 업체 고용을 통한 철저한 부정 주정차 단속 등의 제도가 체계적으로 잡혀있다. 소방방재청에서 아무리 긴급차량 양보 매뉴얼을 배포하고 홍보해도 운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제도의 변화가 없다면 양보 및 일시정지 규정과 과태료에 대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치스탄 사람들이 법규에도 불구하고 ‘미개한’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없더라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만이 ‘선진 시민’이라면 ‘미개’하다고 비난받아도 괜찮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놓고 제도를 통한 시민의식의 발전가능성까지 짓밟지는 말자. 지금 김치스탄에서 필요한 건 비난과 훈계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유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