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만기보험이란?
이주노동자 전용 보험 중 하나로, 퇴직금에 해당한다. 이주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적용받기에 4대 보험에 가입되고 최저임금과 퇴직금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과거부터 사용자들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권리 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출국만기보험은 이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근로 기간 중 사용자가 일정 금액씩 적립해 퇴직 시에는 사용자를 통하지 않고 보험사업자에게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면서 출국만기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용자는 과태료 5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2013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돼 2014년 7월 29일부터 시행됐다. 개정 법안의 주 내용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이라고 할 수 있는 ‘출국만기보험’의 지급 시기를 퇴직 후 14일 이내에서 출국 후 14일 이내로 변경하고, 휴면보험금을 산업인력공단에서 맡아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 개정 취지는 출국하는 이주노동자에게만 퇴직금을 지급함으로써 불법체류를 막는다는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와 인권활동가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예상하고 반대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개정 법안은 7월 29일부터 예정대로 시행됐다. <서울대저널>은 논란이 되고 있는 개정안을 들여다보고, 이와 관련한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쏟아지는 문제 사례들, 퇴직금은 어디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실제 시행되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취재를 통해 알아낸 대표적 문제 사례들을 이야기로 구성해봤다.
case 1.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와 4년 10개월을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A 씨는 출국 바로 전날 삼성화재해상보험(이하 삼성화재)에서 보내주는 출국만기보험금 예상수령액 안내문을 받았다. 출국만기보험금은 통상임금으로 계산해 납입하고 퇴직금은 실제의 각종 수당을 더해 계산하기 때문에 퇴직금 금액이 출국만기보험금보다 대체로 많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차액은 사용자가 지급해야 한다. 예상수령액 안내문에는 삼성화재에서 지급할 금액(출국만기보험금)의 액수가 나와 있었다. A 씨는 실제 자신의 퇴직금을 계산해 보고, 보험금에서 300만 원 정도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규정대로 이 차액을 사장에게 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장은 자기가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며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정해진 출국 날짜에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차액은 받지 못했다.
case 2. 스리랑카에서 온 B 씨는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그는 정부에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고 이전 직장에서 퇴직한 뒤 3개월의 구직 기간을 얻었다. 그는 예전처럼 퇴직금을 받아 월 60~80만 원가량의 생활비를 충당하려 했다. 그런데 출국만기보험금을 수령하러 간 B 씨는 ‘법이 바뀌어 나중에 출국할 때가 되어야 받을 수 있다’며 지급을 거절당했다. 몇십만 원 정도의 차액이 있어 사장에게 받으려고 했지만, 사장은 차액 정산도 출국할 때 하는 것이라며 주지 않았다. B 씨는 결국 친구의 돈을 빌려 3개월을 간신히 버텨야 했다.
case 3. 파키스탄에서 온 C 씨는 출국 날이 돼 즐겁게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만기보험금을 수령하러 갔더니, 갑자기 삼성화재에서 지급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내용을 알고 보니, 사장이 지급 정지를 요구했던 것이다. 사장은 전화로 그에게 15만 원을 요구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15만 원을 보내자 사장은 지급 정지 요청을 풀어줬고, 그제야 C 씨는 출국만기보험금을 받아들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의 퇴직금과 관련한 수많은 문제들은 법안이 개정되기 전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법안 개정 후 새로 발생한 가장 큰 문제점은 이전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에 체류하며 구제받을 수 있었는데 일단 출국을 하고 나면 구제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개정된 제도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 청구권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의 석원정 소장은개정안에 대해 “당국은 기존의 부당한 문제들은 해결하지 않고,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서 “대다수의 선량한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처사”라고 말했다.

▲ 개정된 제도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출국만기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은 더 큰 불편을 겪는다. ⓒ 고용노동부
불법체류자 축소를 명분으로 퇴직금을 미끼 삼은 정부
한국에서 퇴직금은 임금의 일부로 인식되며, 퇴직 이후 생활 보장을 위한 실업 급여의 성격을 지닌다. 퇴직금과 관련한 권리가 강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현 제도 하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출국할 때까지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직장을 옮겨도 이전 직장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임금이 보험사업자에게 강제로 맡겨져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강제저축’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에 반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강제저축은 노동권이 열악하던 시절 사용자가 노동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생겨난 악습인데, 현 제도는 이를 금지한 근로기준법에 실질적으로 저촉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만 퇴직금 지급에 차별을 두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국적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것에도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국가의 이름으로 법에 어긋나며 노동법의 기본 원칙들을 깨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출국만기보험금은 귀국한 이주노동자가 본국에서 버림받는 경우가 생겨, 보험금을 귀국 후 정착금으로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지 엄밀히 말해 퇴직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출국만기보험금은 퇴직금과는 다른 민법상 재산권으로 보아야 하고,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 “처음 출국만기보험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근무지 변경이 거의 없었던 시기라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출국하며 퇴직금을 수령해 굳이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았을 뿐, 원래 출국만기보험은 출국 후 지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 노동자의 재산권 침해 여지에 대해서도 “세상 어느 나라가 외국인과 내국인의 재산권을 동등하게 취급해 주느냐”고 반문했다.
윤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애초에 출국 만기보험 소멸시효를 임금채권과 같게 3년으로 연장한 것에 대해 ‘이것이 퇴직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며 “고용노동부가 기존의 여러 공문과 자료에서 퇴직금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퇴직금이라고 인정하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로 말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또 “개정 법안에는 숨은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의 여러 제도들이 점점 사업장 변경을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주노동자는 자유롭게 이직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와 사용자가 허가해줘야 퇴직을 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이를 사업장 변경이라고 한다. 윤씨는 기존 제도 하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이 통제를 받고 있었는데, 여러 제도 변경이 이어지면서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출국만기보험을 출국 후 수령하도록 한 것 역시 이주 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어렵게 해, 이들의 노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근로자의 이직을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상 ‘강제근로금지’에 위배될 수 있다.

▲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주요 개정 내용 비교. (2013.12.31)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 뒷받침돼야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인권 관련 활동가들은 출국만기보험 등 제도를 둘러싼 문제 해결을 위해 철저한 사용자 교육이 선행돼야한다고 지적한다. 이주민 인권활동가 소모뚜 씨는 “이주노동자는 2박 3일간 숙박하며 이주노동자 제도 관련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하는데, 사장님들은 바빠서 그런 걸 못 받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용자 교육 제도는 있지만 강제는 아니고 인센티브제로 운영한다”며 “내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도 노동 제도 관련 교육을 이수하지 않는데,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만 관련 교육을 특별히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질적인 부분도 문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교육 내용은 주로 사업장에서 도망치지 말고 사장의 업무지시를 잘 따르라는 등의 것이다. 정작 노동자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교육 내용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윤 씨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고용허가서 발급과 관련한 절차적 지식만 포함하고 있을 뿐, 노동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보장을 해줘야 하는지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구직 기간 중 생계 곤란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출국만기보험금을 담보로 생활비 대출을 할 수 있는 상품을 10월 중으로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이주민 인권활동가 소모뚜 씨는 “자기 돈이 있는데 쓰지 못하게 하면서 담보로 삼아 빌려 쓰라는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사유 재산 침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출국만기보험을 담당해 운영하고 있는 삼성화재의 운영 구조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현재 삼성화재의 미얀마 상담원은 일주일에 하루만 근무하고, 캄보디아 상담원은 아예 없는 등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모뚜 씨는 “이주노동자도 삼성화재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국인 고객과 비교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본지는 통역 인력 운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삼성화재에 질의했지만 삼성화재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답변을 거절했다.

▲ 삼성화재는 외국인근로자보험을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 상담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심지어 각 나라별 상담원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측에서는 지난 5월 초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헌법에서 정하는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통상적으로 헌법소원이 해결되기까지는 길게는 2~3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공감’ 측은 ‘법의 영향력이 상당하고 일단 시행되면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법률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함께 냈다.
윤지영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인용(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법이 시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내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해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법이 적용되는 7월 29일까지 헌법재판소가 인용인지 기각인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 씨는 “일시에 모든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제한되는 심각한 문제인데도 헌재는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출국만기보험을 출국 후 수령하게 하는 개정안은 국회 입법 검토 단계에서부터 ‘불법체류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이 퇴직금보다 크기 때문에 불법체류 감소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전문위원의 평가가 있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보고서는 이러한 의견과 함께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지만, 환경노동소위원회 회의와 국회 본회의 어디에서도 이와 관련된 토론은 한 마디도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법안 이해 당사자인 이주노동자에게 명백히 불리한 일들이 발생하는데도,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과의 소통은 전무했던 것이다.
현재 장하나 의원 등은 ‘출국 후 14일 이내 지급’을 ‘퇴직 후 14일 이내 지급’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개정안을 재논의 하는 과정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이주민과 이주민인권단체활동가들은 5월부터 7월까지 국회 앞 1인 시위를 진행했다. 1인 시위 중인 윤지영 변호사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