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익혀 이를 토대로 사회 현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민주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지님으로써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교과이다. 사회과에서 육성하고자 하는 민주 시민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권 존중, 관용과 타협의 정신, 사회 정의의 실현, 공동체 의식, 참여와 책임 의식 등의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함양하고, 나아가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국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이것은 2011년 개정 교육과정에 명시된 사회과 과목의 목표 중 일부다. 교육과정 목표에 명시돼있듯이 ‘시민의 양성’은 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그런데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목표가 얼마나 잘 달성되고 있을까.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던 시대를 지나 ‘민주시민교육’을 말하는 시대에서 시민 교육은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충분히 잘 이뤄지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이 시민 교육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시민’과 ‘시민교육’
‘시민’에 대해 하나로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시민’ 개념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가치와 배경을 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에서 공통분모를 도출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포괄적으로 정의한 ‘시민’ 개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와 그에 대한 책임을 알고,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평등하게 연대할 줄 아는 사람’ 정도가 될 수 있다.
통치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신민’과 달리 민주사회에서 ‘시민’은 스스로 주권자가 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성’을 배양하는 시민교육이 요구된다. 한국민주시민교육학회는 이러한 시민교육에 대해 ‘정치현상에 관한 객관적 지식을 갖추고 정치적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며, 비판의식을 갖고 정치과정에 참여해 권리와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즉, ‘시민교육’의 핵심은 구성원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중등교육에서의 시민교육 실태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의 시민교육은 주로 사회 관련 과목에서 행해진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회과 교육과정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시민 양성’이다.
현재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사회 교과를 ▲지리 영역 ▲일반 사회 영역 ▲역사 영역의 세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지리, 일반 사회가 사회 과목으로 편성되고 역사는 독립된 과목으로 편성된다. 고등학교에서는 여덟 개의 세부과목으로 다시 나뉜다. 시민교육은 그 중 일반 사회 영역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중학교 1학년 과정에서는 ‘정치 생활과 민주주의’, ‘정치 과정과 시민참여’ 단원에서 시민교육의 핵심적인 내용을 다룬다. 시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개념과 이념들이 설명된다. 2학년 과정에서는 ‘인권 보장과 헌법’ 단원과 ‘헌법과 국가기관’ 단원에서 시민교육이 이뤄진다. 이 두 단원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내용과 역사를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국가기관들을 설명한다. 3학년 과정에서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부분은 ‘정치 생활과 민주주의’와 ‘민주 정치와 시민 참여’ 단원이다. 이 단원에서는 1학년 과정에서의 시민교육 내용을 심화하고 사회현실과 더 밀접하게 연관시켜 가르친다. 특히 바람직한 시민의 태도로 ‘능동적이고 개방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갖출 것’을 강조한다.

시민의 개념을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평등하게 연대하는 사람’으로 넓게 생각하면 중학교에서의 시민교육 범위도 조금 더 넓어진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서는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사회집단에서 차별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급변한 한국사회의 발전양상과 더불어 고령화, 다문화 가정, 통일 등 시민이 알아야 할 현실 문제를 제시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법과 정치 과목에 시민교육 내용 대부분이 집약돼있다. 이외에 사회, 윤리와 사상 과목도 시민교육과 관련돼있다. 법과 정치 과목은 2012년에 정치 과목과 법과 사회 과목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졌다. 시민의 행위를 다루는 시민교육이 정치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이 과목의 많은 부분이 시민교육과 연관돼있다. 사회 과목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갈등해결, 관용, 공동체의 삶의 질 등 공동체와 개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민교육을 다룬다.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민주주의 등의 사회사상을 다룬다.
‘예비사회과학’ 된 사회 과목,
내용상의 빈틈도 지적돼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사회과 교육이 육성하고자 하는 민주 시민을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과 더불어 ▲인권 존중 ▲관용과 타협의 정신 ▲사회 정의의 실현 ▲공동체 의식 ▲참여와 책임 의식 등의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런 목적에 비춰볼 때, 중등교육에서 이뤄지는 시민교육이 외형상으로는 ‘민주 시민 양성’이라는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시민교육에 대해 전문가와 현직 교사들은 다소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정원규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민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평했다. 정 교수는 고교 교육과정에서 정치 과목과 법과 사회 과목이 통합된 것에 대해서도 “시민교육의 핵심은 정치교육인데 이를 최소한으로 축소해버렸다”며 “이는 제대로 된 시민교육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경제 부분에 대해서도 “시장만능주의 관점의 교육만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현직 고교 교사로 시민교육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김원태 씨도 “한국의 교과서는 백과사전 식으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며 현행 시민교육 내용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김 교사는 이어 “한국의 교과서와 달리 독일의 교과서는 한 문제를 질릴 정도로 치밀하게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자료도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자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생활양식, 즉 문화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이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적 문제해결방법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김원태 교사는 “독일의 경우 교과서에서 지역 간의 갈등 문제를 다루며 학생들이 갈등을 분석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며 “막연하게 자료 두개를 놓고 찬반 토론을 해보라는 식의 한국의 교과서와는 차별성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독일 교과서의 경우 집요할 정도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묻고 다른 학생들을 설득해나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한국 교과서의 경우 이러한 문제해결방법에 대한 서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원규 교수도 “현재 시민교육에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적극적인 태도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성인이 돼 임금 노동자가 되지만, 이에 대한 서술도 교과서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서울대저널>이 중·고등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근로기준, 노동권 등 노동과 관련한 기본적인 지식들도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근로계약서를 써보게 하거나, 모의 노사교섭을 하게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노동자이자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교육한다.
양적인 측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정원규 교수는 “현재 사회과 교육이 예비사회과학 형태로 과목이 꾸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 교과의 주요 교육 목표는 시민양성과 더불어 사회현상에 관한 지식습득 및 탐구능력개발인데 균형추가 후자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사회과학의 학습에 관한 지식습득도 필요하지만 그 비율이 과다하다”며 “아울러 시민성교육이나 정치교육은 굉장히 축소돼있다”고 평가했다.

시민교육의 또 다른 문제, 암기식 교육
교과 내용 뿐 아니라 수업 진행 방식에 있어서도 시민교육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사회 검정교과서는 개념을 설명하는 기본 내용에 더해 학생이 참여하는 형태로 탐구활동과 단원 마무리, 활동과제 등이 추가돼있다. 그런데 중학교 사회 검정교과서 3종의 내용을 살펴본 결과, 체험이나 활동을 유도하는 부분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교육이 암기위주의 수업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중·대단원 및 소단원 마무리’는 모두 암기를 해 빈칸을 채우거나 퀴즈를 푸는 형태로 돼있다. 기본내용 사이에 나오는 ‘탐구활동’ 역시 관련 사례에 대해 수업에서 암기한 개념을 적용하는 형식으로 구성돼있다. 그나마 ‘활동과제’ 부분에서 ‘공익 광고 만들기’나 ‘시민혁명 조사 보고’와 같이 학생 스스로의 활동을 유도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과제들에서도 학생들이 다른 구성원과 상호작용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고등학교의 시민교육 관련 과목의 교과서에서는 학생의 활동을 요하는 부분이 더욱 줄어들었다.
정원규 교수는 “시민교육은 기본적으로 체험교육이 아니면 교육내용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자연과학에서 실험을 하듯이 사회과학도 사회적 체험이 있어야 이론을 습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시민교육에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중학교 교사 A 씨는 “정규 교과과정에서 ‘시민교육’이 따로 편성되지 않는 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시험 일정이나 수행평가 일정에 맞춰 진도 나가기도 바쁜데 학습활동이나 체험활동을 하나하나 꼼꼼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시민교육을 어렵게 하는 원인
입시교육, 좌우대립, 역사적 특수성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세 가지 정도가 꼽힌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교육 현장에서의 좌우 이념대립, 역사적 특수성이 그것이다. 정원규 교수는 입시교육을 시민교육에 있어서의 근본적 장애요인으로 꼽는다. 정 교수는 입시교육에 대해 “입시교육의 성과는 개인이 지식을 습득해야 나타나는 것”이라며 “무슨 교육을 하든 학생의 입장에서는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 최종 결론이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경향을 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학교 교사 B 씨도 “중학교부터 아이들이 외고, 자사고 등 입시 경쟁에 노출돼있는 상황에서 ‘시민 교육’이라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와 닿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육 현장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타협 없는 대립이 있는 것도 시민교육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보수와 진보 간 공통된 가치에 대한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감의 성향이 바뀔 때마다 시민교육의 양상이 멋대로 춤을 춘다는 것이다. 김원태 교사는 “진보 교육감 때에는 시민교육에 대한 강조가 있었고, 이런 교육감들이 교육계에 계속 남아 있으면 시민교육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교육감의 성향이 바뀌게 되면 시민교육에 대한 강조도 쑥 들어갈 수밖에 없어 6월 4일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에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은 이념을 넘어서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의 보혁 갈등에 따라 시민교육의 입지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주입식 관치교육의 폐해가 있었던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도 시민교육의 장애물이다. 이규영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논문 ‘독일의 정치교육과 민주시민교육’에서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적 정권과 독재정치라는 전통 때문에 정치교육 혹은 민주시민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정치 교육(political education)을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해 학생들이 정치 공동체의 올바른 주권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정치 교육’ 이라는 단어 자체에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