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정옥 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운영집행위원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ʼ는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 일하는 단체다. 공유 씨는 한노보연의 주된 활동 중 하나인 연대 활동을 통해 현재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활동가도 겸하고 있다. 공유 씨는 산업의학을 공부한 전문의이기도 하다. 한노보연과 반올림이 둥지를 틀고 있는 사당동의 한 사무실에서 공유 씨를 만났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기까지…
94년도에 의과대학에 입학한 공유 씨는 대학입학 때만 해도 자신이 노동운동을 하며 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중학교 때였다. 공유 씨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독립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진로를 의사로 정했다. 공유 씨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공유 씨는 자신이 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낙숫물이 툭툭 떨어져서 온 것”이라고 했다. 어떤 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레 운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유 씨가 대학교 1학년 때 활동했던 동아리는 진료소에 나가 무료진료를 하고 매주 세미나를 하는 모임이었다. 그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근현대사 등을 공부하면서 사회구조나,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 몰랐던 것을 조금 더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그러던 중 그 해 여름방학에 공유 씨가 진료를 나가던 동네 인근에 철거 싸움이 있다는 대자보가 붙었다. 공유 씨는 자보를 보고 동기와 함께 철거 현장에 갔다. 공유 씨는 현장에 미리 가있던 선배들의 싸움 준비를 거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용역깡패들이 동네를 덮쳤다. 공유 씨는 열세 가구 남짓한 동네에 남아있던 어린애들을 데리고 도망가라는 선배의 말에 뒷산으로 도망갔다. 뒷산에는 경찰들이 잔뜩 배치돼있었다. 공유 씨는 “마치 책에서 본 것처럼 경찰이 용역 깡패들의 울타리가 돼줬다”고 회상했다. 저녁에 다시 돌아간 동네는 이미 철거가 돼 집들이 다 무너져있었다. 집이 돌멩이가 돼 깔려있는 상황에서 공유 씨가 돌보았던 애들은 마냥 좋다고 뛰어다녔다. 다음날 아침, 공유 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공유 씨는 “소위 열심히 노력한 자는 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애들은 무슨 노력을 안 해서 집이 없어지고, 나는 무슨 노력을 했길래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냐”며 그 때를 기억했다. 공유 씨는 이 날 집에 돌아오며 속상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 지난 8월 7일 공유정옥 씨는 ‘삼성전자 사례로 본 전자산업 하청노동권의 실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공유정옥 씨는 삼성반도체 납품업체 등의 노동 실태에 대해 소개했다.
“그냥 나쁜 의사가 되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공유 씨가 다녔던 의과대학은 본과 3학년에 들어서면 그 해 2학기부터 병원 실습을 한다. 병원실습을 앞두고서 학생들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과목들을 배워 공부량도 늘어난다. 이때가 되면 학생운동을 했던 학생들이 하나 둘 활동을 정리한다. 공유 씨는 “병원 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간호사보다 위에 있는 의사’라는 병원문화를 받아들이더라”며 “회식자리도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권위 있는 회식문화, 성차별적인 회식문화에 젖어갔다”고 말했다. 공유 씨는 현장에 투신했고, 옥살이까지 했던 선배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두려웠다. 때문에 당시 공유 씨의 과제는 ‘덜 망가지는 것’이었다.
공유 씨는 그때부터 나쁜 의사가 되지 않는 것이 과제가 됐다. 공유 씨가 말하는 ‘나쁜 의사’는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나쁜 의사’는 돈 버는 재미 외의 재미를 말하지 않는 의사들, 타 직종을 얕보는 의사들, 권위적인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과 같이 그가 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말한다. 공유 씨는 “조그만 조각배를 바다에 놓으면 휩쓸려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의 눈에는 의사사회가 마치 그런 바다 같았다. 그는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튼튼한 밧줄로 묶었다. 그가 선택한 밧줄은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이라는 단체였다.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은 당시 보건의료인들이 모여 보건의료부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진보에 기여하고자 만든 단체였다.

삼십대를 함께한 공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학부와 인턴까지 마친 공유 씨는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전공에 대해 갈등했다. 공유 씨는 직접 치료를 하는 의사와 공중보건의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이 활동했던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에서의 경험으로 보아 공중보건의학 중에서도 산업의학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산업의학 전문의의 길에 들어섰다.
공유 씨는 산업의학 레지던트를 하던 2002년 9월에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이라는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이 모임은 2003년 10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범한다. 한노보연은 ‘노동해방 평등세상’이라는 꿈을 가진 보건의료인, 노동운동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한노보연은 노동자가 건강할 권리를 위해 일터에서의 노동자의 힘, 권력, 통제력이 커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한노보연은 ‘참여행동연구’를 한다. 한노보연은 흔히 아는 연구소의 업무처럼 보고서를 써내는 게 목표가 아니다. 노동 건강권과 관련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현장 안에서 대안과 개선점을 찾아내는 연구를 하는 것이 한노보연의 목표다. 그들은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이어져 문제를 해결한다. 말 그대로 ‘참여행동연구’인 것. 한노보연에 참여 중인 활동가들은 대다수가 별도의 생업을 가지고 있다. 공유 씨는 “소수의 상임활동가들을 제외하곤 주경야독하듯 생업과 연구소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고 했다.
공유 씨는 재작년까지 지난 7년간 한노보연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했다. 작년부터 공유 씨는 한노보연의 운영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노보연을 “삼십대와 함께한 곳”이라며 “어떤 게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계속 질문하는 공간이었다”고 소개했다. 계속 답을 찾으려 하고, 답이 맞는지 되묻는 시간으로 십년을 이어온 것 자체가 공유 씨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
“장시간 노동 문제가 열쇠다”
공유 씨는 노동 건강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꼽았다.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노동 건강권 확보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공유 씨는 “예컨대 6시에 일어나서 8시 반부터 일해서 11시에 집에 돌아온다면 혼자 사는 성인 남성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치킨을 시키거나 라면을 끓여먹는 것” 뿐이라며 “그렇게 매일 아침을 못 먹고 저녁에 폭식하니 몸무게가 늘고 고지혈증 환자가 되는 것 아니겠냐”고 얘기했다. 이어 공유 씨는 “그렇다고 이 사람에게 치킨을 끊고 잡곡밥을 해서 먹어라, 매일 20분이라도 운동을 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며 “핑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정말 시간이 없다”고 했다.
공유 씨가 생각하는 장시간 노동 문제의 해결방안은 노동자 스스로가 적게 일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공유 씨는 길게 일하는 게 얼마나 나쁜지, 적게 일하면 어떤 게 좋은지를 얘기하려 한다. 이를 위해 한노보연에서는 현재 몇 군데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남은 시간을 지역에서, 가정에서, 혹은 취미 생활로 보내는 사례를 관찰하고 있다. 한노보연은 이렇게 10년 동안 지켜본 사업장의 모습을 모아 책을 내려 하고 있다.

▲ 지난 7월 23일 공유정옥 씨는 삼성반도체·LCD 노동자 10명의 집단 산재 신청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날 공유정옥 씨는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았다.
행복한 의사, 공유정옥
공유 씨는 활동가 일과는 별개로 사업주에게 때때로 일을 받아 사업장을 방문해 건강 상담을 하는 ‘투잡’을 하고 있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수입이 적을 것 같다는 질문에 공유 씨는 “세상에 유통되는 돈으로 따지면 그분들이 좋죠”라고 했다. 그는 버는 만큼 자기 인생을 대가로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유 씨는 딱 그 만큼만 인생을 바꾸고 있었다.
공유 씨는 운동은 즐겁고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공유 씨는 행복해지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유 씨는 “통념대로 살지 않으면 불행해질지 모르다는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 수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 얘기했다. 공유 씨가 생각하는 운동은 무엇이 됐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공유 씨는 “학생들이 흘러가는 세상에 적응해서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을 한 번씩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며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