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이 말하는 용산

오늘도 현장에선 여느때와 다름없이 생명평화미사가 열린다.매일 저녁 7시, 용산 남일당 현장에는 2009년 1월 20일 망루위에서 목숨을 잃은 5명의 철거민의 넋을 기리는 생명평화미사가 열린다.생명평화미사는 3월 28일 문정현 은퇴신부가 시작한 이후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남일당에 늘 머물며 유가족을 돌보고, 위로하는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강서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대표신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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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현장에선 여느때와 다름없이 생명평화미사가 열린다.

매일 저녁 7시, 용산 남일당 현장에는 2009년 1월 20일 망루위에서 목숨을 잃은 5명의 철거민의 넋을 기리는 생명평화미사가 열린다. 생명평화미사는 3월 28일 문정현 은퇴신부가 시작한 이후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남일당에 늘 머물며 유가족을 돌보고, 위로하는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강서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대표신부를 만났다. 어떤 계기로 용산참사에 관심갖게 됐나?원래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에서 활동을 했다. 수도권 빈민 문제는 역사적으로 재개발, 철거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같은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 중 한 곳이 용산이다. 참사 발생 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됐는데, 초기에는 긍정적인 기대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 사태가 악화되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부활대축일에 위로를 위해 현장 방문을 구상했고, 문정현 신부가 3월 28일부터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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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이후 문정현 신부는 매일 용산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드린다.

용산을 통해 사회 현안에 관한 참여가 이뤄지는데 종교인의 사회참여가 바람직한가?

그렇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의 바탕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사회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는 본질상 더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화, 정의, 진실, 자유, 같은 종교적 가치의 구현을 사회 속에서 해야 한다. 편하게 종교 활동을 할 수도 있지 않나?성직은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낮은 곳은 불편하다. 편한 곳을 지향하는 것은 말 그대로 유혹이다. 유혹에 빠진다는 것은 성직자로서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종교인으로서 사명을 망각하고 성직자로서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용산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용산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민주’라는 가치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다. 가치를 찾고 이뤄냈는데 한순간에 그 가치가 무너진 것을 경험했다. 인간 중심인 공동선의 가치가 죽음이 어느 한 순간에 권력, 자본에 의해서 짓밟혔다. 죽음에 대해서, 죽음으로 얻어낸 가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외면하고 잊는다. 왜냐하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조차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답이 존재 하지 않는가?아니다. 분명히 답은 존재한다. 답도 사람이고 희망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회다. 용산참사는 무엇이 문제인가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사회와 국가가 놓아서는 안 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는 인간이라는 가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 인간이 인간답게 살겠다는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이라 할 수 있다. 용산에선 인간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개발이익이다. 자본증식의 논리가 인간의 생명, 인권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고 정부가 그 뒷배경에 있는 것이 용산 참사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치가 전복됐다는 것이다. 직접 폭력을 당했을 때는 어떠한 심정이었는가?화가 났지만 금방 진정이 됐다. 다만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깨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엄한 사람은 따로 있다. 존엄한 사람은 땅 가진 사람, 재산 있는 사람이다. 그 외의 모든 사람은 인간 이하다. 경찰이 공공의 질서나 공공의 안녕을 위해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켜주는 개노릇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담했다.용산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문규현 신부가 의식불명으로 입원했다.‘민주’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용산은 그 귀한 생명이 죽은 현장이다. 생명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온몸으로 기도한 분이 쓰러지신 것이다. 얼마나 많이 죽어야 생명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이 시대는 생명이 죽음을 부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나 용산 당사자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투신하는 사람들은 증가한다. 시대가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다.투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그렇다. 가치에 충실한 사람이 많을수록 자유, 정의, 민주, 평화, 진리가 가까워진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짓밟힐 때 재확인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재확인을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덜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학생, 종교인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야 되는 것이다. 즉 학생과 종교인의 투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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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대표신부가 학생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참여는 적어진 편인데

대한민국에 학생이 있는가? 대학은 기능을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대학인은 지성인의 전당이다. 진리를 찾는 곳이다. 70,80년대에는 나라의 희망을 대학생들이 보여줬다. 현재 청년의 모습은 암울하다. 열사들이 지금의 학생들보다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겠는가? 대의, 정의, 진리, 진실,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 이것을 욕되게 해선 안 된다. 서울대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은?서울대는 우리 사회의 표징이된다. 서울대가 제시하는 가치가 곧 대한민국의 가치가 된다. 이 것에 대해서 원하든 원치않든 책임져야 한다. 아니 의무이다.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면 서울대는 대한민국을 좀 먹는 좀벌레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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