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영 기자
‘노동당’ 당명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이유는?
<서울대저널>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도 어찌 보면 ‘노동당’이란 이름이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니까 일차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해서 노동당을 내세운 것은 아니다. ‘노동당’이란 당명이 우리 사회에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의제가 편협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들이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노동’은 우리 삶 가까이에서 항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제다. ‘노동당’이란 당명을 내세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문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결의다.
요즘 들어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도 ‘노동’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이 말하고자 하는 ‘노동’은 무엇인가?
지금 주류 정치계에서 ‘노동 문제’라고 이야기 되는 것들은 대부분 ‘투쟁하는 노동자들’, ‘과격하고 폭력적인 노동’, 더 좁게는 민주노총 쪽과 연관된 이슈들이다. 최근 정치인들이 말하는 노동은 전체 노동문제에 비춰보면 매우 현상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그치고 있다.
노동당은 현상적이고 일시적인 노동 이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핍박받는 노동 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흔히 ‘자본’의 반대를 얘기할 때 무엇을 얘기하는가? 바로 ‘노동’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노동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철탑 노동자나 비정규직 문제 등도 우리 당이 신경을 쏟는 사안들이지만 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발흥 초기와는 또 다른 양태로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노동을 착취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자본주의가 촉발하는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자본의 문제는 대통령을 누구를 뽑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전체의 틀을 바꿔야 지금 자본이 낳고 있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 당의 강령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21세기 사회주의’, 이것을 대중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면 ‘노동중심 진보정당’이 되겠다.
당 강령에 ‘여성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부된 사회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빨갱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사회주의는 이념적 편견의 대상이다. 또 많은 대중들은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느냐’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대중들이 사회주의에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초기 사회주의에서 진화된, 현대 사회의 문제와 새로운 의제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혹자는 ‘생태 사회주의’라고도 하고, 우리 당 내에서는 ‘녹색 사회주의’라고도 한다. 8월 8일 주요 일간지 1면에는 북극곰이 굶어 죽은 사진이 실렸다. 나는 그 신문을 보며 울산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으로 내려갔다. 그날 울산의 온도는 40도가 넘어, 기상 관측 사상 최고였다. 그날 ‘21세기 사회주의’의 의제가 다 나왔다고 본다. 지구의 환경을 볼모로 증식하는 자본, 이윤을 위해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 그날 철탑에서 내려온 노동자는 “개 같은 세상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내 등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고. 북극에서는 또 다른 북극곰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삶의 모든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자본의 해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다. 전통적 사회주의에 변화된 사회에 따른 생태 문제, 소수자 문제, 평화 문제 등을 추가한 것이 바로 ‘21세기 사회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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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정당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대중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급진적이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2011년 진보신당에서 조승수 의원 및 심상정, 노회찬 씨가 빠져나오면서도 이런 논란이 일었었다.
오히려 그런 지적이 있기에 우리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명시하고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노동당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표를 얻는 것이 목적이면 이렇게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노동’을 당명으로 걸고 나선 것은 진보정치의 자기역할을 하고자 함이다. 이 문제에 대해 당당히 얘기하는 것, 이런 현실에 도전하며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자기역할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1기 진보정당 운동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그것이 주는 교훈을 잘 봐야 한다. 현재의 대중적인 정서, 왜곡된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를 바꾸기 위해 역사적, 논리적으로 명확한 ‘반자본’이라는 논거로 국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얼마 전 정의당 천호선 대표가 노동당사를 방문해 “새 시대를 향해 함께 손잡고 가자”고 말해 연대를 시사했다. 정의당과의 연대에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나?
정당들 간의 관계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사안별 연대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문제나 국정원 문제에 의견을 같이하는 정당들이 연대해서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에서 정당이 함께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선거에서의 연대는 상당한 정도의 정책적 합의가 있어야지, 단순히 될 것 같으니까 뭉치는 것은 안 된다. 지난 2011년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 정당과의 연대를 말한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야합이었고, 같이 투쟁했던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었다. 우리 당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패권주의 반대, 독자적 진보정치 등 선거 연대에 전제돼야 할 4가지 핵심 가치들을 정해두고 있다. 당의 강령과 노선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연대는 야합이다. 진보정당에서도 과거 이런 종류의 야합이 많았고, 결국 국민의 심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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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중심 진보정당’이 성공하려면 노동자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노동자 계급의 연대도 미미하다. 민주노총과의 관계설정도 쉽지 않다.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계신가?
그 문제가 우리 당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한 과제다.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세력이 주요 구심점이었지만, 지금 민주노총은 그런 상태에 있지 않다. 노동계는 파편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고, 노동부는 노동정책이 아닌 ‘노무 관리 정책’을 펴는 곳에 불과하다. 노동당은 당면한 노동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편협하게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바꾸는 것에 주력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노동에 대해 배우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청년들이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90%는 나중에 결국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들이 단순한 ‘노무 관리’를 넘어선 ‘노동 문제’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민주의 정도를 지향하는 프랑스만 해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모의 단체교섭을 한다.
노동당이 중점을 두고 바꾸고자 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아마 올 하반기에는 노동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노동당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천착해서 이미 투쟁을 시작한 단계다. 노동 교과서를 통해 노동문제가 청년들과 대중들에게 체화될 수 있도록 힘써나갈 것이다.
‘복지국가’가 대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 정당에서도 복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논의되는 복지 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본의 체제가 위협받을 때, 항상 자본은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개량적인 장치를 개발해냈다. 과거 외환위기로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할 때 만들어진 것이 ‘기초생활보장법’이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자살이 이어지면서 정권 붕괴 위기에 몰릴 때 단기적 대응책으로 시혜적 복지정책이 시행됐다. 지금 주류 정당에서 이야기하는 선별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는 것들의 대부분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동소이하다. 처음에 민주노동당으로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할 당시, 우리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말했다. 지금은 반값등록금이니 의료비 상한제니 하며 개량적으로 복지가 이야기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의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 의문과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난 등으로 인해 대학생활 내내 무한 경쟁의 장에 내몰리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학벌 사회 구조의 상층부에서 다른 대학생들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시대의 대학생들, 특히 서울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선 대학생이나 청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진보 정당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우리 선배 세대가 좀 더 치열하게 살았다면 오늘날 청년 세대가 무한경쟁에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굳이 전하자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질적인 고민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들은 이 모순된 경쟁 체제의 꼭짓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서있는 지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꼭짓점은 또 다른 꼭짓점으로 올라가는 과정 속에서 끝없는 경쟁의 여정, 수탈과 착취 과정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학벌 구조를 개혁하자는 취지로 ‘서울대 폐지’를 당론으로 걸고 있다. 여기서 ‘서울대’는 고유명사로서의 서울대가 아니다. 학력 차별과 학벌 구조로 점철된 사회를 개선하지 않으면 청년들은 끝없는 생존 경쟁의 과정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 서울대 학생들이 ‘서울대 폐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때로는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청년 지성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제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