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본권이 우리 사회에 서기까지

2005년 7월 경기도 광주의 화재 현장.전기 대신 어둠을 밝혀주던 촛불은 한 여중생의 생명을 앗아갔다.에너지경제연구원 박광수 선임연구원에 의하면 에너지복지란 ‘소득에 관계없이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에너지와 복지는 각각 매우 친숙한 개념이지만, 이 두 단어가 어우러진 ‘에너지복지’라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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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경기도 광주의 화재 현장. 전기 대신 어둠을 밝혀주던 촛불은 한 여중생의 생명을 앗아갔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박광수 선임연구원에 의하면 에너지복지란 ‘소득에 관계없이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와 복지는 각각 매우 친숙한 개념이지만, 이 두 단어가 어우러진 ‘에너지복지’라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그 이유는 에너지와 복지가 과연 어울리는 개념인지, 나아가 에너지가 기본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2005년 여중생이 촛불 켜고 생활하다 숨진 것이 계기에너지복지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지난 2005년 7월 10일 여중생 남 모씨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 이후부터다. 당시 남 씨의 가정은 2월부터 6월까지 전기요금 88만 4300원을 내지 못해 단전돼, 밤에는 촛불을 켜고 생활했다. 남 씨는 화재가 발생한 날 밤에 미쳐 밖으로 대피하지 못해 사망했는데, 경찰에 의하면 화재의 원인은 촛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 씨 가정의 체납액은 일반적인 가구의 체납액보다 큰데, 그 이유는 겨울철 난방을 전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남 씨의 주택은 공사터에서 주워온 자재로 만들어진 허름한 무허가 건물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난방시설이 있을 리 없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딸의 방에 깔아둔 전기판넬에 난방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누진적으로 부과되는 전기요금이 도리어 독이 됐다. 난방 때문에 전기 사용을 많이 하자 전기요금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갔다. 많은 액수를 체납하게 된 남 씨 가정은 결국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없었고, 불가피하게 선택한 촛불이 참변을 부른 것이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사회적 취약 계층도 기본적인 수준의 에너지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에너지는 필수재… 국가가 기본적 공급 담당해야이러한 여론이 대두된 까닭은 인간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소득 10분위별 광열비 지출 추이’ 자료를 보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차에 비해 광열비 지출액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에너지복지네트워크 홍명표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3배 이상 소득이 많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5.2% 많은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은 에너지가 필수적 재화임을 시사한다.” 에너지는 필수재라는 것이다. 국가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파생된다. 2004년에 에너지기본권을 명시한 ‘에너지기본법(안)’을 발의했던 조승수 전 국회의원(당시 민주노동당)은 “현대사회에서는 에너지가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가의 역할은 삶의 최저선을 보장하고 나아가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제도를 만들었던 것처럼 에너지를 기본적 권리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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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본권을 주장한 조승수 전 의원.

조 전 의원은 에너지기본권을 명시한 ‘에너지기본법(안)’을 이미 2004년에 발의한 상태였다.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는 정부안, 김성조(한나라당) 의원안, 조승수 의원안이 심의되고 있었다. 조 전 의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에너지도 물이나 공기와 같이 공공재이면서 동시에 필수재다. 따라서 국가가 의무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정 수준의 에너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제출한 법안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당시 다른 법안은 에너지를 기본권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현행 에너지기본법, 선언적 수준에 그쳐여중생 사태가 터지자 그의 법안이 탄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결국 2006년 6월 정부안을 중심으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에너지기본법이다. 조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곧 정부안을 중심으로 통과됐다. 본래 산자위를 통과한 법안은 에너지기본권의 개념조차 담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노회찬 의원이 에너지기본권을 반영하자고 주장했고 이 때 비로소 타협이 이뤄져 불완전한 수준이나마 에너지기본권 개념이 명시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현행 에너지기본법 제4조 제5항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이 에너지기본권을 선언적으로만 규정해, 사업수행 방식과 재원 마련, 실효성 확보 방안 등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너지재단 장성호 사회사업부장은 “2005년 여중생 남 모씨 화재 사건이 큰 계기가 돼 에너지기본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제4조 제5항의 규정은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에너지정치센터 이강준 기획실장 역시 “가장 시급한 것은 에너지접근권을 제도로서 명시하는 것이다. 더구나 현행법은 재원조달 방안과 시행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고 실태조사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다”면서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편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이상욱 사무관 역시 “(에너지기본법이 규정하는 내용은) 의무라기보다는 참여촉구의 의미다. 관련 기업 등이 에너지복지에 참여하도록 촉구하는 선언적 조항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현행법은 국가 및 공공단체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지 않은 선언 규정인 셈이다. 각계에서 에너지복지의 중요성 공감대 얻어그러나 여중생 화재 사건은 공공부문과 사기업에서도 일정부분 인식의 전환을 이뤄냈다. 사건 이후 정부는 전력에 대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15% 할인제를 시행하고 혹서기(7~8월)과 혹한기(12~1월) 단전유예기간을 각각 1개월씩 연장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단전 대상 가구가 소량의 전기나마 쓸 수 있도록 제한하는 소전류제한기를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차상위계층 뿐 아니라 주택용 가구에까지 확대 보급했다. 더불어 단전유예조치 뿐 아니라 단수유예조치, 고효율조명기교체사업, 기초생활수급권자들에 대한 난방료 인하 등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사업들을 한데 모으자는 의견도 대두됐다.개별 사업을 한데 모으자는 의견에 따라 출범한 것이 한국에너지재단이다. 한국에너지재단 장성호 사회사업부장은 “기업체들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벌이려면 수혜자들을 각각 여러 번 찾아가야 한다. 만약 한 곳에 모아서 사업을 벌이게 된다면 여러 번 실태조사를 실시하지 않아도 되고 수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통합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을 위해 산업자원부가 제안을 하고, 각 기업체들이 참여하면서 2006년 12월 한국에너지재단이 공식 출범했다.한국에너지재단의 출범에는 전력·석유·가스 등 에너지공기업 뿐 아니라 16개 사기업들도 대거 참여했으며 ‘에너지복지 헌장’을 채택한 상태다. 산업자원부는 2007년을 에너지복지원년으로 선포하면서 10년 내에 120만 가구인 에너지빈곤층을 모두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때 한국에너지재단도 함께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2007년에 ‘저소득층 난방지원 및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민간 기업과 정부 공공부문까지 에너지복지에 한걸음 다가간 셈이다. 공감대 확산 불구, 갈길 먼 에너지기본권정부 역시 지난 8월 27일 대통령 주재로 국가에너지위원회 회의를 열어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대부분 에너지 수급 계획과 에너지 효율 개선, 신·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에너지 산업의 육성 등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뒷받침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4대 전략과제의 하나로서 ‘에너지 자립·에너지복지 실현’이 명시돼 있고, 정부는 극서·극한기에 기초에너지 사용을 보장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천연가스 보급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에너지빈곤층을 제로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5일 지식경제부가 ‘생활공감정책’을 발표하면서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사업에 힘을 쏟고, 심야전력요금 할인제도를 차상위계층까지 확대하며, 석탄배달취약지역에까지 석탄이 배달될 수 있도록 ‘Call-center’를 운영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한국의 에너지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들도 많다. 한국에너지재단 장성호 사회사업부장은 “사업 현장에 나가보면 에너지복지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수혜자들이 피부로 혜택을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에너지복지는 아직 태동기에 있다.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수준이다”고 말했다. 아직 에너지복지 수준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주승용(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집에서 “에너지빈곤층은 지난해 1분기 104만 가구에서, 올해 1분기 147만 가구로 도리어 증가했다. 에너지빈곤층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업수행이 실효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에너지복지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점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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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가계조사의 소득분위별 전력사용량 및 사용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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