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원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

내년 봄 철거될 예정인 숭의자유시장, 이 곳에 사는 독거노인들은 대부분 연탄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귀절이다.누가 이 질문에 떳떳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3.6kg에서 3.3kg로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따스함을 전하는 연탄 앞에 우리들은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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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철거될 예정인 숭의자유시장, 이 곳에 사는 독거노인들은 대부분 연탄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귀절이다.누가 이 질문에 떳떳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3.6kg에서 3.3kg로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따스함을 전하는 연탄 앞에 우리들은 겸허해진다. 이처럼 시의 소재가 될 정도로 서민과 가까웠던 연탄이지만 어느새 도시가스나 석유보일러에 밀려 연탄 한 장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도 꽁꽁 숨은 20만의 인구가 연탄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대부분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은 쪽방촌이나 달동네, 철거예정인 지역에 사는 빈민들이다. 더군다나 장당 300원 이상으로 부쩍 오른 연탄값 덕에 그들에게 올 겨울은 더욱 추울 것이다. 21세기 연탄 인구,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겨울을 살고 있을까. 인천연탄은행의 연탄배달을 따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봤다.연탄배달을 따라나섰던 그 날, 인천의 온도는 영하 1.7도. 올 들어 최저의 온도였다. 학교에서 나와 인천으로 가는 길은 옷을 가볍게 입은 게 후회될 정도로 추웠고, 새삼 학교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 느꼈다. 연탄을 때도 가시지 않는 냉기 속에서 할머니들은 얼마나 많은 옷과 이불을 준비해야 했을까, 또 얼마나 마음 졸이며 일기 예보를 봐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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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 무거운데~?”, “1장 더!” 대한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에서 나온 봉사자들이 줄지어 연탄을 나르고 있다.

연탄 때는 사람은 있는데 연탄 가게는 없다

학교에서 1시간 반 걸려 인천 도원역에 도착했다. 기자가 찾은 곳은 인천연탄은행. 인천을 비롯 전국에 지부가 있는 연탄은행은 저소득층에 무상으로 쌀과 연탄을 배달하는 시민단체다. 인천연탄은행은 대표 1명과 간사 2명으로 운영되며, 순수 자원봉사자로 배달인력을 조달하고 있다. 마침 오늘은 대한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에서 20여 명의 봉사자들이 나와 배달을 하고 있었다. 장당 3.6kg나 하는 연탄을 십 여개씩 진 모습에 힘들지 않냐고 묻자, 대다수가 뿌듯하고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장동완 씨는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면서도,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을 눈으로 보니 마음이 짠하다”며 봉사 소감을 밝혔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서너개씩 있던 연탄가게가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그 역할을 연탄은행과 같은 시민단체가 대신하고 있다. 실업자인 아들과 단칸방에 살고 있다는 윤영애(76) 할머니는 연탄가게가 사라져가는 현실에 공감했다. “옛날엔 연탄가게도 많고 장사도 잘 됐었는데, 이젠 거의 없지…. 가끔 가다 하나 있어도 몇 천장 아니면 배달도 안해줘. 배달료도 따로 받고.” 연탄가게 수가 적어지면서 수지가 맞지 않는 소량배달이나 원거리배달을 꺼리는 것이다. 때문에 몇 천장씩 주문할 형편이 못 되는 윤 씨에게 정부나 연탄은행에서 가져다주는 무상 연탄은 너무나 소중하다. 봉사활동만으로는 인력이 딸려 아직 그나마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올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어. 너무 고마워요.” 더 좋은 것도 많은데, 왜 연탄을 쓰시나요?일단 연탄을 구한 것은 다행이라지만, 연탄 난방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타면 탈수록 온기가 식기 때문에 8시간 마다 한 장씩, 하루에 총 세 번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장당 200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던 연탄 가격이 올해 50% 가량 올라 장당 305원이 되면서, 가격부담도 만만치 않다. 잘못된 연탄 사용은 생명마저 위협한다. 잘못 갈았을 경우, 연탄가스 중독이나 화재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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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온기는 그들에게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연탄을 때는 것일까. 백창주(75) 할머니는 연탄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기름보다는 싸다며 연탄을 때는 이유를 씁쓸하게 털어놨다. 실제로 하루에 석 장의 연탄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에 드는 연탄 비용은 27,450원(305원×3×30)이다. 그에 비해 도시가스는 월 12만원, 기름은 월 22만원이 드니 연탄 사용 시5분의 1 내지 9분의 1의 돈으로 겨울을 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연탄을 때는 근본적 원인은 빈곤인 것이다. 실제로 연탄을 때는 인구의 절대적 다수가 근로 능력을 상실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독거노인이다.기자가 찾아간 인천 평화시장도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대다수였다. 백 씨는 그날 배달된 200장의 연탄에 만족하면서도 “이걸로 겨울 내내는 못 버텨. 아마 한 번 더 와야 할텐데…”라며 불안함을 내비쳤다. 이어 백 씨는 아주 춥지 않은 늦가을에나 초봄에는 연탄을 거의 때지 못한다고 했다. 윤영애 할머니의 집에는 열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 겹겹이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나가서 일하기도 벅찬 몸인데 난방도 마음대로 못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연탄, 때고 싶어도 못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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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걱정하는 김순영(70)할머니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봉사자들은 옆에 있는 자유시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더 딱한 사정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순영(70) 할머니는 “연탄을 때고 싶어도 못 때고 있어”라며 운을 띄웠다. 4년 전 김 씨는 연탄보일러가 고장 나 전기판넬을 깔았다. 연탄보일러보다 전기판넬이 난방비가 더 드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는 보일러 고칠 만큼의 큰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위가 엄습해 올 때마다 아픈 다리가 더욱 시려오지만, 할머니는 전기세가 무서워 난방을 밤에만 땐다고 했다. 할머니가 연탄보일러를 못 고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상가가 곧 헐릴 예정이라 지금 고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굳이 재건축을 앞두지 않았더라도 세입자들에겐 비싼 연탄보일러를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집이 더 좋아져봐야 집주인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집주인에게 연탄보일러 설치를 요구하더라도 그만큼 임대료가 올라가게 된다. 결국, 보일러 설치 부담은 고스란히 세입자의 몫이다.겨울,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철거’평화시장과 자유시장 모두 내년 봄에 철거가 예정돼 있어 주민들에게는 올 겨울이 그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김순영(70) 할머니는 “철거되면 어디로 갈 건지 아무 방향도 없어…”라며 암담함을 토로했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집마다 화장실도 없어 공중화장실을 써야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일일이 끓여 써야 하지만, 김 씨는 “그래도 나가는 것보단 낫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5만원인 단칸방. 보통 사람들에게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열악한 곳이지만, 그들에겐 지상에서 합법적으로 발붙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연탄은행의 목표는 ‘하루 빨리 연탄은행이 없어지는 것’취재를 끝내고 가는 길에 연탄은행 대표인 정성훈 씨에게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즐거움에 대해 물었다. 물론 기자는 “저 덕분에 많은 사람이 희망을 찾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어서 기뻐요”와 같은 멘트를 예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기자의 뒤통수를 쳤다.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오히려 답답해요. 같은 사람으로서 저게 뭐냐구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저런 곳에서 산다는 걸 보면 볼수록 가슴이 아파요.”이어 정씨는 비단 에너지 양극화뿐만 아니라, 그 근본적 원인인 빈곤이 해결돼 ‘하루 빨리 연탄은행이 없어지는 것’이 연탄은행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장 연탄이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순수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연탄은행은 봉사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탄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어딘가에, 아니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더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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