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전복이 행복을 부른다!

김규항, 스무살에 좌파가 되다“스스로를 B급 좌파라 말한 적은 없어요.” 김규항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B급 좌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란다.“그저 책 제목일 뿐이죠.물론, 설사 내가 A급 좌파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A급 좌파라 말할 수는 없죠.그건 자의식이 없는 일이니까요.B급 좌파에 별 의미가 없어서 죄송하네요.” 그는 생각했던 것 보다 둥글둥글한 사람이었다.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좌파’가 되었을까.

김규항, 스무살에 좌파가 되다

“스스로를 B급 좌파라 말한 적은 없어요.” 김규항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B급 좌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란다. “그저 책 제목일 뿐이죠. 물론, 설사 내가 A급 좌파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A급 좌파라 말할 수는 없죠. 그건 자의식이 없는 일이니까요. B급 좌파에 별 의미가 없어서 죄송하네요.” 그는 생각했던 것 보다 둥글둥글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좌파’가 되었을까.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좌파죠.” 80년대에 독재타도를 부르짖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우파 자유주의자로 변했다. 김규항은 80년대의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에게 있어 사회를 향해 세운 칼날을 가다듬는 일이다. 기자는 문득 그의 대학생활이 궁금해졌다. 김규항은 언젠가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예수를 만난 것은 대학에서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예수를 만나 얼마만큼 경건한 삶을 살았을까. “예수는 고뇌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대학 다닐 때는… 데모를 열심히 했죠(웃음). 그 땐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기였어요. 백주에 사람을 때려죽이고, 친구가 사라졌는데 어느 날 시체가 돼 나타나는 무서운 시대였죠. 학교를 열심히 다닌다는 건 결국 데모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다닌 한신대학교는 속된 말로 ‘빨갱이 학교’였다. 오죽하면 신군부가 폐교를 시키려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는 그곳에서 일종의 해방구 같은 분위기를 느꼈단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바탕을 주는. 김규항은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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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군사파시즘은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적이었지만, 적과 우리가 분명히 구분돼 있었다. 지금은 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운 시기다.

40대에 말하는 ‘진보’=행복해지는 것

김규항은 그 시절의 다짐을 얼마만큼 간직하고 있을까. “그때와 바뀐 것은 없어요. 물론 주변조건은 바뀌었죠. 그땐 식구도 없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부담도 없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점들 때문에 20대의 생각을 40대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유지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유지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죠. 다만 약간 불편할 뿐이에요.” 김규항은 집이 없는 것도, 남들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못하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그런 걸 불편해 할 때 사람들은 불안해집니다. 저는 가볍게 살기 위해 노력해요.” 그는 또다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에게 ‘진보’에 대해 물었다. “예전에 운동하던 사람들은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 투신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민중을 대상화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의로운 것을 위해 헌신한다든가, 고통을 감수한다든가 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에요. 더 잘 살고 더 편하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보죠. 그것을 위해선 세상을 바꾸는 것에 앞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복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불안한 상태’가 여유롭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 이것이 진보적 가치관입니다. 훌륭한 가치관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죠.” 김규항은 돈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세상, 이기심에 맞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바깥이 아니라 ‘자신’에서 찾는다., 이 땅의 아이에게 내미는 손짓그런 김규항이 최근엔 잠잠하다. 사회를 향한 목소리의 중심에 있던 김규항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가 창간 5주년을 맞았어요. 준비한 시간까지 더하면 6년이 걸렸죠. 이 6년 동안 글쓰기 활동을 적게 했어요. 하지만 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 있어선 최전선의 좌파활동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힘들게 활동했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그의 손에서 펜을 떼어 놓았을까. 여기에는 얼마간의 회의감이 작용했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너의 말엔 동의를 하는데,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 이건 사실 내 말에 동의를 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내 글이 읽히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변해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아이들이 불쌍하게 생각됐죠. 사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싶어 이 사회에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그는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휘둘리는 현실을 보며 ‘죄갚음’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의식에서 시작한 것이 를 만드는 일이다. 는 ‘사람답게 사는 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에 대해 말하는 어린이 잡지다.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김규항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한국사회가 정신적으로 갈피가 안 잡혀있어요. 이명박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가 되는 현실을 보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회에 힘이 되기 위해 조만간 다시 글을 쓸 겁니다.” 김규항은 과 에 연재 칼럼을 쓰기로 했다. “매주 한 편씩 써요. 예전 어느 때 보다 많이 쓰는 거죠. 아마 1년만 지나면 내가 조용하단 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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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길러진다. 노동자들도 자기 아이를 노동계급에 적대하는 사고로 키운다. 진보 운동의 쇠락, 우경화에 비할 수 없는 패배다. 진보적 사고자체가 사멸한 상황이다.

김규항을 웃기고 울린

김규항은 노동자의 자녀가 노동계급에 적대적인 사고로 키워지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는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길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김규항은 삶을 통해 이를 느끼고 있었다. “큰 아이가 어떻게 교육 받고 있는지를 보니까 아이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20년이 지나면 이 사회의 주인은 지금의 아이들이잖아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결국 이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느냐’와 직결되는 거죠.” 그는 진보 운동의 쇠락이나 우경화보다 아이들이 노동자계급에 반하는 가치를 갖는 것이 더욱 큰 ‘패배’라고 말한다. 그리고 좌우 구분할 것 없이 한 가지 가치관으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덧붙인다. 김규항이 를 만드는 것이 최전선의 싸움이라 생각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그는 를 만들고 어느 때 가장 뿌듯함을 느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김규항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때”라고 대답한다. “는 재미있는 책을 첫 번째 목표로 합니다. 어린이 책의 주인은 어린이이기 때문이죠. 처음엔 책이 어수선하다는 비판도 들었어요. 하지만 원래 애들이 좀 어수선하잖아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러면서도 유익함을 담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실 요즘 어른들은 ‘양보를 해야 한다’, ‘너만 잘났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는 말도 못해요. 예전에는 보수적인 아버지도 그런 말을 했는데……. 는 이제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못하게 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들을 말합니다. 아마 는 양식 있는 어른들이 애들에게 권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책일 거예요.”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다. 투자했던 사람이 창간 직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처음부터 운영에 지장을 받게 된 것이다. 김규항은 그런 문제에 대해선 담담하게 얘기했다. “돈 문제는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어렵다는 것 자체가 책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좋은 내용을 담아내는 데 지장이 생기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두 아이의 아버지, 뜨거운 감성을 말하다김규항의 두 아이, 단이와 건이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단이는 중학교 2학년의 여자 아이이고 건이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입니다. 흔히 진보적인 사람들의 아이를 보면 높은 수준의 사회의식과 지식을 갖고 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말이나 논리로 아이들에게 주입되는 것이 싫습니다.” 그는 사회적 지식이나 정보보다 우선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정의감, 윤리의식, 분노할 줄 아는 것… 이런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많이 알아서 엘리트 의식에 차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그는 단이와 건이에게 양보하는 것을 가르친다.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피하거나 침묵하면 타이르기도 한다. “뜨거울 때 뜨겁고, 화낼 때 화내고, 울 때 울 줄 아는 감성과 인간성을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여기에 이론적인 의식까지 더해지면 좋겠지만, 설사 후자가 없더라도 전자가 있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 ‘좋은 인간’으로 살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김규항은 ‘내 아들’이라 부르기보다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한 인생관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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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이 아는 것 보다, 뜨거울 때 뜨겁고, 화낼 때 화낼 줄 알고, 울 때 울 줄 아는 그런 감성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게 더 행복한 지 고민해 보세요”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김규항은 ‘이미 커버린 아이’인 대학생에겐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한 세기에 하나 쯤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있죠. 우리는 그 사람의 전기를 읽고 감동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런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오버’입니다. 특별하고 훌륭한 생각을 해야 한다, 청년은 정의감을 가져야 한다, 서울대를 나온 사람은 거기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 때 어떤 게 더 좋은가, 어떤 게 더 행복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착각합니다.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을 정의롭다 생각하죠. 조금 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하지 마세요. 죽을 것 같지만, 다 살아지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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