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트라우마 – 고등학교 생활
얼마 전이 수능이었다. 이번 수능 때도 역시나 수많은 학생들이 울고 웃었다. 그들은 아마 하루에 지난 3년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교육 제도를 비판하기 이전에 3년의 세월을 보상 받고 싶어 할 것 같다. 모든 삶을 획일화시켜 통제하려는 그 때의 교육을 생각하면 난 아직도 몸서리가 쳐지고 역겹다. “고등학교 생활이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고 즐거웠는데”라며 가끔 회상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에게 고등학교 교육은 내 삶을 규율하려는 수단 이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규율 권력에 너무나도 잘 순응했고 그 덕에 서울대학교까지 입학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스타일로 상징되는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다. 어떻게 해도 치유하기 어려운 하나의 상처로 말이다.좀더 바람직한 고등학교 교육을 고민하던 내게 정작 실질적인 방법은 없었다. ‘간디 학교’와 같은 대안들은 내가 다가가기에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 친구의 소개로 ‘치유적 대안학교 별(www.schoolstar.net)’을 알게 되었고 자원 교사로 참여하게 돼버렸다. 일주일에 한 시간, 초등학교 졸업반 수준으로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조건은 처음에는 참 쉽게 느껴졌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님에도, 교육에 조예가 없음에도 자원 교사를 자원했던 것은 순전히 ‘부담스럽지는 않은데 착한 일일 것 같다’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대안학교,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대안학교란 기존 공교육의 폐해를 인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고등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를 의미한다. 대안학교에는 사회에 원활히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나 지적 능력에 약간 문제가 있어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치유적 대안학교 별’은 도시형 대안 학교로써 봉천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학교는 흔히 ‘별’이라고 부르는 별 학교의 학생들, ‘별지기’라고 부르는 상임 교사들, 자원 교사, 1:1 교육을 맡는 튜터, 후원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 수는 40명 정도이며 중학생과 고등학생 연령대가 중심이지만 기존 교육 과정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는다.내가 지원했던 영어 자원교사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1:1 교육을 중심하는 대안학교의 특성 상 내게 배정되었던 학생 수는 예상보다 적은 8명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 수업을 들어갔을 때 느꼈던 멍멍함은 잊을 수가 없다. “에이, 선생님 나랑 2살 차이밖에 안 나네,”, “선생님 고딩 같아요”, “영어 선생님이면 유학 다녀왔어요?” 등 수없이 나도는 아이들의 질문이 너무 당황스러웠다.교사가 아닌 학생이 주인이 되는 수업분반을 하기 위한 시험을 칠 때의 산만함, 수업을 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학생들, 교사의 체벌은커녕 감정적인 잔소리도 할 수 없는 학교. 이런 학교의 모습들이 전혀 익숙하지는 않았다. 익숙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불편함을 통해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내가 얼마나 기존 교육 과정을 통해 ‘과잉사회화’ 되어 있었냐는 것이었다. 교사의 말이면 무조건 듣고, 수업 내용이 재미가 있든 말든 도움이 되든 말든 강제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가치들이 이 공간에선 허용되지 않았다. 이 교실에서는 학생이 주인공이었다.일주일에 한 번 있던 수업 시간은 이제 단순한 수업 시간이 아닌 무슨 프리젠테이션 공간처럼 느껴졌다. 수업을 어떻게 짜서 가냐, 1시간을 어떻게 계획해야 하느냐가 일주일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별 학교 사정 상 휴강이라도 한다면 일주일이 반으로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자원교사를 하는 교사들이 모여 스터디를 제안했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한 기분이었다.좀더 나은 대안 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스터디는 다중지능 이론에 대한 세미나와 자신의 수업 평가, 그리고 좀더 나은 수업 방식을 위한 커리큘럼을 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다중지능 이론은 사람의 지능이 IQ로 표현되듯 단순하지 않다며 공간 지능, 수리 지능, 음악 지능 등과 같은 부분으로 세분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별 학교는 이러한 이론적 기초 하에서 운영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장점을 계발하도록 말이다. 별 학교에서 ‘무엇을 못 한다’라는 말보다 ‘무엇을 잘 한다’라는 말이 훨씬 보편적으로 쓰인다.수업 평가는 수업 시간이 끝날 때마다 각자가 작성한 수업일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수업일지는 당시의 분위기를 간략하게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다. 다른 수업일지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학생 개개인의 특징을 서술한다는 점이다. 교사가 수업을 진행할 때는 수업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별 학교에선 중요하다. 40명씩 두고 수업하는 기존의 고등학교 생활과는 다른 큰 차이점이다.“선생님 때문에 영어 수업이 기다려져요”수업 시간 40분을 앉아 있기 싫어하는 학생, 영어가 재미가 없는지 다른 책만 들고 읽고 있는 학생, 호명을 하면 웃지만 그 전엔 다른 생각만 하는 학생 등 수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모두 천양지차다. 이러한 학생들의 관심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흥미도를 이끌어내는 방법 밖에 없다. 이 문제의식으로 시도한 수업 방식 중 가장 성공했던 수업은 만화를 통한 수업이었다. 인터넷을 몇 시간을 뒤져 찾아낸 캘빈과 홉스 만화 몇 조각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난생 만져보지도 않는 파워포인트를 어설프게 두들기며 만들어간 수업자료는 아이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항상 수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이던 한 학생의 “선생님 때문에 영어 수업이 기다려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몇 시간을 들인 노력의 보상을 단번에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나의 당황한 모습의 서술들로 인해 대안학교가 무언가 골치 아프고, 고민만 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인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어벙벙함은 물론 사실이지만 처음 학교에 인사 하러 갔을 때의 밝은 분위기 역시 잊혀지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 간의 권위가 중요시 되지 않는 분위기, 교무실이 또 다른 아이들의 공간과 같이 느껴지는 분위기, “넌 그러니까 안돼”라는 부정적 어구는 보이지도 않는 분위기. 학생들의 자유롭게 피어나는 밝은 모습들이 학교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그들만의’ 논리 – NIMBY봉천역 근처의 한 건물에서 수업을 진행하던 별 학교는 한 달 전쯤 일반 주택을 교실로 개조하여 옮겨 갔다. 가장 큰 이유는 학교 면적을 늘려 위탁 교육 기관으로 인정을 받기 위한 것. 위탁 교육 기관이란 대안 학교 중에서 일반 학교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는 기관을 뜻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이상의 공간과 영어, 수학과 같은 정규 과목들의 수업 시간을 늘려야 한다. 별 학교의 경우 과목들을 늘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공간 문제가 걸려 이사하게 된 사례였다.하지만 학교를 일반 가정집 근처로 옮겼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관악 초등학교 뒤편 감나무가 크게 자란 어느 집으로 옮긴 별 학교는 일반 주민들의 엄청난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들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정신병자’, ‘문제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어느새 대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어딘가 크게 이상한 학생들이 되어버렸다. 매일 교과서에서 배우던 NIMBY현상을 이렇게 여실히 깨달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별 학교 상임 교사들이 주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도 벌여보았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관악구에서도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민원을 이겨낼 수 없어 별 학교에 조치를 취하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결국 별 학교는 돌아오는 2월 또 다시 이사할 곳을 찾아야 할 처지다.작지만 아름다운 한 걸음을 함께하며한국 교육은 상식 밖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지켜보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교육이란 생각이 적지 않게 든다. 대안학교는 그러한 교육에 대한 첫 번째 문제제기일 뿐이다. 그 수가 지나치게 적다든지, 기존 커리큘럼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없다든지 하는 비판들이 대안학교의 한계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안학교가 던져 주는 ‘대안’의 모습들은 확실히 기존 교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모습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본 기자가 뛰어들었던 대안교육의 현실도 커다란 부분의 작은 조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지만 그 한 발자국이 좀더 나은 대안교육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시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