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허상

지난 11월은 왠지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달이었다.대학신문 백지제호 발행, 도서관 총투표 무산, 총학선거는 50%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성사되는 그 스릴까지.이런 스릴 넘치는 사건 속에서 이번 12월호 편집 작업은 다소 길어졌다.도서관 열람실 개방에 대한 논의는 90년대 중반부터 있어왔던 이슈다.그 논쟁은 지금,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고 있다.작년 11월쯤에는 도서관 이슈에 대해 자보 논쟁이 한창이었다.

지난 11월은 왠지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달이었다. 대학신문 백지제호 발행, 도서관 총투표 무산, 총학선거는 50%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성사되는 그 스릴까지. 이런 스릴 넘치는 사건 속에서 이번 12월호 편집 작업은 다소 길어졌다. 도서관 열람실 개방에 대한 논의는 90년대 중반부터 있어왔던 이슈다. 그 논쟁은 지금,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고 있다. 작년 11월쯤에는 도서관 이슈에 대해 자보 논쟁이 한창이었다. 올해에는 10월의 토론회에 이어 11월의 총투표까지, 도서관 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시도가 2번이나 행해졌다. 그러나 그 시도들은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둘 다 사전홍보와 준비 부족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제한된 안, 범위 하에서 ‘투표’, ‘권리 행사’, ‘민주적 참여’, ‘의사 수렴과 합의’ 등을 외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구성원을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의의 객체’로 한정시켜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실질적인 참여’는 허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번 도서관 총투표의 투표안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인상을 강하게 줬다. 이것은 대학신문 백지제호 발행 사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대학신문 기자들, 전 편집장들은 다들 ‘학보사의 태생적 한계’와 ‘사칙과 현실의 괴리’를 이야기했다. 사칙에는 학생기자들의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으나, 기자들은 ‘사칙은 사칙이고, 현실은 현실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칙을 누가 신경쓰며 일하겠어요?” 맞다. 사람들이 평소에 법조문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취재하기 바쁜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수년 전부터 ‘학보사의 태생적 한계’ 속에서, ‘제한된 권리가 적힌 사칙’ 하에서 그때그때 논쟁하고 합의하며 신문을 내 왔다. 그 논쟁과 합의과정 자체는 나름대로 민주적이며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정당한 과정일 것이다.(물론, 현 주간교수 하에서는 그것마저 담보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전의 기반은 이미 권리가 제한되어있는 작은 판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칙이라면 개정해야 하고, 그 이전에 학생편집권과 학보사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학신문의 학생기자단은 그 점을 충분히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호는 통권 70호이자, 올해 마지막호다. 70호 특집으로 『서울대저널』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또한 올 2004년 서울대에 있었던 이슈와 지난 11월에 있었던 학내 사건들, 최근의 48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인터뷰 등이 실렸다. 『서울대저널』 독자들이 이 기사들을 찬찬히 읽어보며 생각해봤음 좋겠고, 올 한해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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