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집권 초기, 김영삼의 고향 거제는 떠들썩했다. 대통령이 동네 어른들 몇 분을 청와대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근 중학교의 사회 선생님이었던 어떤 분은, 그 분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되어 한 그릇의 칼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그만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한다. 종종 사극에서 나이 든 신하가 왕에게 성은 운운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을 볼 때면 그 선생님이 생각나곤 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칼국수 한 그릇에 마치 성은을 입은 양 눈물 흘리게 했을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실제로 광복 이후 50년을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통령은 왕, 아니 그 이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국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그 최소한의 권리를 쟁취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 폭력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월남전에 보내고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밀실에서 고문하여 죽이고 은폐했던 현대사가 아닌가. 국가의 군사, 외교, 경제정책, 심지어 개인의 양심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좌지우지 해왔고 대통령 한 마디면 사람 한둘쯤 죽고 살고 하는데, 이쯤하고 보면 과연 한국의 대통령은 왕처럼 여겨질 법도 하지 않겠는가. 대선이 두 달 남짓 남았다. 국민 위에 왕처럼 군림하던 그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판에 있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우리가 견고하게 쌓아온 민주주의는 이제 그 기지개를 키고 있는 듯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유권자 운동, 부패한 기존 정당들을 비판하며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는 진보정당 운동, 개혁적 386세대들이 중심이 된 개혁적 국민정당의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민주의식 향상은 이번 대선이 사회 변혁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 올 가을, 우리의 선택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하고 우리의 선택지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