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부르는, 그리고 지금 그들의 나라가 서 있는 땅 팔레스타인. 그러나 그 땅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는 단지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일 뿐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2천여년간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핍박받은 역사를 가진’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세계는 그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땅에서 핍박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저 먼 나라 한국에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이하 평화연대) 그들을 찾아갔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그들의 ‘목소리 운동’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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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는 매주 화요일 광화문 앞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화요 캠페인’ 시위를 벌인다 |
평화연대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1시간 반이 걸려 겨우 평화연대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고 나서도, 20분 동안 평화연대를 찾아 헤매야 했다. 간신히 찾아낸 평화연대는, 밖에서 봤을 때 보통 가정집과 똑같았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그 규모는 방 하나가 전부인, 매우 단촐한 단체였다. 기자를 맞이한 평화연대의 미니(필명)씨가 내온 감잎차를 앞에 놓고,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화연대는 2003년에 만들어졌다. 평화연대가 만들어진 계기는 매우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그 때도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어느 한분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활동하고 싶다고 인터넷의 게시판 여기저기에 글을 마구 올리셨어요. 그걸 계기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이지요.” 미니씨의 말이다. 비록 작은 규모의 조직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꾸준히 많은 일들을 해왔다. ‘세상에는 정치운동, 평화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많고 많은데 우리는 목소리 운동’ 이라는 이들의 말처럼, 평화연대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이들의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주 화요일 광화문 앞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화요 캠페인’ 시위이다. ‘화요 캠페인’은 2004년 5월에 시작된 이래 한주도 거르지 않고 시위를 벌여 얼마 전에 70회에 이른, 평화연대의 ‘전통 있는’ 행사이다. ‘팔레스타인에 평화와 인권을’이라는 주제 아래 치러지고 있는 화요 캠페인은 이스라엘의 폭력을 규탄하는 것은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 유인물을 나눠주고 생생한 사진과 만화들을 전시해 놓음으로써 시민들에게 팔레스타인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좀 더 큰 규모로 열리는 시위에 참여하거나, 학교나 단체 등에서 강연이나 영상물 상영 등을 통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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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미나 씨 |
얼마전에는 과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곧 있을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데도 평화연대가 도움을 줄 것이라 한다. 그리고 회원 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정기 모임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물론 평화나 전쟁, 이슬람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밖에도 홈페이지(pal.or.kr)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서 팔레스타인 인권센터(PCHR)에서 매주 펴내는 보고서를 번역해 올리는 등 온라인상에서 많은 자료를 제공함으로서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계획중인 활동이 있느냐는 질문에 평화연대의 미니씨는 “저희가 정보 비평이라 부르는 것인데,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언론이라든가 책, 인터넷 자료 등 팔레스타인 정보들을 찾아 그 내용에 관해 비평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직접 대응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라고 답했다. 왜 팔레스타인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이들의 활동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평화가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생각을 갖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기자 역시 이에 대한 평화연대의 생각이 궁금하였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곤 해요. 이에 대해 저의 경우에는 어떤 사건이 외국에서 일어났느냐 국내에서 일어났느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봐요. 중요한건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나 누가 다치고 고통받는 것이지 국적은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미니님은 답하면서 이라크 전 당시 김선일 씨를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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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팔레스타인 난민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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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의 전쟁난민 |
김선일 씨 납치 사건 당시 우리는 왜 눈물을 흘리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을까?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선일 씨는 우리와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내 가족이 위기에 처한 것처럼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을까? 그것은 김선일 씨의 국적이 아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던 그 상황이 우리가 그를 살리려 함께 행동하게 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위기와 고통을 알고 그것을 김선일 씨 납치 사건 때와 같이 절실히 느낀다면,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흔히 말하는 ‘우리’라는 범위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김선일 씨 납치 사건 때 김선일 씨는 각 개인들의 ‘우리’에 포함되었고, 그래서 김선일 씨를 구하려 노력했던 거잖아요. 저희에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리’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가만히 볼 수 없는 것이죠.” 미니씨는 ‘우리’라는 범주를 달리 한다면 사람들의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갖는 ‘우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넣기 위해 평화연대가 활동한다고 강조했다.팔레스타인 평화…우리가 이룰 수 있는가? 한편으로는 이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서, 그 활동들이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당장 분단된 한반도도 통일하기 힘든데, 멀리 있는 팔레스타인의 일을 이들의 활동으로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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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연대 사무실에 걸린 ‘팔레스타인 해방’ 현수막 |
“물론 당장 성과가 나면 좋겠지만, 그건 저희도 불가능하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이 연대함으로서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려하는 의지이죠. 먼 나라 한국에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그들이 알게 된다면 ‘왜 우리는 피해만 보는가, 우린 고립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일제 시대 때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떠올랐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외국인들, 그들이 없었다면 식민지 조선은 더욱 고립되지는 않았을까, 이들이 없었다면 독립이 늦어지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도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조선의 독립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일부 외국인들의 도움은 우리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이들이 꿈꾸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 평화연대가 지향하는 평화는 ‘개인의 가치관부터 바뀌기 시작해 모든 인간들이 평등한 존재들로 성, 민족, 계급이 상관없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라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허망한,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루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사람들은, 바로 그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당장의 성과는 낼 수 없겠지만, 이런 행동들이 모이고 쌓여 서로 연대할 때 이들이 꿈꾸는 평화가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