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수 있다, 정길화 PD를 만나다

photo1 정길화 씨는 현재 문화방송 홍보심의국장으로 우리에게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하 이제는) 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한국 현대사 재조명의 한 획을 그은 ‘이제는’ 의 절반을 기획, 연출한 PD로서 17년을 현장에서 보냈다.이 밖에 ‘PD 수첩’, ‘인간시대’ 등을 맡아 끊임없이 우리시대의 모순을 짚어내는 역할을 해온 그는 99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명실상부한 문화방송의 대표 PD로 여겨진다.

photo1 정길화 씨는 현재 문화방송 홍보심의국장으로 우리에게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하 이제는) 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한국 현대사 재조명의 한 획을 그은 ‘이제는’ 의 절반을 기획, 연출한 PD로서 17년을 현장에서 보냈다. 이 밖에 ‘PD 수첩’, ‘인간시대’ 등을 맡아 끊임없이 우리시대의 모순을 짚어내는 역할을 해온 그는 99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명실상부한 문화방송의 대표 PD로 여겨진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를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서 만나보았다. 기자ㅣ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나. 홍보심의국장이면, 예전에 현장에 있을 때처럼 바쁘지는 않을 것 같다.정길화(이하 정)ㅣ 이제는 조금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홍보 업무는 군대 작전에서 보면 전위대와 같은 역할. 첨병으로 앞서 나가 때로는 유탄(?)을 맞기도 하면서 채널의 이미지 제고와 대 시청자 홍보 역할을 한다. 심의는 게이트 키핑과 같은 역할. 말하자면 후위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홍보심의는 본대의 앞뒤에서 본대의 전투력을 방어하고 확산하며 뒷정리를 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보직 국장은 관리와 기획, 조정을 하는 일이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뛰던 시절이 그립다. 현장에선 목표와 결과가 분명하고 자신의 몫이 확실하다. 프로그램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기자ㅣ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를 방영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면.정길화(이하 정)ㅣ 현재를 얘기하기 위해 과거사를 다루고 넘어가야하는데. 그 중에서도 45년 이후의 해방공간을 언급해야한다는 인식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팀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감당할 수가 없는거다. 제도권 방송의 체제 안에서 그 조직을 활용하고, 장비를 활용하고, 이렇게 해서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거다. 정규편성에 이 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합법적인 투쟁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99년 이전까지는 계속 좌절되다가 최초의 수평적인 정권교체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거다. 그러나 우리에게 패배의식이 생겨 더 이상 제안할 힘은 없었다. 그러다 제안은 오히려 경영진에서 들어왔다. 이제 수평적 정권교체가 됐는데 한번 해 보는게 어떻겠냐? 불감청 고소원이었지. 문민정부 때 다큐멘터리 극장이 가능했다면 국민의 정부에 와서는 그보다 진일보한 순수, 증언 다큐멘터리가 가능하게 된 거다. 기자ㅣ 동안의 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경영진의 제안, 허락에 의한 거였던 것인가. 정ㅣ 아쉽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다. 우리는 좌절해 있는 상태였다. 정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그러니 경영진에서 제안이 들어왔던 거다. 막상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너나 잘해라’ ‘그때는 뭐하다가 이제야 말하냐.’ 등의 말을 들었다. 맞다. 그때 우리가 잘못한 거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 게 옳은 건 아니지 않나. 꼭 말해야 하는 거라면 이제라도, 아무리 늦었더라도 해야 하는 거다. 기자ㅣ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성도는 높아져 가는 반면, 소재 고갈이나 문제제기 방식의 유사성 등으로 인해 제작자들이 고충을 겪을 거라 생각된다. ‘이제는’ 을 통해 아직도 얘기할 것이 있다고 보는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 소재들은 어떻게 찾아내나. photo2정ㅣ 6월 26일 100회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청자 곁을 떠났다. 현대사 다큐멘터리로 100편이면 많이 한 것. 굳이 해야 한다면 다른 제목으로 환골탈퇴해서, 컨셉을 바꾸고, 포맷도 바꾸고 하면 어떨지.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는 제작진의 문제이다. 역사적인 접근을 해야 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홍구, 도진순 교수, 정창현 기자 등을 파트너를 모셔 2박 3일간 워크샵을 했다. 현대사 전문가와 다큐멘터리 전문가가 모여 그 접점을 찾아간 것. 학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프로그램을 만들 방법이 없는 것이 있다. 카메라를 대야하는데 피사체가 없는 경우랄지. 국회프락치 사건 등이 그런 경우다. 처음에 할 땐 100회까지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당장 급한 거, 큰 거, 굵직굵직한 것만 했다. 4.3, 여순사건, 인혁당 사건 등 99년의 프로그램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엑기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늦깎이 데뷔를 했는데, 첫 소설을 2단 편집으로 빽빽이 채운 걸로 유명하다. 또 다시 책을 낼 수 있을까 싶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 것과 같은 거다. 기자ㅣ 많은 사람들이 정길화 씨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를 통해 만났다. 이 프로를 빼놓고는 정길화 씨를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프로가 방송史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photo3정ㅣ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는 과거 우리 방송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보상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다보면 특정한 사건을 당시에 언론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짚고 넘어가야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언론이 보도지침에 굴복해 그 숱한 학생들의 희생을 은폐하거나 침묵했음을 알려주는 ‘녹화사업의 희생자들-군대 가서 죽은 아들아’, 너무도 열악한 노동현장의 상황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마침내 분신이라는 극한상황에 이르러야만 했던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전태일과 그 후’ 등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과거 우리 언론이 편파 불공정의 길을 걸어왔음을 낱낱이 증언하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누구보다 이 땅의 방송인에게는 순치와 굴종 속에서 직무를 유기했던 지난 시절 자신의 서글픈 초상을 확인하고 반성하는 참회록으로 읽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비겁함과 기회주의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기자ㅣ 인터뷰를 요청함에 있어 이 사람이 결정적인 말을 해줄 것 같은데 안 해주는 경우 어떻게 설득하는가? 결국 인터뷰를 못했을 경우 그 부분은 어떻게 메워 가는가? 정ㅣ 정당한 공권력을 집행한 사람들이 빤히 있는데 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느냐는 말이 있다. 50분 동안 편파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동안, 40년 내지 50년 동안 역사책, 각종 매체 등에서 그동안 편파적이었지 않았나. 그 역사적인 편파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시 다큐멘터리는 객관성이 중요하다. 삼고초려하고 의도를 진실 되게 말하고 설득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겨레 앞에 진실을 얘기하고 가시라고. 확신범들의 경우 접촉이 오히려 쉽다. 학살했다는 생각을 못한다. 자신의 행동이 아주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 그 놈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6.25 때 반란을 일으켜 문제가 됐을 거라며 예방적 차원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당당히 주장한다. 켕기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인터뷰를 안 해 준다. 아무리 해도 안 되면, 문서를 찾고, 기록을 찾는다. 기자ㅣ 취재원과의 신뢰가 먼저인가, 국민의 알권리가 먼저인가. 예를 들면 오프더레코드로 얻은 자료가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든지, 신원은 밝히지 말아달라며 사건을 터뜨려달라는 제보 등.정ㅣ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원칙적으로 취재원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다. 문제는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취재원과의 약속을 깰 때 그것이 얼마나 진정한가 하는 것이다. 특종 욕심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상위의 개념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가 한다. 요즘은 제보한 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제보는 단초에 불과하고 보도할 때나 프로그램으로 만들 때는 전혀 새로운 모양으로 나타난다. 오프더 레코드를 레토릭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오프더레코드라 해놓고 얘기하다가. 더 큰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그럴 경우 처음 얘기했던 건 써도 되는 내용인거다. 기자ㅣ 8.15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공소시효 배제’ 발언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었다. photo4정ㅣ 유감으로 생각한다. 법률가 출신인 대통령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광복 60주년의 역사적인 의미가 이 발언과 뒤이은 논란으로 완전히 가려졌다. 환갑이라는 의미의 60년은 중요하다.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동북아 정세를 돌파하는 비전을 제시해야했다. 요점은 그게 아니었는데 시비를 거는 보수 언론이 말꼬리를 잡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보수언론의 행태가 어디 하루 이틀인가? 2년 반이나 됐는데. 발언의 방법과 시점 등이 모두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기자ㅣ 과거사 청산에 대해 현 정권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과거에만 너무 집착하여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등의 비난여론이 있기도 하다, 과거사를 재조명 온 피디로써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의지에 대한 생각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정ㅣ 과거 청산에 끝이 있겠는가. 언제까지 어디까지만 과거사를 논의하고 내일부터는 이제 그만 얘기하자.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 자르듯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게다. 과거사를 논의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중단 없이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현실 규정하는 힘이 있다. 과거를 말하는 것은 오늘을 규정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년도 되지 않았다. 근대사의 왜곡은 을사조약부터 시작해도 100년이다. 다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계속해서 국론 분열과 갈등과 대립으로 가는 것은 좀 그렇다. 과거사 규명은 이제부터는 가급적이면 역사적 영역, 학문적 영역으로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좀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뉴스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다루자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그 정도의 성숙함과 포용력은 있다고 본다. 기자ㅣ 언론인으로서 언제 보람을 느끼나 정ㅣ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프로그램 잘 보았다. 좋았다, 감동받았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등의 열렬한(?) 피드백을 받을 때나 피디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해서 방송이 나간 후 제도가 바뀌고 개선될 때 보람을 느낀다.기자ㅣ 피디를 꿈꾸는 학생이 많다. 피디의 매력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ㅣ 피디는 종합예술을 만들고 종합하는 콘덕터이자 집행자이다.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는 자부심. 특히 저널리즘에서 아트를 넘나들 수 있는 드넓은 스펙트럼을 들 수 있겠다. 기자ㅣ 피디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ㅣ 우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가질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한 나만의 방법론이 있어야 하고 그를 통해 개성과 보편성을 겸비하여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해박함 갖추라는 것. 한편으로 다른 누구에게 없는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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