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쓰는 새빨간 거짓말

나는 그다지 많은 독력을 가진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신문도 며칠씩 거르는 경우도 많고, 소설 또한 때에 따라서는 한 달이 지나도록 다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그렇다고 여러권 한꺼번에 멀티를 쳐놓고 읽는 것도 아니다.그런데 하루만에 무려 50여편에 달하는 기사를 읽어내고, 뿐만 아니라 평가까지 했던 일이 있었으니, ‘2회 대학기자 상’ 1차 심사 때 일이다.예상외로 많았던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평가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다지 많은 독력을 가진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 신문도 며칠씩 거르는 경우도 많고, 소설 또한 때에 따라서는 한 달이 지나도록 다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여러권 한꺼번에 멀티를 쳐놓고 읽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무려 50여편에 달하는 기사를 읽어내고, 뿐만 아니라 평가까지 했던 일이 있었으니, ‘2회 대학기자 상’ 1차 심사 때 일이다. 예상외로 많았던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평가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사원 제의를 받았을 때, 그 글의 량을 미루어 짐작하지 못했던 나의 깜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대학언론이라는 것이 보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후보작으로 추천된 것만 50여편이었으니, 전국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글들이 매학기 쏟아지는 것일까? 그렇다. 나는 지금 누군가 뛰어다닌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온라인 게시판에서 ‘진보를 펜으로 자위하는 기자’에 대한 비판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꽤나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뭔가 움찔한 기억들…예컨데, 투쟁의 현장에서 내가 삶에 관한 리얼리즘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고의 정열을 쏟아내지 못했다는데서 나오는 그러한 반성. 사실 그것은 나의 정서적 사치일런지도 모른다. 기자는 과연 진보적인 계층인가. 다는 단순히 “[한겨레] 기자는 진보적이고, [조선일보] 기자는 보수적이다”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내가 그러했다면, 진정 기자다운 진보는 무엇일까? 그 수많은 기자 상 후보작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 사라지지 않는 이러한 되물음은 과연 끝이 있는 질문일까? 현장에서 투쟁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 기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삶은 당연히 리얼하지만, 기사가 리얼하느냐의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새빨간 거짓말을 쓰는 기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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