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열정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를 휩쓸던 1968년, 한국은 군부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10년도 더 지난 8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2008년의 한국은 여전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68혁명 40주년을 기념하여 전유럽이 떠들썩한 요즘,‘즐거운 지식, 공동의 삶, 다중의 지성 공간’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에서는 ‘혁명을 다시 그리다’와 ‘자유의 새로운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3월 12일부터부터 68혁명과 현재 한국 사회 운동과의 관련성을 고찰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강의의 기획자로서 다지원의 대표 조정환 씨는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 운동에서 68혁명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가? 87년 6월 항쟁이나 7,9월 노동자투쟁 등 격렬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에도 68혁명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수 인지자들의 경우에도 이를 ‘쁘디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서구의 소시민들의 소박한 도덕적 이해관계, 일종의 조그만 파동으로 이해했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을 맑스-레닌주의 입장에서 ‘수정주의’라 했다. 그래서 마르쿠제 같은 68혁명을 적극 지지한 비판이론가의 책은 터부시되는 책이었고, 나왔을 때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68혁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91년 소련 붕괴의 반사효과였다. ‘대체 68은 뭐지?’, ‘쁘띠 부르주아의 반동으로 봐도 좋은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것이다. 즉, 소련 붕괴 이후 대안의 진로를 모색하는 흐름 속에서 일련의 사상가들,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이 68혁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기초하여 자기 생각을 전개하자 사람들이 궁금해 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이라는 책이 출간 당시에는 호응이 없었으나 90년대 들어와서 갑자기 다 팔리게 되었다. 이처럼 90년대는 68혁명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일종의 ‘68 부흥 시대’라 부를 수 있었다. 당시 서울대에서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만든 와 라는 책을 통해 68혁명을 많이 다뤄 98년에는 30주년 맞이 특집호까지 냈었다. 이후에도 카치아피카스의 , 등 68관련 서적이 꽤 주목받고 번역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68자체에 관한 것 보다 그로부터 파생된 다른 운동들이 무엇인가로 관심이 확대된 상태이다. 다지원에서는 왜 68혁명 관련 강좌를 기획하고 이야기 하려는가? 물론 68혁명 40주년이라는 시간적 의미도 있지만, 최근 민주노동당 분열 양상을 보며 제도정치권 진입으로 별로 이룬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진보가 무엇이냐는 것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우리 사회의 흐름을 통해 삶과 혁명의 문제를 제시하고자 고민해왔다. 다지원에서는 그 중 강의라는 방식으로 68혁명과 관련된 각 분야에서 의견을 펼쳐왔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적인 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강좌를 기획하게 됐다. 68혁명과 현재 사회운동을 연결하는 고리가 약하지 않은가? 이번 기획의 특징이 68을 역사적 사실로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운동의 새로운 흐름과 연결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좌 제목도 ‘혁명을 다시 그리다’와 ‘자유의 새로운 시간’이다. 이 시도가 독특하다면 독특할 수 있는 지점이다. 68혁명을 돌아보면 19세기 이래 100여년 이상 지속 되어온 사회 운동의 패러다임이 확 달라지는 시기였다. 이전 혁명 모델은 중앙으로부터 당이 주도하고 노동조합과 민중이 따라가는 구조였다. 실제 당과 노동조합은 68에 반대 했었다. 당시 주도세력을 살펴보면 프랑스는 학생, 이탈리아는 비조직· 비의회주의 노동자 좌파 등이 독자적 흐름을 만들어냈고, 여기에 동성애자들이 이성애 중심주의에 도전하여 권리를 주장했다. 실업자는 삶의 보장을 요구했고, 학생은 대학자치, 수업을 노동이라 보고 이에 대한 임금 지급을 요구했으며, 여성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급을 요구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베트남전과 핵에 대한 반대 등 저변 이슈가 폭발하는 양상이었다. 이를 보면 운동의 폭이 달라졌음을 짐작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2005년 이후 이슈화되어 연관성 있는 동성애, 이랜드 비정규직, 병역거부 등 여러 주제를 묶어 강좌를 계획했고 계속 진행해 나갈 생각이다. 그동안 각각의 운동이 자기 이슈에 매몰되어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대추리의 경우 주민운동과 반전운동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데, 이는 운동들이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프랑스처럼 일시적인 폭발성은 없을지라도, 점진적으로 새로운 사회 운동 양상을 그려내고 싶다. 진보 운동의 많은 부분이 이 새로운 사회운동 간의 명확한 관계에 눈을 돌리고 감응하는 게 필요하다. 강좌 제목이 ‘혁명을 다시 그리다’인데 혁명 · 변혁을 꿈꾸는 것인가? 개혁(reform)과 혁명(revolution)을 두부 자르듯 나눌 수는 없다. 레닌적 혁명관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혁명이라는 것이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운동 자체가 주권 혹은 국가권력을 해체했기 때문에 지금은 착취당하는 이들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의 운동에 참가해 우리 내부에 있는 잠재력, 활력을 삶의 모든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자는 것이 강좌의 목표다. 이러한 움직임이 ‘자율주의’와 관련 있는가? 깊은 관련이 있다. ‘자율’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아우토노미아’라는 이탈리아어다. 여기서 ‘아우토’는 ‘자기’, ‘노미아’는 ‘율(律)’로 자기통치·자기관리·자기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타율적이다. 아침에 자명종으로 인해 깨어나 회사원은 사무실로, 노동자는 공장으로 나서는 통에 지하철은 미어터지고 도로는 꽉 차게 되다. 이는 자연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타율적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권력과 자본이다. 따라서 자율이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이자 독립이다. 이는 어떻게 해야 우리 삶의 리듬을 스스로 찾아 그 리듬에 맞춰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의 답이다. 개개인들을 경쟁의 대오로 몰아넣는 대신 서로 마주볼 수 있는 관계, 너와 나를 확인하는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는 모든 부분에서 타율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고립되고 분산된 개개인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이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삶의 자율을 위한 혁명의 과제이다.프랑스에서 68혁명은 대학생이 주도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대학 내 운동이 침체돼 있고, 참여율도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그 주제로 (2003)이라는 책에 최근 발생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지식집약사회의 학생운동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다. 분명 80년대에 비하면 현저히 약화됐다. 80년대는 자타공인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을 촉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해왔고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노동자학생연대(노학연대)를 통해 노동운동을 지탱하는 선봉대 역할을 했다.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로서의 건강과 열정을 앞장서 보여주었던 때였던 것이다. 90년대는 학생운동이 침몰에 가까울 정도로 침체된 시기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연계시켜 봐야 한다. 오늘날 학생 신분은 사회 최하층이다. 노숙자 다음으로 학생들이 어렵다고 본다. 특정한 대학생 부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 학위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어쨌든 지방대학이라도 가지만, 수입은 없고 등록금은 치솟지 않는가. 부모에게 빚을 지울 수 없으니 건강 돌볼 새도 없이 과외라도 해야 된다. 그나마 서울대, 연고대나 대접받지 나머지는 결국 수입원 없이 대학을 다녀야 되는데 상황은 갈수록 더 나빠지는 상태인 것이다. 노동운동도 제도화되면서 달라졌다. 90년대에 대기업 · 사무직 · 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주류가 된 것이다. 이들이 헤게모니를 쥐면서 관심사가 체재 내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에 한정되게 됐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연대를 반겼지만, 90년대 들어 대우조선이나 현대중공업이 파업하게 되면서 오히려 학생들의 접근을 막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분노를 물리적으로 표출하려 한 반면 노동자들은 질서정연한 집회를 한 후, 끝나고 나서는 헤어져 집에 가버리는 양상이 됐다. 학생들이 전경과 몸싸움이라도 할라치면 오히려 노동자들이 가서 뜯어말리기도 했다. 지금껏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학생운동이 노동자들에 의해 거부당하자 90년대 말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아직까지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사회운동 ·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대학생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한다. 노학연대 등이 더 이상 소용없어진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자기들의 삶의 필요를 숙고하고 대안운동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제기할 때가 된 것이다. 68혁명 때도 노학연대는 있었으나 학생운동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교과과정을 자율적으로 짜서 우리가 받고 싶은 교육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대학생활의 모든 것들은 계급적인 적대관계와 연결돼 있다. 딸이 올해 대학에 입학해 학생증을 발급받는데 학교에서 신용카드로 발급받아야 된다고 하더라. 대학에서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은행이라는 거대금융자본에 대한 친밀감을 심어주고 결국 예속시키는데 앞장서는 것 아닌가. 굉장한 싸움거리라고 본다. 서울대의 경우도 기업체 건물, 커피숍 등이 들어가면서 대학 공간 자체가 기업공간화 되어가고 있다. 이는 삶의 자주권을 박탈하는 대학생활의 식민화다. 특히 자본주의에 따른 지식집약화로 가장 계급적 적대관계가 치열해지고 있는 공간이 대학이다. 새로운 싸움의 실마리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현재는 학생들이 너무 힘이 없고 냉소주의에 빠져있어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이 같은 침체 상황이 10년 이상 계속 되어 왔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많다. 사례는 사파티스타나 시애틀 투쟁 등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처해있는 현실은 특이한 동시에 보편성을 갖는다. 80년대 산업공간에서의 갈등만큼이나 대학공간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