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슴으로 감싸안는 시인 안도현

바쁜 대학 생활 속에서 시집을 손에 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친구들은 전공 서적에 토익 책을 뒤적이는데 태연히 시를 읽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그럼에도 일단 시집을 펼치면 우리는 위안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다.안도현 시인의 시가 그렇다.’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도 알고 있을 이 구절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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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대학 생활 속에서 시집을 손에 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은 전공 서적에 토익 책을 뒤적이는데 태연히 시를 읽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일단 시집을 펼치면 우리는 위안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다. 안도현 시인의 시가 그렇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도 알고 있을 이 구절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안도현 시인은 지난달 10일 제2회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다음날 기자를 맞아준 그는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발’로 수상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바빠 보였다.단순한 문학소년에서 문학적 현실주의자로 그가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 나와 사촌형들이랑 자취를 했어요. 그때 TV가 막 보편화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다른 친구들이 TV를 보는 시간에 전 주로 책을 봤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하고 떨어져 지내다보니까 그리움이나 외로움같은 감정을 일찍 깨닫게 됐고, 그런 결핍의 감정이 저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거죠.” 사실 그는 10대였던 고등학교 시절 각종 백일장과 현상공모를 수십 차례나 휩쓸며 소년 시인으로 명성을 떨친 적이 있다. 그 후 그는 원광대학교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신춘문예를 휩쓸며 일찍이 문단에 둥지를 틀었다. 유망한 문학청년으로 불리던 안도현 시인은 1980년 5월 세상과 문학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계엄령이 떨어져 수업이 휴강됐고, 그 참에 친구들이랑 막걸리 마시고 있었죠. 그때, 갑자기 계엄군이 들이닥쳤고 우리들을 꿇어앉힌 채 개패듯 때렸어요. 그 사건 이전에 제가 단순한 문학주의자였다면, 그 일이 있고난 후에는 문학적 현실주의자로 새로 태어나게 된 거죠.” 실제로 그의 첫 시집 은 80년대 민중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대표적 서정시인 안도현의 출발은 사회에 대한 투쟁과 분노를 담은 민중시였던 것이다. “제가 살아온 80년대는 시인이든 미술가든 음악가든 자기 장르 속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어요. 저도 시 속에서 그런 생각을 녹여냈던 것 뿐이고요.” 졸업 후 그는 이리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다가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된다. 세상과의 끊임없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던 삶 속에서 그는 치열하게 시를 지켜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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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하찮은 것들 속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일 5년의 해직기간이 지나고 그는 전북 장수군 산서고등학교에 복직한다. 도시와 동떨어진 시골 고등학교로 발령받은 그는 이때부터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시를 통해 제비꽃과 물푸레나무, 그리고 모닥불과 삶은 감자를 얘기하고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애착’을 노래한다. “90년대 이후 거대 담론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사회 모순을 지적하는 안테나라는 시인의 역할은 어느 정도 끝난거죠. 기본권마저 부정되던 시기에는 ‘시’라는 무기를 가진 ‘시인’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누구나 대통령을 욕할 수 있고, 막강한 네티즌 집단도 있고요. (웃음) 그렇다고 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시인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없다는 뜻은 아니예요. 요즘에도 여전히 힘든 사람, 나쁜 사람이 많고 곳곳에 모순이 있죠. 시대 문제에 시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필요해요. 하지만 그런 관심의 방식이나 바라보는 대상이 달라지고 다양해졌을 뿐이죠.” 안도현 시인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답했다. “시란 솔직히 저의 모든 것이죠. 시를 썼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했고 시를 썼기 때문에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해직을 당해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어요. 시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거죠. 제가 시를 쓰지만, 한 편으로는 제가 써놓은 시가 오히려 저에게 삶의 지침을 주고 변화를 요구하는 역할을 해요.” 실용서만 읽히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안도현의 시집은 꾸준히 1~2만부 이상 판매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를 그는 쉽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라고 생각하면 국어시간에 배우는 것처럼 난해한데, 제 시는 쉽고 편하다는 게 장점이죠. 어려운 어휘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말하는 시가 꼭 좋은 것은 아니예요. 또 자주 듣는 얘기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을 언어로 콕 집어 표현해 준다는 거죠. ‘엇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 독자들이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가령 ‘너에게 묻는다’를 봐도 사람들이 연탄이 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연탄에 대한 느낌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저는 대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열심히 찾아서 제공해주고 독자는 그 의미 속에서 공감을 하는 거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마음으로 안도현 시인은 섬세한 시선으로 삶의 소박한 풍경을 맛깔스럽고 상상력 가득한 언어로 표현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를 두고 ‘기관차 같은 상상력을 가진 시인’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시를 잘 쓰려면 시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시에는 그 시를 쓰는 사람의 세계관, 가치관, 역사의식이 어느 정도 녹아있죠. 시대를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마음도 들어있고. 이런 자의식이 없는 채로 만들어지는 것은 시가 아니라 껌이죠. 단물 빠지면 버려야 되는. 그런 시들 가끔 있잖아요. 제목이 길고, 늘 그립고, 늘 외롭고, 늘 사랑에 빠져있고…. 어떻게 늘 외롭기만 하고 항상 사랑하기만 해요. 안 그래요? (웃음) 달콤하긴 한데 몸에는 좋지 않은, 백해무익한 거죠.” 그가 시를 쓸 때 갖는 마음가짐은 음식을 만드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특별히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거나 교훈을 줘야한다는 생각은 잘 안해요. 그저 가족들을 위해 주부가 최대한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듯이, 저는 저와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맛있고 빛깔이 고운, 영양가 있는 시를 쓰려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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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시를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에게 “백편의 시를 읽고, 백잔의 술을 마시고 한편의 시를 쓰라”고 말한다. 시가 쉽게 쓰이고 읽히는 때일수록, 시를 대하는 태도는 진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매달 약 60여 권의 시집을 읽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은 중고등학교 교사시절에 비해 어떻게 다를까? “국어를 가르칠 때는 소설, 수필, 희곡 다 가르쳐야 하지만, 대학에서는 시만 가르칠 수 있어서 좋아요. 수십 년 동안 공부해온 내용들, 시를 쓰는 방식이라든지, 시에 접근하는 태도, 이런 것을 가르치면서 저도 새로운 것을 느끼기도 하죠.” 죽은 시(詩)의 사회? 한국 시는 희망이 있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씨는 1976년 ‘산업화 시대의 시’라는 글에서, ‘죽은 시(詩)의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바 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점에 가보면 시집 코너는 휑하다. 볼거리가 많아지고 삶이 급박해지면서 ‘시’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는 심각할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 안도현 시인은 인터넷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휘황찬란한 문화들이 많아서 시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느낌이 있지만 인터넷 시대는 시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는 비교적 짧고 원래 게릴라적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보내고, 받고, 퍼나를 수 있죠. 이런 점은 대중과 시를 쉽게 만나게하는 요인이 돼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꾸준히 많은 시집이 나오고, 많은 시인들이 활동하고, 많은 시 잡지가 있어요. 이런 기회를 잘 살린다면 시가 다시 희망의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현재 여러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충분히 시를 써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당분간 시집을 낼 계획은 없다고 한다. “시집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에서 나오죠. 나무한테 미안한 점도 있고, 다른 동료 시인들한테 미안한 점도 있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뭐, 다 겸손떠느라 하는 얘기지만요. (웃음)” 먹고사는 문제는 잠깐 잊어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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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지만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올해 초 그의 책 가 100쇄를 맞이했고 그 외에도 , , 등 어른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아 주는 여러 권의 동화를 집필했다. “시가 우선이긴 하지만,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쓰고 있어요.” 또한 그는 2004년부터 ‘북녘나무보내기 운동’ 공동본부장을 맡고 있다. “평양이랑 금강산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요.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 나무가 너무 없다는 거에요. 온통 바위산이고 민둥산이에요. 나무가 없어서 홍수가 나도 훨씬 더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계속되죠. 언젠가 남쪽에서 보낸 나무가 북쪽 땅에 심어진 것을 볼 때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했다. “모든 학생들이 마찬가지지만, 자기가 공부하는 것과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연관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국문과를 보고 심지어 ‘굶는과’라고 했었거든요. (웃음) 공부를 하는 순간만은 ‘이게 얼마나 돈이 되려나, 얼마나 내 지위를 높여주려나’ 같은 생각보다 그야말로 학문 탐구에 정진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과정에서 사회, 그리고 삶에 대한 좀 더 넓은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럴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요.” 추운 날씨, 움츠려드는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줄 시 한편 읽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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