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따뜻하게 쉴 집이 없는 노숙인들에게 겨울은 가혹하기만 한 계절이다. 지난 11월 20일에는 노숙인 한 명이 영등포구 죽마루 공원에서 동사한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대두된 노숙인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서울시에만 최소 3000명의 노숙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노숙인들에게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상담보호센터, 옹달샘드롭인센터(drop-in-center) ‘옹달샘’은 노숙인을 위한 상담보호센터로, 식사와 숙박, 목욕 등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휴식처다. 일찍이 빈민선교를 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박성곤 목사가 2003년 노숙인들을 위해 마련한 보금자리가 옹달샘의 첫 시작이었다. 영등포역 부근 쪽방촌에 자리잡은 130여㎡(40여 평)의 공간은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의 소중한 터전이 됐다. 2004년에는 정부 인가를 받아 사회복지시설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총 10명의 사람들이 옹달샘을 꾸려간다. 박 목사가 2년여 간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후원을 얻은 끝에 지금의 공간 500여㎡(150여 평)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주로 행정기관의 정책과 방향성을 기본적으로 따르며, 그 외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자체 사업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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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인들을 안내하고 있는 정용균 목사. |
허름한 계단을 올라 건물 2층에 자리한 옹달샘에 들어서면, 박 목사가 앉아 있는 접수대에 노숙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 10시에 열어 다음날 새벽 7시에 문을 닫는 이곳은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로 붐빈다. 이용자는 누구든지 접수대에 문의하면 ‘생활관’이라는 넓은 방에서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고, 식당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뜨거운 물로 샤워나 세탁도 할 수 있으며 칫솔과 면도기같은 생필품도 제공된다. 일주일에 2~3회 자원봉사자가 와서 무료로 이발을 해주며, 장기·바둑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센터 내 복지사들은 노숙인들과 상담을 통해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지역사회로 연결해 준다. ‘아웃리치’라고 하여 역이나 공원 등 노숙인이 있는 곳에 직접 가서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현장에서 해결이 가능한 경우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최근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임시주거사업’이다. 예전엔 일자리만 창출하면 노숙인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성과가 좋지 않았다. 따라서 ‘주거’에 초점을 맞춰 노숙인 한 사람당 80만원의 예산을 잡아 3개월 방세를 지원해주고, 법적 절차를 밟아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옹달샘은 이 사업을 통해 약 100명 정도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그러나 옹달샘 사회복지사 임태훈 팀장은 이것만으로 노숙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노숙인이 그저 제도권 안으로 들어간 것을 사회 복귀라고 본다면 작년부터 서울에서 한 300~400명 정도는 모두 복귀시켰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노숙인 문제는 건강악화, 가족해체, 주민등록증 말소, 주거지 부재 등 복합적 문제가 얽혀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차츰 해결돼 그들이 완전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실 임시주거사업을 통해 사회 복귀를 한 사람들도 갑자기 자신의 주거지에서 혼자 지내는 삶에 적응을 못하고, 결국 다시 사람들이 있는 거리로 나오곤 한다고 임 팀장은 말한다. 따라서 현재 옹달샘은 그들에게 기초적인 삶의 토대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마련해 주기 위해 ‘그룹홈’을 만드는 시도도 한다. 6~7명이 각자 벌어서 방세를 나눠 내면서 함께 사는 것이다.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장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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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달샘 사회복지사 임태훈 팀장.”많은 노숙인들 중 소수만 보고 그게 전부인 양 부풀리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입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사회가 노숙인에게 덧씌운 편견이다. “사실 저도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언론에서 보고 듣던 대로, 노숙인들이 거칠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편견 때문에 그분들께 접근하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제 2년 8개월째 근무를 하면서 그것이 단지 사회적 선입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서울 시내의 노숙인 수는 가장 적게 봤을 때 올해 9월 기준으로 3000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 거리의 사람들은 600명이고 나머지는 노숙인 시설이나 기타 장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이다. 임 팀장은 노숙자를 배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화가 난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서울의 노숙인 3000여 명 중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사실 일반인들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일반인과 노숙인을 따로 분류하고 아예 다른 사람인 양 여기는 시각이 잘못된 거죠. 많은 노숙인들 중 소수만 보고 그게 전부인 양 부풀리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입니다.”사실 모든 노숙자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거칠고 게으른 사람만은 아니다. 옹달샘은 사업체에서의 노동을 통해 편견을 없애보자는 의도로 특별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자주 가는 주유소에 부탁해서 인력 한 명을 줄 테니 딱 15일 간만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15일치 임금은 모두 옹달샘 측이 내놓고 주유소 측은 밥값과 차비만 지원해 주기로 했다. 노숙인이라면 고개부터 내젓던 다른 업체와는 달리 서로 안면이 있었던 그 주유소 사장은 허락해 주었고 15일 후 옹달샘으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임금을 줄 테니 더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 노숙인은 정직원이 되었고 작년 가을에는 총무가 됐다고 옹달샘으로 연락이 왔다.요새 옹달샘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2월 15일부터 다음해 3월 15일까지는 동절기로 노숙인 보호에 가장 주의를 요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일 150여 명의 저녁식사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동사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숙인 밀집지역 순찰도 나가고 있다. “앞으로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거리의 노숙인들을 잘 보호하는 등 상담보호센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겁니다. 특히 노숙인들 사이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시도를 지속할 거고요. 영등포에 이미 동사자가 생겼지만 현장을 열심히 뛰어 더이상 사상자가 속출하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외부 봉사 단체가 달아주고 간 옹달샘 벽면의 게시판에는 여백마다 노숙인들이 쓴 낙서가 빼곡하다. 날카로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춤을 춘다.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옹달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