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도서관 문제의 재논의 도서관 토론회를 기억하는가. 한동안 널리 걸려 있던 배심원 모집 포스터와 플랜카드들, 47대 총학생회 출범 때부터 외쳐오던 ‘도서관 문제, 합의회의로 풀겠습니다’라는 어구들. 열람실의 북적북적한 분위기와 답답한 공기에 대한 불평, 환히 켜진 열람실 3층의 불빛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도서관 토론회에 대한 인지력이 수직 상승 했을 것이라 믿는다. 몇 년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았지만 아무도 해결을 보지 못했던 서울대의 희대의 이슈. 도서관 토론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시작됐다. 도서관 문제는 마치 ‘알렉산더의 매듭’과도 같다. 2003년 진행되었던 열람실 개방을 둘러싼 총투표는 이 매듭을 단칼에 베어 해결하려고 했지만, 매듭을 ‘푸는 것’과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이 총투표는 보기로 주어진 문항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너무 단순하다는 점, 투표 절차상의 문제점과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성 등이 문제가 되어 결국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서울대 학생들의 학습권을 강조하는 외부인 제한 의견과 외부인의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를 주장하는 두 논의는 너무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었다. 도서관 토론회, 합의회의 모델을 차용한 방식 이번 도서관 토론회는 이 매듭을 좀더 풀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도서관 토론회는 ‘합의회의’라는 모델을 기본적으로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합의회의란 즉흥적인 선호보다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토론을 통해 심사숙고 된 의견을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합의회의 모델은 주로 과학기술 영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열렸다. 직접 의회에서 주최하는 덴마크의 합의회의의 영향력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도 합의회의의 결과는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공동 주최한 민간단체가 개최한 1998년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 1999년 ‘생명복제 기술’에 관한 합의회의가 그 것이다. 이외에도 2003년 서울대에서 개최된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관한 합의회의’와 2004년 10월 8일~11일에 걸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주최된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 합의회의’가 있다. 도서관 토론회는 일반인의 합리적인 판단을 중요시 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합의회의와 공통점을 갖지만, 그 주제가 일반인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던 과학 기술이 아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도서관 문제에 관한 토론회였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보기보다 컸다. 균형 잡힌 정보가 주어진 후 내린 상식적인 결론이 도서관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시작부터 미지수였다. 정책 결정 과정에 뛰어들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한지는 어언 2년째. 과연 그래서 기사의 질이 나아졌냐는 차치해두고라도, 2년 동안 늘 한 가지 섭섭한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항상 정책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본 기자는 그런 맥락에서 도서관 토론회에 참여하게 된다. 총학생회와 중앙도서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회의가 나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고 싶은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photo2꽤나 스펙터클한 과정을 거쳐 배심원 신청을 한 후, 10월 2일 첫 준비회의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 가보는 도서관 대회의실. 편안한 의자(얼마 안 있어 그게 오랜 시간 앉아 있기 위한 필수품이란 걸 알았지만 말이다), 한없이 진지해 보이는 사람들, 준비된 프리젠테이션 기기들, 이름이 적힌 명찰 등은 이 회의가 중요하다는 압박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회의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우리 배심원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회의 진행 방식, 의사 결정 방식 무엇 하나 결정되어서 시작한 것은 없었고 배심원들의 ‘합의’에 그 출발점을 두었다. 첫 회의는 현재 도서관 문제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을 짚고,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전문가 패널을 찾고 질문지를 짜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쉽지, 이 과정이 8시간이었다. 아침 10시 반쯤 시작된 회의는 7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배심원들의 열의는 매우 높았다고 평가한다. 준비팀이 마련한 한 번의 준비회의로는 부족하다며 또 다른 준비회의를 요구한 배심원도 있었다. 비록 사정상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이 열의는 본 회의인 15일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축제 휴강일이었던 만큼 한 번쯤 불평을 해 볼만도 하지만 ‘이미 합의 하에’ 참여한 회의 날짜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도서관 토론회 본회의, 어떻게 이루어졌나 15일 회의는 10시부터 전문가 패널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문가 패널은 중앙도서관 담당자, 도서관자치위원회, 관악구 의원인 유정희씨, 반감시모임 뒤통수, 제2도서관 추진본부 등이 참여하였다. 이외에 장애인인권연대사업팀의 요구 조건이 상정되었다. 이 과정은 기존 합의회의 모델에 따르면 ‘균형 잡힌 정보가 주어지는’ 단계. 이후 저녁 식사를 마친 후부터는 배심원간의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은 다음날까지 계속 되었다. 합의문을 작성하고 검토를 마치니 이미 시간은 16일 밤 11시가 되어버렸다. 장시간 토론에 지친 본 기자가 살짝 이성을 잃었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다른 배심원들께 사과를 드린다. 기존 ‘합의회의’의 모델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배심원들의 ‘숙고된 심의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로 배심원들의 의사가 토론을 통해서 바뀔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도 이 점이 하나의 판단 조건이 되었으며, 그런 이유로 현재 도서관과 관련된 단체의 사람들이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탈락되었다. 30시간에 걸친 토론 과정에서 이러한 ‘합의’의 과정은 가장 인상 깊었다. 열람실 개방을 둘러싼 논의에서 첫 개방과 반대의 비율이 5:10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세 번째 투표에서 이 비율이 10:5로 역전되었다. 토론을 통해 ‘무엇이 더 합리적인지’를 생각하는 배심원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은 합의회의의 의의를 느끼게 해준 지점이었다. 합의문 발표, 그 이후 본 회의 둘째 날 밤 11시, 우리는 불이 모두 꺼져 있는 자료실을 지나며 “불만 있는 사람은 가둬 놓고 30시간 회의를 시켜봐야 해”, “다큐멘터리라도 찍었어야 했던 것 아냐?”라는 농담을 던졌다. 30시간 동안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과정은 절대 쉬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토론회’를 15명의 배심원의 의견만을 수렴하는 토론 공간으로 폄하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표한다. 마치 미국의 배심원 제도가 ‘그들만의 결정’으로 폄하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의 배심원 제도가 충분한 전문적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에 비해, 합의회의 모델은 전문가 패널 간의 토론 시간을 통해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겠다. 10월 18일자 대학신문의 1면 기사의 헤드라인, “도서관 열람실 개방 문제 합의 못해”는 이런 배심원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시작이었다. 배심원들은 토론 과정을 통해 열람실의 우선적 개방 문제에는 모두 합의를 하였으며 이후 “해결책(옐로/레드 카드제나 기존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들을 도입한 후에도 자리 부족 문제가 불거질 경우에 한해서 논의를 하였다”고 보고서에 분명히 명시했다. 이런 과정을 무시한 채 배심원들이 제시한 해결책을 ‘이 밖’의 사실로 넣어 버리고 논란이 되는 지점만을 지나치게 부각한 대학신문의 태도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객관적’ 정보의 부재와 부족했던 준비회의 photo3물론 이번 도서관 토론회가 ‘엄청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완벽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합의회의 모델은 과학기술과 같이 일반 시민의 의사가 전달되지 못하는 분야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에는 ‘객관적’인 사실과 전문가가 존재하지만 도서관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또한 정확한 통계 자료도 존재하지 않았다. 열람실에 관한 가장 객관적인 자료조차도 일반 학우와의 인터뷰, 생활 패턴을 조사한 설문조사와 같이 추정적인 것에 불과했다. 전문가 패널 역시 정확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아닌 자신의 단체 입장을 표명하는 패널이 대부분이었다. 각 패널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에 적당한 패널이 부재했던 사실은 토론회의 결론을 공인되기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다고 본다. 또한 배심원들 간의 토론을 통해 짠 질문지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과정 중 또 다른 도서관을 짓기 위한 환경 파괴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줄 만한 패널이 없었다. 배심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각 단대의 강의실 개방 문제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효과는 어느 정도나 될지를 말해줄 만한 패널을 구하지 못했다. 이러한 회의 진행 과정 중의 실수는 단지 이번 토론회의 실수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에 더해 도서관을 둘러싼 논의들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이루어졌었는지, 얼마나 사전 조사가 없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였다.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을 이룰 수 있는 계기” 이번 서울대저널에서 실시한 총학생회와 관련한 설문 중, 한 학우 “학교 운영의 주인이 학생이지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본부에 확인시켜주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이후 들어설 48대 총학생회에 요구했다. 학생을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경로가 현재 부족하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도서관 토론회 학생들의 참여 경로를 보장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배심원들은 보고서에서 “무엇보다도 이번 토론회는 중앙도서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일반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항상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객체일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소극적, 일회적인 문제 제기 방식에서 벗어나서 보다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이번 토론회를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앙도서관과 배심원 측 모두 이와 같은 연결 통로가 의견 수렴에 바람직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통일했다. 합의회의 모델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도서관 토론회’는 겨우 합의회의의 다섯 번째 시도일 뿐이다. 지금까지가 합의회의의 의의를 되새기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기존 합의회의의 장, 단점을 분석하고 좀더 바람직한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인 합의회의에 너무 많은 기대도 실망도 아직은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