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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포이동 266번지. 79년에 정부가 전쟁고아나 극빈층 판자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다. 당시 주민들은 도시 정비과정에서 삼청교육대와 이곳을 두고 선택해야 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철로 만든 담장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외부와 격리된 섬처럼 보였다. 담장 주위에는 ‘강제이주를 사과하라’ ‘주민등록을 등재해 달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의 보장을 외치는 주민들의 목소리였다. 바로 앞에 잘 정비된 양재천의 모습과 현수막이 둘러있는 판자촌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도시는 나날이 변하고 있지만 한편에는 이처럼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주택법에는 거주자가 20년 이상 된 경우 점유권을 주도록 되어 있지만 이들은 주소지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을 이주시킨 공권력은 아직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곳이든지 철거나 개발 과정에서 갈등은 존재한다. 그런데 구룡마을 자치조직 지도부는 부자와 손을 잡고 함께 재산을 불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권력과 돈을 두고 다투는 것도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구룡마을의 경우 권력과 이익을 두고 폭력이 거의 무제한으로 행사되고 있었다. 일부 취재원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자치회 측에서는 인터뷰도 거부했다. 이 파워게임에서 무허가 주민들의 생존권보다는 권력과 돈에 대한 인간의 강한 욕망이 느껴졌다. 외부에서 보기에 구룡마을은 소외된 곳이지만, 이 사회가 그렇듯 마을 주민 일부의 욕망 채우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지는 다수가 생기고 있었던 셈이다. 취재과정에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가난한 곳이라고 와서 괜히 조사하고 간다’는 식의 말을 듣는 일이었다. 기사거리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보였는지 한 아저씨는 ‘편견을 가지지 말고 이곳을 보라’고 당부했다. 무의식 중에 나 자신도 구룡마을을 판자촌이나 가난한 곳이라는 관점만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등산객처럼 보이는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죽은 사람은 이제 그만 생각하시고 힘 내셔야죠.” “그래야지요,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얼마 전, 군 제대 후 위암으로 사망한 고 노충국 씨의 아버지인데 이웃 주민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여기도 똑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똑같은 대한민국 서울 시민”이라고 강조하시던 아저씨의 모습이 스쳤다. 청계천이 복원되고 곳곳에 최고급 고층 주거지들이 늘어나는 등 도시는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다. 화려한 것에 모두가 신경 쓸 때 소외된 곳의 현실은 외면되기 마련이다. 편견을 없애고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낯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으로부터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도 소외된 곳에 공감하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