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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7월 출생인 그는 올해로 나이로 59세. 1976년 처음으로 마임을 시작한 그는 35년째 공연 중이다. |
1968년 12월, 세계적인 마임 배우 롤프 샤레가 내한 공연을 했다. ‘침묵에의 초대’라는 광고 문안이 붙은 공연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마임 공연이었다. 흰 조명 아래 검은 타이즈를 입은 배우는 두 시간동안 말 한 마디 없이 이야기를 전달했고, 관객들은 배우의 몸짓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객석 한 편에는 열아홉 살의 유진규 씨가 있었다. 그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마임 배우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짧은 순간은 오래도록 강한 기억으로 남아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 선 그에게 이정표가 돼주었다.35년간 나와 함께 해온 마임 학창시절 유진규 씨는 말보다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 근처에 있는 동물원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동물과 가까이 살고 싶은 마음에 수의예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 대학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는 “수직적인 학과 문화와 군사 정권의 압제적인 분위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환상이 깨졌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유진규 씨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중퇴한 뒤 극단 ‘에저또’에 입단했다.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던 극단에서 유 씨는 판토마임을 접할 수 있었다. “오로지 나의 몸짓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는 그는 고민 끝에 연극 대신 마임을 택했다.
| ###IMG_1###은 신칼, 한지, 향, 상여소리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마임 공연이다. 작년 11월 <빈손>은 상하이 국제연극제에 초청됐다. ⓒ유진규네몸짓” /> |
| <빈손>은 신칼, 한지, 향, 상여소리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마임 공연이다. 작년 11월 <빈손>은 상하이 국제연극제에 초청됐다. ⓒ유진규네몸짓 |
본격적으로 마임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상황 속에서 유진규 씨는 외국의 마임 영상들을 직접 구해가며 연습했다. 마침내 1976년, 그는 첫 번째 공연인 을 무대에 올렸다. 그 후 약 35년의 기간 동안 유 씨는 20여개의 개인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 속에 자신의 생활을 담아내는 작업이 많아지면서 공연과 일상의 경계는 무너져갔다. “정형화된 무대를 탈피하고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다른 마임 배우들과는 달리 얼굴에 하얀 분장을 칠하지도 않았고, 과장된 몸짓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고정된 경계를 허물고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1년 여전히 그는 마임 배우로 살고 있다. 물론 마임을 그만둘 뻔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공연활동에 전념하던 80년대 어느 날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서울을 떠나 귀농을 하기도 했고, 97년 뇌종양 선고를 받아 죽을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89년 서울로 돌아온 이후 그는 ‘한국마입협의회’를 창설하고 ‘춘천마임축제’를 기획하면서 마임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에는 춘천 소년원에 찾아가 수감자들에게 마임 교육을 하기도 했으며, 올해 8월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라는 공연을 무대 위에 올렸다. 몸을 통해 존재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사람은 혼자일 때 자기를 생각한다. 눈을 뜨면 다른 누군가가 보이지만 눈을 감으면 내가 보인다.” 유 씨는 작품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전면이 거울로 돼있는 마임 연습실에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얼굴 표정과 몸의 형태를 하나하나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키가 작고 팔다리가 짧은 편인 그였지만 유진규 씨는 몸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든 분명히 남들과는 다른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유진규 씨는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과 더불어 주변에서 쉽게 스치는 사소한 사물들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했다. “몸짓을 제대로 하려면 사물들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그는 작은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십여 년 전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 단체에서 받은 연락으로 ‘새만금 갯벌의 백합’을 표현한 마임 공연을 가졌다. 방조제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있는 백합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공연이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유진규 씨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둘러싼 말없는 존재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는 “아침이면 뜨는 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 이런 것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작지만 강하다”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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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닿는다. 빨간방에서 네가 나를 보고 내가 너를 보고 나를 내가 본다’는 문구와 함께 기획된 공연 <빨간방>. <빨간방>의 은박 테이프와 음악과 빛이 가상 현실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ARTSNEWS |
존재에 대한 그의 고민은 여러 작품 속에 녹아있다. 유 씨는 79년에 처음 발표한 연작 을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았다. 이름에서 보듯 인간 존재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인지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 후 이라는 공연에서는 기계화된 인간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졌고, 에서는 관객들과 같이 개미를 관찰하며 존재의 문제를 관객 각자의 몫으로 돌리기도 했다. 시리즈 중 하나이자 가장 최근에 가졌던 공연인 과 에서 그는 공연 중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관객들의 움직임을 유도했다. 그는 “관객들 역시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길 바랐다”며 공연 취지를 밝혔다.의미를 담는 몸짓 그리고 침묵의 미학 몸으로 말하는 마임에서 몸짓 하나하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유진규 씨는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몸의 말을 익혀야 했다”며 신인 시절의 기억을 되짚었다. 마임을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이 없었던 그는 제도권 내에서 테크닉적인 측면을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표현에 어려움을 겪던 유 씨는 ‘상징’을 이용한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다 표현하지 않고 필요한 몸동작만을 취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꽃향기를 맡고 나비를 쫓아가며 자연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을 때, 그는 ‘생명’이라는 상징을 사용했다. 그는 “손과 발의 움직임에 활력을 넣어 생명력으로 가득 찬 몸짓을 보여주면, 관객들은 거기서 ‘생명’으로 상징화된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몸짓의 의미는 마임 공연장을 벗어나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적용된다. 그는 “몸의 움직임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며 몸이 가진 능력에 관심을 보였다. ‘바디 랭귀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로 쓰일 정도로 몸짓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더불어 우리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이 16시간 정도라고 할 때, 대화의 시간은 많아야 몇 시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들은 은연중에 보인 표정과 몸짓만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실험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말과 표정보다 몸 전체의 움직임이 많아진다”며 말로 다가갈 수 없는 진실이 몸 안에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유 씨는 너무 많은 말이 난무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요즘 연인들의 경우 문자는 400번 쯤 받아야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더라”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말에 집중시키기 위해 점점 더 진실과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말은 표현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말로써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길 원하고 말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옛말처럼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침묵의 순간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는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은 말을 하지 않는다”며 침묵의 가치를 강조했다.“자기의 삶 안에서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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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내 유진규 씨는 마임 배우 답게 다양한 손동작을 구사했다. |
35년 남짓 마임 배우로 살아온 유진규 씨의 인생은 과감한 선택들의 연속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동물들을 사랑했던 소년은 대학교 수의예과에 입학했지만, 연극에 빠져 몇 달 간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을 중퇴했고 군 제대 후 연극과 마임이라는 갈림길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마임’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스승 하나 없는 망망대해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대를 보여줬다. 한 때 “내 무대는 허위에 가득 차 있다”고 자조하며 돌연 활동을 그만두고 귀농을 하기도 했으나, 다시 서울로 올라와 ‘한국마임협의회’와 ‘한국마임축제’를 만들었다. 그는 변화에 대한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리진 않았지만, 그는 삶에 변화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이했다. 그렇게 매순간 부딪치고 깨지고 남김없이 살았을 때 그것을 ‘변화’라 이름 지을 수 있었다. “스스로를 찾고 나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하는 그는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불안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인생은 어차피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버티게 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유진규 씨는 『장자』에 수록된 ‘길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이란 무엇이냐? 길은 언제부터 있었느냐? 길은 사람이 다님으로써 생긴 것이다. 애초에 길은 없었다’는 구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길을 따라갈까 고민하지만, 그 길도 누군가는 처음으로 밟았을 길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이 진로를 정하는 시점에 있어 너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주위의 기대, 스펙, 학점과 같은 지표에 억눌려있는 나머지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남이 가던 길을 따라가려고만 하지 말고 위험 속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갔으면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내가 가면 길이 생기니,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딛었으면 좋겠다.” 그의 미소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