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전기훈(인류·02)씨는 자신의 과/반방에서 바이올린을 도난당했다. 이에 전씨는 사건 일주일 뒤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과/반방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사건당일 그곳에서 사용된 컴퓨터로 서버 추적을 하는 등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범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사회대 곳곳에 붙었으나, 한 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같이 못살겠네. 정말! 사실 학내에서 이러한 도난 사례를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도서관이나, 학생회관과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을 찾아주세요’라는 내용의 메모가 게시판을 덮고 있다.한 과/반에서는 지난 한 학기 동안 과/반방으로 온 택배 물품이 부분적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사물함 속에 넣어놓은 책이 없어지기도 하는 등 분실사건이 잇따르기도 했다. 특히, 학내에서 가장 큰 생활공간인 기숙사에서는 이러한 도난 사례가 보다 적나라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옷이나 음식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부터 시작해서, 컴퓨터나 돈, 선풍기 등, 하나하나 따져보면, 세상의 모든 ‘도난 유형’들이 빠짐없이 기숙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제 친구는 기숙사에서 컴퓨터 본체까지 도난당한 상태여서…” “제 빨래바구니가 없어졌더군요..혹시 자기 것인줄 알고 잘못 가져가신 분은 꼭 돌려주세요..” “제 룸메이트가 외국인인데요.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들이 모두 없어졌답니다.” “매일 남의 신문 훔쳐보는 사람 누구예욧!”(출처- 기숙사홈페이지 dorm.snu.ac.kr) 현재,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도난문제에 마땅히 대처할 만한 방법은 단정적으로 말하면,’없다’ 현관문앞에 설치되어 있는 CCTV로 외부인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는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그것이 24시간 감시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것을 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역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생들이 CCTV에 대해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난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세탁장이나 냉장고 앞에 CCTV를 설치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사생활 침해’ 라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왔다. “사실 지금 현관문앞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사생들이 많아요. 그것은 99년도 자치회에서 결정한 사항이었는데, 저도 CCTV설치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기숙사 대표조교 이재윤씨는 도난 문제에 대해 사생들이 자치적으로 규약을 만들어서 그것을 준수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요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자치적인 움직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물품의 도난과 함께 생활공간에서 제기될 수 있는 두번째 문제는 바로 ‘청결’이다. 인문대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는, “학생들이 먹고 난 배달 그릇을 복도에 놓아두기 때문에, 냄새도 나고 혹 다른 학생들이 잘못 건드리면 엎어져서 청소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복도에 놓지 말라고 말을 하는 데 잘 지켜주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과/방이나 동아리방에 분리수거를 위해서 쓰레기통을 구분해서 놓아둔다고 해도 분리수거가 잘 되지 않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되면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들이 다시 쓰레기를 분리해야해서 일이 두배로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학생회관 벽면에 흉하게 남아있는 테이프 자국들은 물론 학기가 시작하면 새로운 포스터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겠지만, 또다른 손실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3월달에 붙여진 인쇄물들이 한 학기가 지날 때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붙이는 사람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떼어내는 사람은 없다. 독일 심리학자 링겔만은 집단 속 개인의 공헌도를 측정하기 위해 줄다리기 실험을 했다. 1대1 게임에서 1명이 내는 힘을 1백으로 할 때 참가자수가 늘면 개인이 어느 정도의 힘을 쏟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그결과 2명이 참가하면 93으로, 3명이 할 때는 85로 줄었고 8명이 함께 할 때 한 사람은 49의 힘,즉 혼자 경기할 때에 비해 절반밖에 내지 않았다. 참가하는 사람이 늘수록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이런 집단적 심리현상을 ‘링겔만 효과’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는 1대1 게임과는 달리 ‘여러 명’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할 때는 사람은 전력 투구하지 않는다. 익명성이라는 환경에서 개인은 숨는 것이다. 캠퍼스의 익명화, 생활공간의 황폐화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비난받을 만한 행위들은 어쩌면, 단순히 불평하고 넘어갈만한 수준의 미미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기숙사 홈페이지, 외부인에 의해 발생하는 일들이라며)’라는 생각이나,’뭐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대학이라고 해서 다르겠느냐(snulife, 이러한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말과 함께)’라는 의견이나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것은 ‘무관심’이다. 전기훈씨의 말에 따르면, 과방 등에서 도난사건이 생길 경우 보통 ‘신고’는 하지만 자신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잘 없다고 한다. 경찰 조사와 대자보 붙이기 등,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과방에 경찰이 들어오는 데 거부감을 표하는 선배들도 있었다고 전씨는 말한다. 도난사건의 경우에는 학내 규정에 의해 해당되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적용되는 규정은 다르지만 얼마 전, 기숙사에서는 룸메이트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친 사생에게 퇴사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목격자나 증거물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더러,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애초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내 도난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나아가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박은 차치하고서라도, 분명한 것은 대안으로 ‘침묵’을 선택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며, 침묵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해결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다수의 무관심이 초래하는 것은 결국, 생활공간의 황폐화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유대감의 결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사실 무관심이 초래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내 일,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숙사 자치회 부회장 이소영씨(디자인02)는 ‘사생들간의 유대감 강화’라는, 애초에 자치회가 설립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의 자치회에서는 청결,도난 문제에 관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죠. 저희는 자치규약을 정하는 것이나, 캠페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각층마다 ‘층장’두기, 축제, 영화제등을 통해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려고 합니다.” 익명화되는 캠퍼스 속에서 개개인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수치상으로도 엄청나게 증가한 학내 도난사건(기숙사의 경우, 90년대 중반까지도 신고되는 도난 사건의 수는 연간 5건 미만이었다고 한다)은 단순히 제도나 합의의 문제로 해결될만한 사안이 아니며, 그렇다고 공허한 구호가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과/반방, 그리고 앞으로 다루게 될 강의실이나 도서관과는 달리 어느 정도 관리 주체가 명확한 기숙사의 사례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약속이 성립할 수 있는 공간 한 청년이 일광욕을 즐기던 휴가객 바로 옆에서 녹음기를 틀어 놓고 음악을 즐기다 바닷물에 뛰어든다. 다음엔 도둑 역할을 맡은 사람이 녹음기와 옷가지 등 그 청년의 소지품을 챙겨 슬그머니 달아난다. 누가 봐도 도둑임에 분명했지만 20회 실험 중 단 4명만이 그 ‘도둑’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똑같은 상황인데 하나만 바꿔봤다. 청년이 바닷물에 뛰어들기 전 “제 물건 좀 봐주세요”라며 직접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거의 전부랄 수 있는 19명이 도둑을 잡으려고 위험을 무릅썼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는 이것을 ‘일관성의 원리’로 해석했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자신의 말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게 된 결과라는 것이다. CCTV설치, 자체적인 규정의 확립, 혹은 유대감 강화에 앞서 해결되어야 할 것은 도난이나 청결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이다. 도난이나 청결문제는 결코 개인적인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 아니며, 그러기에 그 대안은 생활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단위내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힘과 규율이 아니라, 약속이 성립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생활공간을 이용하는 주체들의 고민이 절실히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