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의 주변은 언제나 소란(騷亂)하다. 국경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는 곳도 그렇다. 시간의 경우도 예외가 없기에 우리는 고교를 졸업하며 밀가루를 뒤집어써야만 했고 대학의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사발주를 마셔야 했다. 광야와도 같은 대학생활의 마침표를 찍기 직전의 4학년들은 또 그 소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4학년들의 생활이란 마치 회전문과도 같다. 늘 열려있으면서도 늘 닫혀있는. 이 특수공간에서 부산하게 걸음을 재촉하지만 뒤돌아보면 서서히 과거가 단절되어 감을 느낀다. 하지만 문을 열었다고 밖이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회전문을 미는데 집중하다 출구를 놓쳐 다시 돌아오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출구를 제대로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엔 씬 레드라인(The Thin Redline)같은 또 다른 경계가 형성되는데, 이는 주로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로부터 나온다. 정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이 가느다란 선이 비단 정상인 4학년과 비정상인 4학년만을 구분 짓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밥벌이에 나서야 하는 실존적 문제에 직면한 젊은이들을-그것도 수백만 실업 대군이 취업을 위한 각개전투를 치르는 이 땅에서-그토록 강력하게 옥죄는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적어도 “선배는 한국은행 시험 안보셨어요?”라든지 “아직도 취직 안 하셨어요?” 따위의 말을 듣는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자기소개서를 스무 장씩 쓰면서 주사위를 던져봐야 하겠고, 제법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면 고시공부도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야 하겠지만 만족스런 밥벌이 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토익점수나 고칠 데가 없는 성적증명서를 두고도 고배를 마셔야만 하는 불쌍한 세대들이다.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기가 죽고 천진난만한 후배들의 뼈있는 질문에 상처가 곪아 터질 지경이지만 구겨지지 않는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라 ‘취업 1승’을 향한 발걸음은 쉼이 없다. 4학년들을 옭아매는 타자의 시선은 맘속에 딱딱한 굳은살이 박이면서 견딜만해졌지만 깊은 곳에서 아우성치는 불안감은 해결 불가능이다. ‘어찌 되겠지’하는 무대책 상팔자도 이 시기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스콧 니어링의 말처럼 “생각 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불안감을 외면한 채 생각한대로 산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정말이지 살다보니 4학년이 되어 이런 고민도 다 하는 거 아닌가. 불안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조언은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여기서 성장이란 ‘내면의 혼란과 주변의 부담스런 시선을 모두 젊음이란 무기로 승화시켜 열정과 패기의 도전정신을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열매’임을 당신은 상기해야 한다. 결국 ‘열심히 살자’라는 결론이라 함께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시대를 짊어져야만 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로는 위로가 안 될까? 하지만 하나만 기억하자. 그대가 고민하는 모든 문제들이 그대의 오늘을 규정하고 그 오늘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의 혼란이 바로 명랑한 미래의 밑거름임을. 비록 혼란스럽고 위험스럽게 느껴져도 이 경계의 혼돈(混沌)이 지나면 창세기의 기록대로 흑암을 물리치는 빛의 창조가 있을 것이다. 믿는 자에게 복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