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에 고담시는 스산하다. 언제나 그랬듯 인제의 물난리 소식을 들은 배트맨은 알프레도를 부른다. 알프레도는 아무 말 없이 전용제트기 배트윙을 준비한다. 인제의 물난리는 매년 7,8월만 되면 으레 있는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다. “인제에 가면 밤이겠군요. 복장도 준비해 드리죠.” 복장을 준비한 배트맨이 떠나려하자 알프레도는 상자 하나를 건넨다. “이번엔 말가죽입니다.” 상자를 받은 배트맨은 배트윙에 오른다. “나 솔직히… 인제 가기 지겨워.” 캣우먼의 반복되는 투정에 배트맨도 대꾸하지 않는다. 다만 말가죽 채찍이 든 상자를 건네줄 뿐이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슈퍼맨과 스파이더맨도 인제의 물난리 소식에 치를 떤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면 다시 인제로 가야하는 것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슈퍼맨은 물난리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 스파이더맨은 참혹한 현장을 찍으러 사진 기자로 간다. 슈퍼맨은 날아가지만 아쉽게도 비행능력이 없는 우리의 스파이더맨. 씩씩거리며 야간 고속버스에 붙어서 인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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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스파이더맨은 같이 간 사진 기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사람들 속을 돌아다닌다. 벤 삼촌은 말씀하셨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자, 이제 변신이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 왔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도시체질. 쓰러져가는 낡은 가옥들과 무너져버린 도로와 산은 스파이더맨마저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다. 빌딩 숲속을 날아다니던 그도 쓰러진 나무에 뒤엉킨 자신의 거미줄을 푸는데 고생했다. 씩씩거리며 거미줄은 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스파이더맨, 정말 힘들다. 오늘 따라 몸을 죄이는 타이트한 복장. 더운 날씨에 땀이 절로 난다. “제길, 비나 와서 시원해졌으면” 혼자 중얼거리던 말에 화들짝 놀란다. 한편 슈퍼맨은 수재 현장을 취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뿔테 하나로 알아보는 이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손이 모자라 고생을 하고 있다. 여전히 조그만 충격에도 무너지는 건물과 다리, 제방은 수해 때마다 사람들을 괴롭힌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가뿐히 뿔테 안경을 벗어 던지고 슈퍼맨이 나선다.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다. 물에 잠긴 가재도구들은 ‘고열시각’으로 말려주고, ‘초강력 호흡능력’으로 거센 물살을 얼려 버린다. 괴력의 힘으로 무너진 다리, 제방을 계속해서 치운다. 다리를 치우면 제방이 무너지고, 제방을 치우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흙을 치우면 다시 다리가 무너진다. 지난해는 크립톤 행성에 다녀오느라 수해복구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 사이 다리와 제방, 어째 더 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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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지만 슈퍼맨 사전에 불가능은 없지. 지난 번 스파이더맨의 예상치 못한 부진으로 사람들은 실의에 빠졌지만 이제 슈퍼맨이 그들 앞에서 보란 듯이 열심히 복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에서 보던 꿈만 같던 일이 일어나자 수재민들도 힘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도 모두 열심히 복구를 하고, 슈퍼맨도 화장실 가고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일하는데 복구에 끝이 안 보인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왔다고 해도 지어진지 1년도 채 안되는 다리와 제방이 계속 무너지는 것은 뭐란 말인가?’ 슈퍼맨은 혼자 곱씹는다. 그런데 오늘 날씨도 참 무덥다. 항상 장마 끝에 오는 무더위는 여러 사람 고생시킨다. 슈퍼맨도 예외는 아니다. 날씨는 덥지, 땀은 흐르지, 하지만 자기가 입은 딱 달라붙는 옷은 바람은 커녕 물도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다가 이 놈의 망토는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운지. 일은 그 날 저녁에 일어났다. 슈퍼맨은 밥도 못 먹고 끙끙앓으며 혼자 교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걱정이 되는지 슈퍼맨에게 ‘괜찮냐’며 물어봤지만 슈퍼맨은 말할 기력도 없는지 머리만 절레절레 흔든다. 변변한 병원도 없는 산골짜기 인제. 사람들은 긴급 회의를 열고 슈퍼맨을 어떻게 할 지 논의를 한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저렇게 부서지는 다리랑 제방에 어디 장사가 있나?’라며 쓰러진 슈퍼맨을 위로한다. 슈퍼맨은 말이 없다.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스파이더맨, 슈퍼맨도 인제에서 힘을 못 쓰고 가자 동네 어른들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우리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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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윙을 타고 왔지만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배트맨. 시차 적응도 안되고, 밤이 아니라서 활동도 할 수 없는 그는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돈이 있는 배트맨. 다른 영웅들이 몸을 쓴다면 자신은 재산을 쓰리라고 다짐한다.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건설사. 배트맨은 건설 사무소장에게 거액의 돈을 주며 복구에 힘써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좋게 생긴 우리 소장님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 건설 사무소장은 복구비로 나오는 예산을 노린 악덕 업주였다. 불행한 일은 그런 건설사가 인제에 많다는 사실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우리 배트맨은 막대한 돈을 날리고, 시간이 흘러도 공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최신 장비를 사용하고 싶지만 저녁에는 복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성상 뭘 할 수도 없는 자신이 미울 따름이다. 옆에 따라온 캣우먼은 “올해도 또 이 모양이군요…”라며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다. 돈을 사기 당하고 기분이 쳐져있는 배트맨을 보다못한 캣우먼. 직접 자신의 말가죽 채찍을 가지고 복구 공사 현장에 가서 느릿느릿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채찍질한다. ‘이 놈의 도시는 인제가 아니라 ‘인재(人災)’야’ 울부짖는 캣우먼. 초속 1400피트를 내는 캣우먼의 채찍에 게으른 공무원들은 쓰러지고, 수재민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마적 영웅 캣우먼. “그래도 캣우먼이 속 시원하게 해주는구만” 하지만 사람들의 환호도 잠시, 캣우먼은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에 붙잡혀간다. 물난리를 겪은 주민들을 도와주고 싶었던 배트맨과 캣우먼은 사람들의 야유를 받으며 다시 고담시로 되돌아간다. 말이 없는 두 사람. 고담시로 가는 길이 멀기만하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강원도 인제는 물난리를 겪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텔레비전을 보던 배트맨은 알프레도를 시켜 배트윙을 대기시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가죽을 선물해서 캣우먼을 데려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