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호 표지사진 (기획관련)
내게 검열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봐
무상급식, 희망버스

내게 검열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봐

지난 8월 16일 가수 10cm의 노래 ‘아메리카노’가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유해물)로 지정됐다.이에 따라 ‘아메리카노’는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판매가 금지됐고, 오후 10시 이전에는 방송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지난 8월 16일 가수 10cm의 노래 ‘아메리카노’가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유해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노’는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판매가 금지됐고, 오후 10시 이전에는 방송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작년 8월 4일에 나온 ‘아메리카노’가 1년이 지나 뒤늦게 유해물로 지정된 이유는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다른 여자와 키스하고 담배필 때’라는 가사에 직접적으로 유해약물인 담배가 등장할 뿐 아니라, 가사가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지정된 이유가 ‘그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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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10cm가 서울대 축제에 초청받아 공연을 하고 있다. c 재료공학부 정승호

3월 29일에는 10cm의 또 다른 노래 ‘그게 아니고’가 가사에 유해약물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유해물로 지정됐다. 당시 ‘책상서랍을 비우다 니가 먹던 감기약을 보곤’이라는 부분에 나오는 ‘감기약’이 그 유해약물이라는 풍문이 퍼져 논란이 됐다. 그러나 청보위는 ‘술이나 마시며 운 게 아니고’라는 부분에 나오는 ‘술’이 문제가 됐다고 해명했다. 감기약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청보위의 회의록에 따르면, 2월 28일 유해물로 지정된 가수 지아의 ‘감기때문에’는 ‘감기약이 많이 독했으면 싶어요’라는 가사에 나온 감기약 때문에 유해물로 지정됐다. 감기약이 향정신성의약품이라는 이유였다. 감기약을 둘러싼 풍문이 전혀 근거가 없던 것은 아닌 셈이다. 청보위에 앞서서 음반의 유해물 지정을 논의하는 ‘음반심의위원회’는 이 노래의 ‘술취한 것처럼 아주 깊은 잠이 들어야’라는 가사를 문제 삼았다가, 술을 마신 것은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청보위에서는 이 노래를 감기약과 술 두 가지 모두 근거로 들어 최종적으로 유해물로 지정했다. 3월 29일 10cm의 앨범만 유해물로 지정된 것이 아니었다. 1978년 발표된 영국의 락그룹 Queen의 ‘Don`t stop me now’도 선정성을 이유로 유해물로 지정됐다. 이미 발표된 지 30여년이 지난 후 였다. 같은 날 가수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넌 그날’도 유해물로 지정되었다. 이 노래는 ‘네가 싫어했던 야한 옷을 입고’, ‘넌 그날 나를 안으면서’같이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가사를 담고 있었으나, 정작 유해물로 지정된 이유는 “넌 그날 술을 마시고”라는 가사가 유해약물을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기준만이 문제가 아니다. 급증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최근 음악에 대한 유해물 지정이 급증하고 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생겨난 유해물 지정 제도는 ‘청소년을 유해한 각종 사회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에 의해 규제된 음반은 2005년까지 4개에 불과했다. 2006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 폐지되고,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담당하던 음반 심의업무가 국가청소년위원회로 옮겨가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때부터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체계적으로 음반이 아닌 구체적인 음원에 대한 유해물 심의를 진행해 2007년 말까지 약 1년간 353곡을 추가로 유해물로 지정했다. 2008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청보위로 바뀐 후, 유해물 지정은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 청보위는 2008년에 전년대비 두 배 가까운 653곡을 새로 유해물로 지정했다. 2009년에는 이 수치가 더욱 늘어 895곡, 2010년에는 1117곡을 유해물로 지정했다. 2011년 7월 기준, 전년 동기 548곡에 비해 소폭 증가한 552곡이 추가로 유해물로 지정됐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김종문 씨는 “최근 매체환경은 급속히 발전하는 반면, 기존의 대중음악산업계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들을 걸러내려는 자정노력을 거의 보이지 않아 부득이하게 국가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해명했다.유해물 지정은 검열? 최근 갑자기 증가한 유해물 지정에 대해, 과거 음반 사전심의제도와 다를 바 없는 제 2의 검열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유해물로 지정되면 방송시간에 심각한 제한이 생길 뿐 아니라,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음반 자체가 판매 금지된다. 최근 음악시장의 주 소비층인 10대에게 음원과 음반을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은 가수들에게 큰 타격이다. 흑인음악 미디어 강일권 편집장은 “오늘날 음반이나 음원 구매의 주된 소비층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19금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음원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오프라인 판매가 부진한 지금의 상황에서, 인디 뮤지션들까지 타이틀곡만큼은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위해) 19금을 피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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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강일권 편집장은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c 뉴스엔

1996년 공연윤리위원회가 담당했던 음반 사전심의제도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아서 폐지됐고, 이후 음반에 대한 심의는 사실상 없어졌다. 당시 폐지된 이유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21조 제2항의 규정에 위배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열은 ‘의사표현의 발표여부가 오로지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를 의미한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민간 기구였으나,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지 않은 음반의 발매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금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제도가 음반 사전심의제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판단한다는 점과 전면적인 판매금지가 아니라 한정된 판매금지라는 점이 차이난다. 하지만 현재의 유해물 지정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해물 지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책 을 내놓은 변호사 금태섭 씨는 “청보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재 규제받고 있는 노래 가사가 실제로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 그것을 완벽하게 규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과도한 규제는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사실 규제가 가능하냐 아니냐와는 별개로, 유해물로 지정된 매체물이 실제로 청소년에게 유해한지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강일권 편집장은 “‘술’과 ‘담배’는 분명히 우리의 건강에 좋지 못한 것들이지만, 음악을 통해 언급되는 이것이 진정으로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을 조장하는지 알 수 없다”며 청보위의 엄격성을 꼬집었다.음란물 심의도 기준이 모호해 7월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박경신 심의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의 성기 사진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원래 이 사진은 방통심의위가 음란물로 판정해 삭제조치를 내렸었던 것이다. 심의과정에서 이 판정에 반대했던 박 심의위원이 이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하자, 이도 다시 심의대상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박 심의위원은 사진을 삭제하고 대신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의 을 올렸다. 이 그림은 여성의 성기를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박 심의위원은 이 그림도 음란물이냐며 항의했다. 결국 8월 4일 방통심의위는 박경신 심의위원에게 공식적인 경고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음란물 심의를 담당하는 기구 안에서도 무엇이 음란물인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1981년 자율적인 심의기구로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늘날 방송통신위원회의 보좌 기구로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인터넷에 올라온 매체물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 삭제 및 유해물 지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 인터넷의 매체물을 심의하는 권한은 1995년 설립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가지고 있었으나 2008년 방통심의위가 탄생하면서 권한이 승계됐다.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음란물 음란물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당시 대법원은 교사 김인규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임신한 부인과 찍은 누드사진을 음란물로 판단했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사진은 이미 광주 비엔날레에 초청돼 공공연하게 전시됐었다. 창작공동체에서 예술작품으로 공인한 작품을 법원이 음란물로 단죄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음란’을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표현물의 음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고 했다. 즉 음란물의 기준을 ‘일반 보통인에게 음란하게 보이는 것’으로 삼은 것이다. 뚜렷하게 모습이 나타나는 사진이나 영상과는 달리 출판물은 음란물이냐 아니냐를 두고 더 큰 논란이 있었다. 1992년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집필한 라는 소설이 음란물로 지정돼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1997년 소설가 장정일 씨도 그의 작품 가 음란물로 지정돼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이들 작품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묘사됐는데, 이를 법원이 음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정일 사건 당시 대법원은 ‘문학성 내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므로 어느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 내지 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예술작품에 대해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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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거짓말>로 만들어졌으나, 이 영화도 음란물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법원의 판단에 음란물 여부를 맡겨선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 금태섭 변호사는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의 영역에서는 작가가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영화의 정사씬을 놓고, 그 장면이 없어도 관객에게 줄거리를 전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부당하다”며 “(작품의) 디테일 하나하나에 대해서 감독이 설명을 해야 하거나,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자유로운 상상력은 죽게 된다”며 법원의 판단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경고했다.내가 보면 안다? I know it when I see it? 한국 법원이 상당히 구체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려 노력했음에도, 음란물의 기준이 논란이 되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정성’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1964년 미국의 대법관 포터 스튜어트는 ‘(음란물이 무엇인지는)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는 말을 남겼다. 음란하냐 하지 않느냐는 그것이 놓인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규정될 수 있는 것이지, 객관적이고 규범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선 금태섭 변호사의 지적과 같이, 예술의 영역에서 음란성을 따져 묻는 것은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옳을지 모르나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음악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이 최근 논란이 되는 것도 그 잣대가 자의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요소가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실제로 음악을 통해서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지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일관된 잣대를 들이댔다고 해도 자의적인 잣대와 다름없게 보인다. 이에 강일권 편집장은 “대부분 사람이 공감할만한 선에서 ‘유해’의 기준을 다시 명확하게 세우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우리 헌법은 제 21조 1항 및 제 22조 1항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학문·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제 37조 2항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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