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기사를 쓰려 할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주위에서도 다들 “왜 여성이 군대에 대해서 기사를 쓰려 하느냐”며 말렸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성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갔던 군 사상자 유가족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사를 쓰려 하느냐고. 입으로는 “이 문제가 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이, 나이도 어린 기자가 군대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앞섰습니다.그러나 취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했던 기사를 쓰려는 이유를 점점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아들의 사진을 아직도 품에 간직하고 다니는 한 유가족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아들과의 시간을 추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상처를 되새기며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어려움을 꼭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고통을, 앞으로도 계속될 고통을 누군가는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직 우리 사회에 많이 남아있고, 앞으로도 더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아들이 쓰던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그만 잊으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 때문에 친지와도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아온 유가족의 사연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귓가를 울렸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에게 더 이상 힘들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위로하는 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상처를 또 끄집어내어 죄송하다고 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다독이시는 그분에게, 장병들이 아들 같아서 의문사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분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오늘도 저녁 뉴스에서는 군부대에서 한 일병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 사람은 한 명의 병사로, 한 명의 자살자로 뉴스 언저리를 장식하고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반복되는 병영 문화 혁신 정책에도 그는 여전히 죽어가는 수많은 군인 중 한 명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아들이자 친구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 기사를 쓰려 할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주위에서도 다들 “왜 여성이 군대에 대해서 기사를 쓰려 하느냐”며 말렸습니다.그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성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갔던 군 사상자 유가족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사를 쓰려 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