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보다 못한 전학대회?

텔레토비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은.돔형의 지붕으로 된 집에서 산다, 색깔로 구분한다, 주로 입으로 먹고 살지만 가끔 몸으로 때우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즐거워한다.흔히 ‘개판’으로 불리는 국회.국회로 대표되는 정치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단골 입담 소재이며 유머다.한 정부의 입법기간인 국회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 정치인들의 기득권 싸움을 위한 장이 된 것은 이미 ‘일곱 살 어린애도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텔레토비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돔형의 지붕으로 된 집에서 산다, 색깔로 구분한다, 주로 입으로 먹고 살지만 가끔 몸으로 때우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즐거워한다.흔히 ‘개판’으로 불리는 국회. 국회로 대표되는 정치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단골 입담 소재이며 유머다. 한 정부의 입법기간인 국회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 정치인들의 기득권 싸움을 위한 장이 된 것은 이미 ‘일곱 살 어린애도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학내에서도 학생들에게 통용되는 법이 있어야 할 터.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국회에 준하는 ‘전학대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국회의 인지도가 큰 것에 비해, 학생들에게 전학대회의 인지도는 지극히 작다. 신영범(사회대 04)학우는 전학대회의 존재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학생회비의 운용 방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관심 없는데? vs 관심 없으려면 말아라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즐거워하는 집단이 학내에도 존재하니, 전학대회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전학대회란 전체학생대표자총회의 줄임말로 전체 학생이 참여하는 전체학생총회가 현실적으로 열리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여 전체학생총회 대신 최고의사결정권을 위임받은 최고 의결기구이다.(총학생회칙 제 16조) 전학대회에서는 총, 부총학생회장을 비롯하여 단대와 과반의 대표자들에게 의결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학우들의 ‘그나마 없던 관심’은 대부분 선거가 끝난 이후 ‘완전히’ 사라지기 마련. 총학생회장 홍상욱(경제 99)씨는 “전학대회는 대의원들 사이에서도 공유가 잘 안 된다”고 말하며 전학대회에서 결정되는 안건들이 이미 학우들과 유리된 지 오래라는 점을 시인했다. 따라서 전학대회는 선거를 통해 대표권을 위임받은 몇몇 대의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무관심과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에 지친 ‘포기’는 서로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이젠 일반 학우와 대의원들 간의 소통은 거의 ‘의도된 침묵’에 가까워졌다. 이와 같은 귀결이 과연 바람직할지는 의문이다. 뭐? 스크류바가 38만개라고? photo1알고 보면 전학대회에서 다루는 안건 중 학생회비와 관련된 부분의 액수는 ‘학우들이 무관심해 할 만큼’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매 학기마다 집으로 발송되는 학생회비 9000원 고지서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비롯하여 대학본부 지원금, 광고수입 등등을 합하면 47대 총학생회비의 1학기 예산은 정확히 192,975,565원이었다. 좀더 실감나게 다가오도록 말해 본다면 할인도 하지 않은 스크류바를 약 38만 5951개를 먹을 수 있는 금액이며, 최신형 mp3 플레이어를 771개 살 수 있는 액수다. 그러나 관악 2만 학우 중 학생회비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아는 학우들은 거의 전무하다. 비록 총학생회칙 24조에 따라 공청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여 전학대회에서의 안건을 대중적으로 논의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하며, 전학대회 시행세칙에 따르면 ‘회의공개의 원칙’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들 외에 일반 학우들과 논의 과정,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 역시 ‘밀실 정치’로 대표되는 국회보다도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 ‘입법절차 개관’ 내용 중 입법예고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행정절차법의 시행으로 입법예고는 필수적인 법정절차가 되었’다고 설명하며,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령 등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하고자 할 때에는 입법에 앞서 법령안의 입법취지, 주요 내용 또는 전문을 관보·공보나 신문·방송·컴퓨터 통신 등의 방법으로 널리 공고하여야 하며, 그 예고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은 국회가 국민이 뽑은 대표자들에게 모든 결정권을 위임한 것이 아닌, 그들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국회보다 못한 전학대회 이에 비해 전학대회의 경우 의안을 발의하는 조건이 단지 ‘운영위원회의 의결, 재적대의원 1/5 이상의 동의 또는 회원 300인 이상의 연서로 개회 전까지 발의할 수 있다’에 그친다.(총학생회칙 제 22조) 운영위원회의 안건의 경우 개회 3일전까지 발의하는 것이 의무적인 반면, 다른 단위에서 제시한 안건의 경우 개회 전까지 소정의 조건만 갖춘다면 공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학우들과의 소통을 무시한 안건일지라도 발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국민들에게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만큼이라도 전학대회는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총학생회칙에는 입법 과정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 국회와 같이 주요 내용 전문을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알리는 방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2004년 1학기에 열렸던 전학대회의 경우 학생회비의 양을 단과대학 쪽에 좀더 비중을 두자는 자연대 학생회장의 안건이 회의 이전에 전혀 공유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안건으로 상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던 스누나우 기자 장웅조(산업공학과 00)씨는 “재정이라는 지극히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 정작 영향을 받는 단위들에게 한 마디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안건을) 기습 상정한 것은 대표자들이 지켜야 할 ‘공론화’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하다못해 탄핵을 이끈 국회의원들이 적어도 국민들에게 탄핵을 추진할 것임을 사전에 밝혔음에 비해, 국회의원들보다도 못한 행태”라고 일부 전학대회 대의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정해진 안건의 공포 방식 또한 강제되어 있지 않은 것이 전학대회의 현실이다. 국회의 경우 공포 방식을 ‘서울특별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둘 이상에 게재함으로써 함’으로 규정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노지현(경제 03)학우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전학대회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며, “공포하기 위한 기제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 같다”고 말했다. 학생회는 구제불능? 그러나 실제 정치를 학내 정치에 그대로 대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유재명 전 관악 편집장은 “노동조합이 노동 운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이해관계가 걸린 구심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학생 사회 내에서는 이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이해와 요구가 없고 따라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학생회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학생회에서 아무리 구체적인 제도를 신설해서든지 학우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회자되듯 ‘청년 실업이 50만에 육박한 이 때’에 학생회가 하는 사업은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photo2홍상욱씨는 총학생회에서 내부 논의를 외부로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청회 외에 가능한 대중화 방식을 찾아야” 한다며, “공포 방식을 형식화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의제의 문제지,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실질적으로 학생회에서 다루는 의제가 학우들의 관심과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현재 학우들을 배제하는 전학대회 방식에 대해서는 “시스템상의 문제도 존재하지만 대의원들과 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여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사회학과/惡반 학생회장인 장경주(사회 02)씨 역시 “현재 전학대회의 구조가 논의되지 않은 안건이 상정되는 경우가 가능하더라도, 긴급한 상황을 위해 세칙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지난 1학기 자치언론기금과 관련한 자연대 학생회장의 안건이 통과되지 않은 이유는 학우들 간의 논의가 부족했다는 대의원들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세칙의 변경보다는 개인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방향을 보좌해 줄 구체적 기제가 필요한 때 하지만 학생회 선거가 무산되고, 학생회 활동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간다는 등의 사건들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닌 만큼, ‘세월의 추세’일 뿐이라며 방관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와 같은 현상을 또 다시 언급하는 것을 생산적인 논의라고 볼 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 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내버려두는 방임이 아니라 안 되는 활동이어도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구적 장치들이다. 난파되는 배라고 해서 운전대를 놓아버리고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놔두는 것은, 항해할 이유 자체를 없도록 만든다.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배에 장착되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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