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진실사이
안유순(지리 04)『서울대저널』의 모토는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3월호의 주요 기사 중 하나로 등장한 대학생의 재테크에 대한 기사는, 진보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통념상 “대학생의 재테크”와 진보는 그렇게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3월의 『서울대저널』에는 재테크에 대한 기사와 함께 “『서울대저널』에서의 진보”를 고민하는 칼럼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재테크 기사에 대한 변명과 함께 진보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대개 동의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진보라는 개념 자체는 사실 모호해서, 하이힐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담배와 하이힐”기사가 진보적이라면 돈이 관련된 문제가 금기시되는 대학 사회에서 “대학생의 재테크”기사가 나온다는 것 또한 다른 의미에서 진보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의 개념이 애매하다고 해서 “진보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라는 결론에 도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진보라는 것이 애매한 개념이라면 진실을 추구하는 것 또한 진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서울대저널』의 진보”를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비겁하다.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고르고 엮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언론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반면에 진실을 모두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언론은 선택된 진실을 엮어서 독자에게 말한다. 언론이 진실을 고르는 기준 혹은 안목,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방식을 우리는 “논조”라고 부른다. 독자는 진실만을 읽지 않으며, 진실 속에 들어있는 논조까지 함께 읽는다. 『서울대저널』의 모토인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는 이런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목소리”는 언론의 진실성을 말하는 것이고, 『서울대저널』의 “진보를 일구다”는 “『서울대저널』의 논조”와 동의어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서울대저널』이 말하는 진보가 “수많은 진보” 중에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도무지 논조를 알 수 없다는 소리다. “재테크”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테크”와 “하이힐”을 말함으로써 『서울대저널』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독자들은 학내 언론에게 대학생의 재테크도 요구하고 여성문제 또한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실을 고르는 것”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서울대저널』의 강점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엮어나가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즉 『서울대저널』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통 알 수가 없다. 마치 잘못 맞춰진 퍼즐처럼 말이다. 이것은 저번 호 뿐만 아니라 최근의 『서울대저널』의 고질병이 아닐까 한다. “『서울대저널』의 진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렇다면 그 고민이 조금 명확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 그것 또한 여러 가지 진보 중에 하나일 테니 말이다. 다만 “진보보다 진실이 우선한다”라는 약한 소리는 사절이다.‘진보를 일구지 못한’ S-party 기사이석호(외교 00)『서울대저널』 3월호의 ‘문화’면 메인 기사는 S-party를 다루고 있다. 한 언론사의 인턴기자 신분으로 S-party를 취재하고 기사화 한 인연 탓에 필자는 기사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아쉬운 점 때문에 이렇게 독자코너의 한 구석을 빌리게 되었다. 먼저, 기사는 S-party가 “대안적 놀이문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보통 수준을 넘어 “훌륭히 소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를 여러 번 읽어 봐도 필자는 그 판단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인터뷰 멘트를 통해 “(서울대생이)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라는 이미지에서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대학생들끼리의 자발적인 행사라는 점”이 언급되었지만, 판단 근거로는 미약해 보였다. ‘대안적 놀이문화’에 대한 상(像)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사안에 접근하는 기자의 관점 및 기사 방향도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기사가 가진 논리와 타당한 근거의 유무이다. ‘이미지 쇄신’과 ‘자발성’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관악 내 행사는 많아 보인다. S-party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에 앞서 기사는 S-party와 관련된 오해가 많다며 왜곡 보도한 언론 기사를 꼬집었다. 그러나 파티 홍보와 언론의 취재과정에서 왜 내용이 왜곡되었는지 『서울대저널』은 취재했는가? 왜곡의 원인이 “‘서울대’라는 이름에 집중”한 언론 탓인지, S-party 측의 과실인지 확인했는가? 연예인 초청, 총장 축하인사, 본부·총동창회·총학생회 후원 등 불확실하거나 사실 관계가 틀린 내용을 인터뷰와 홍보 게시물을 통해 알린 S-party 측의 행보에 주목했더라면, 더욱 확실한 사실 관계를 기사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사에는 S-party와 KT&G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언급되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KT&G 측은 담배를 직접 제공·협찬하지는 않았지만 S-party로부터 공문을 받아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취지 때문에 일정 금액을 후원했다고 지난 2월 필자의 취재과정에서 밝혔다(KT&G 측은 공문 내용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왜 그 담배만 팔지?’란 생각을 갖고 해당 기업에 확인만 했으면 알 수 있었던 사실이다. 『서울대저널』의 크로스 체크(cross-check)가 아쉬웠다. 기사 부제처럼 “말 많고 탈 많은 S-party”는 방학 동안 있었던 서울대와 관련된 사안이었기에, 기사 채택은 적절했다. 하지만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이자 ‘문화’면 메인 기사로서, 기사는 알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S-party 관련 기사를 읽고윤해석(식물생산 05)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서울대학생들의 ‘호화 졸업파티’에 관한 기사는 진실을 알 수 있는 좋은 글이었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때문에 내용이 과장되고 왜곡되어 결국 파티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질타를 받았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흡연자들을 위해서 구입한 담배 한 박스가 대기업의 거대 지원으로 과장되고 그다지 비싼 가격이 아니었음에도 강남에서 열린다는 이유로 ‘호화’로 둔갑된 것은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여타 다른 대학에서도 흔히 있는 졸업파티 문화가 서울대이기 때문에 왜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서울대생 이라는 중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가지게 됐다. 하지만 파티내용에서는 같은 서울대학생으로서 별로 달갑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제 겨우 학부 2년생이기에 졸업생들의 문화가 익숙할 리 없겠지만 왜 하필 서울대생들만의 문화를 만들려고 강남에서 클럽 파티를 열었는지, 설사 서울대생들은 공부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이 행사를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졸업관련 행사는 거의 없었다는 점과 비록 퇴폐적으로 변할 수 있는 클럽문화를 긍정적으로 잘 승화시켰다지만 아직은 클럽이라는 문화에 눈살을 찌푸리는 세간의 시선을 왜 파악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웠다. 물론 다른 대학의 학생들처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찬성이다. 본인도 물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자 일부러 공부 외적인 취미에 심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생들은 그런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하고 ‘공인’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연예인들처럼 조그만 잘못을 해도 큰 화제 거리가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월의식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그럴수록 항상 겸손하고 배려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또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만의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있지 않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