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명의 핵심은 교육제도의 변화
“동성애에 대해 어떠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문제”
한국과 중국, 그 틈새를 거스르다

“동성애에 대해 어떠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문제”

저널|그간 은유적으로, 또는 ‘코드’로서 삽입되어 암시되던 ‘동성애’ 라는 소재가 최근에는 CF와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이전보다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저널|그간 은유적으로, 또는 ‘코드’로서 삽입되어 암시되던 ‘동성애’ 라는 소재가 최근에는 CF와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이전보다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하나로서 동성애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보시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대중문화산업에서 한 때 불고 있는 ‘트렌드’에 불과하다고 보시는지요.

QIS|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 동성애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회가 좀 더 개방되면서, 보다 폭넓은 소재가 매스컴에서 다뤄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겠죠. 일단 매스컴에서 비춰주면 그것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거나 배척하는 건 모두 시청자의 몫이니까요. 그렇다고 딱히 ‘한 때 불고 있는 트렌드’라고 파악하기도 적절하진 않은 것 같네요. 일단 대상화가 되고 나면, 그 소재가 완전히 대중의 관심을 잃게 되기까지는 계속해서 활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대중’이라 호명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저널|얼마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브로크백 마운틴’ 과 국내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왕의 남자’ 그리고 일본의 연기파 배우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메종 드 히미코’ 를 보셨는지, 보셨다면 각각 느낀 점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QIS|다들 보긴 봤는데, 그리 심각하게 보지는 않았어요. 요즘 동성애 코드가 유행은 유행이구나 하는 생각과, 왜 레즈 영화는 안 나올까 하는 불만 정도만 들었달까요(웃음). 한 가지 분명한건 어떤 영화도 정작 동성애를 현실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성애를 조금만 더 밝고 긍정적으로 표현했으면 하네요. 보는 사람 기분 좋아지게. 제일 인상깊게 본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 이에요. 공간설정이라든지, 잭과 애니스의 옷을 겹쳐놓는 장면과 같은 장치들은 아주 세심하고 정서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고난들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왕의 남자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공길과 장생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그려진 것은 다른 사랑 영화와는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동성애’를 훌륭하게 그렸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상업영화로서, 사랑영화로서 꽤 괜찮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종 드 히미코의 설정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산만했고,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저널|요 몇 년 새,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시트콤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국내 케이블 프로 등에서는 게이를 곧잘 패셔너블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형화된’ 인물상은 과연 적절한지요. ‘게이=트렌드세터’ 라는 인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QIS|게이는 일반남성에 비해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어느 정도는 세련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AF(퀴어 애즈 포크)의 에밋이나 브라이언을 예로 들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경향’에 대한 일반화는 그렇지 않은 게이를 소외시킬 수 있습니다. 일례로, 미소년들의 사랑으로 정형화 되어있는 야오이를 많이 접한 사람들은 ‘동성애는 미소년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라고 일반화시키기 쉽습니다. 이들은 미소년이 아닌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요. 또한 이렇게 ‘트랜드세터’ 로서의 캐릭터로 인해 게이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 구매집단으로 급부상(?)하는 것도 달갑지 않습니다. 예전 모 영화잡지에서 어느 남성동성애자가 “동성애자들이 자본주의시장에서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구매력이 있는 집단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정은 구매력이 없어지면 박탈당하겠지요. 경제력이 충분치 않은 게이를 소외시키고, 또한 구매력이 작은 것으로 추정되는 레즈비언은 인정을 받지 못하겠지요. 진정한 의미의 동성애자해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남성의 동성애에 비해, 여성 동성애는 아예 무화(無化)되어 있는 듯 합니다. 여성의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더 적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QIS|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위치 차이에 기인한 듯 합니다. 보통 남성에게 여성이 성적 대상으로 타자화되는 현실에서는 여성 동성애가 특별히 관심의 대상이 될 것도 없습니다. 외부에서의 관심이 적은 것뿐 아니라, 실제로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게이 커뮤니티보다 성장이 더뎠고, 하위 문화가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상품 시장도 아니고요. 최근 문화 트렌드로서 ‘게이’ 열풍이 불고 있는 데에는 젊은 여성층의 광범위한 지지가 한몫을 하고 있지요. 만들면 잘 팔립니다. ‘레즈비언’은 그렇지 않고요. 마찬가지 맥락에서 여성 동성애는 눈에 잘 띄지 않아요. 여성 자체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높이가 다른 상태에서, 여성의 위치로 내려간 남성(게이들)은 금방 눈에 띄고 희화화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차피 레즈비언들은 더 내려갈 곳도 없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다” 고. 지배적 남성의 위치를 버린 게이들은 더 이상 ‘남성 일반’과는 다른 독자적인 위치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레즈비언들은 계속 ‘여성’일 뿐입니다. ‘여성’도 잘 말해지지 않는데 ‘여성 일반과는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질 턱이 없죠.저널|성정체성을 알게 된 시기는 언제쯤인가요. 그것은 어떤 계기가 발단이 되어 깨닫게 되셨나요 아니면 태생적으로 지각하고 있던 것인가요. QIS|용어정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성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말은, 예를 들어 남성이면 자기가 남성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지요. 게이는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레즈비언은 자기가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동성을 사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성지향성’ 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체로 사춘기를 전후하여 자신의 성지향성을 자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지향성’이 남들과 다른 측면이 있었습니다.성지향성을 자각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또한 ‘자각’일 수도 있고 성지향성의 ‘변형’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희들의 경험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과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저널|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QIS|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분위기가 형성되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요즘의 변화는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기보다는 동성애라는, 그동안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사회의 한 부분이 재조명받았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후로 동성애에 대해 어떤 분위기가 조성될 지는 좀 더 관망해보아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별다른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이겠지요.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했을 때 그 논의는, 이미 나타난 관심을 사람들에게 부각시켜 주는 것일 뿐으로, 보다 심층적인 사회변화의 한 표출으로는 볼 수 있겠으되 그 자체가 대단한 함의를 갖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해서는 과거 나치의 박해 등 역사적인 적대적 사회분위기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파시즘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딱히 ‘동성애’가 아니라 그 안에 무슨 이름을 넣든 가능했던 탄압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무슨 분위기가 형성될 이유가 없겠지요. 만일 성적 소수자들에게 일상생활의 불편이 있다면, 그 불편은 개인생활의 한 부분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대상화하는 데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성애가 다수, 동성애가 소수’인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가 중심, 동성애는 주변’인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성애에 대해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분위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새로운 문명의 핵심은 교육제도의 변화

다음 기사

한국과 중국, 그 틈새를 거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