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일자
브라운관 속 현실의 퍼즐조각들을 찾아서
사람의 마음은 사슬로도 묶을 수 없으리

브라운관 속 현실의 퍼즐조각들을 찾아서

지난 가을, 드라마 이 인기리에 종영된 후 KBS에서는 이어서 를 방영했다.방영하기 전 예고편에 나온‘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잡았던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그런데 한편의 드라마로 치부하기엔 는 현실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다.2004년 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동거’라는 소재는 공공연한 화두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찬반논란까지 이어졌다.

지난 가을, 드라마 이 인기리에 종영된 후 KBS에서는 이어서 를 방영했다. 방영하기 전 예고편에 나온‘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잡았던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한편의 드라마로 치부하기엔 는 현실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다. 2004년 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동거’라는 소재는 공공연한 화두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찬반논란까지 이어졌다. 의 인기비결은 드라마 내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그보다 ‘동거’가 현실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에 등장하는 ‘여성대통령’은 단순히 시청률 높이기용 미끼는 아니다. 최근 「동아일보」에 미국 대선후보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이번 미국 대선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후보들이 등장함으로써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일색의 후보들이 주류를 이뤘던 것과 대비된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이 대선후보로 나오는 것에 반대를 표하는 의견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나타내는 통계조사만 보더라도 다가올 미국 대선에서 최소한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낙선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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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매켄지 엘런은 처음에 단순히 여성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전략의 하나로 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매켄지는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우연히‘여성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이러한 극속 설정은 미국 사회가 아직 선거를 통해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상황에는 준비돼 있지 않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즉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이 보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이상’보다는 ‘현실의 거울’로서의 극 구성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의 제작진들은 여성대통령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를 시청자들을 위해 몇 가지 장치들을 깔아두는 재치를 발휘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극 중에서 매켄지는‘무소속’의원으로 설정됐다. 그녀는 자신의 다른 능력에 대한 인정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여성유권자층의 지지 확보를 위해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선택됐다. 현직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에게 건네는 모두의 한마디는 사직하라는 것이었다. 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일하고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는 없다. 매켄지의 앙숙 네이선 템플턴은 이를 단 한마디로 정리 한다. “이슬람 국가 중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여성대통령의 말을 들을까요?”최근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높아지고 있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갖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과 가정이라는 경계선상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특히 그러한 일이 그녀의 시간 전부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고 할 때,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고민은 흔치 않았다. 이 드라마는 최소한 ‘백악관의 사생활, 권력투쟁’만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지는 않았다.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에피소드 곳곳에서 ‘여성’으로서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사회적인 시선에 비춰 볼 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에피소드 1’에서 매켄지가 대통령 취임연설을 하러가는 중 어린 딸 에이미는 끊임없이 엄마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매켄지의 옷에 토마토 주스까지 쏟아버린다. 그런데도 매켄지는 화를 내기보다는 어린 딸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달래준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딸 레베카는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 중요한 행사에 불참하고, 매켄지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을 언제나 못마땅해 한다. 남편 로드도 그녀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직함없이 부인을 외조하는 퍼스트 젠틀맨의 역할에 불만을 갖고 있다. 매켄지는 극 속에서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진학할지, 사립학교에 진학할지를 결정해야 하며, 어린 딸이 잠에 들지 못할 때 옆자리를 지켜줘야 하며, 때로는 남편이 기죽지 않도록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 한다. 매켄지 역할을 맡은 지나 데이비스는 인터뷰에서 ” 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한 막중한 역할이다. 왜냐하면 매켄지는 최초의 여성대통령 역일 뿐 아니라, 여성대통령이란 문제를 최초로 진지하게 다루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속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의 어려움이 잘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나 데이비스의 열연과 사명감도 한몫했다. photo 2 한편 이 드라마가 꼭 ‘여성 정치인’으로서 견뎌내야 하는 고민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그 외에도 미국의 현실과 관심사가 담겨져 있으며 민감한 이슈들도 다루고 있다. 이런 측면은 이미 시청자와 평단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단적인 예로 ‘에피소드 10,11’에서는 북한문제가 등장한다. 미국의 첩보선이 우연히 북한 영해에 표류해 매켄지가 이를 구조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가까스로 첩보선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구조를 포기해야 한다’, ‘핵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등 극단적인 의견도 서슴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매켄지의 인도주의적인 방법(북한에게 공식사과를 하고 거금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러한 에피소드의 결말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일 뿐 아니라‘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사고방식이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매켄지 엘런은 극 중에서 북한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수뇌부들에게 한마디 한다. “그들은 충분히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 대사를 통해 이 드라마에 깔린 사고방식이 미국우월주의라는 것이 드러난다. 매켄지의 말 속에서는 미국이 북한보다 우월한 건 너무도 명백하니 거론할 여지도 없고, 한번 정도 사과한다고 체면에 손상가지 않는다는 느긋한 우월감이 깔려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팁 하나 더! 실제로 1968년에 이 에피소드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968년 1월에 원산 앞바다 공해 상에서 미국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해군에 의해 납치된 ‘푸에블로호 사건’이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알고 나면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이 드라마가 여성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전파시킨 것은 확실해 보인다. 힐러리의 대선출마와 관련해 음모설에 휘말리기도 했다니, 이 드라마의 영향력은 가히 대단한 수준이었다. 브라운관에는 화려한 백악관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대통령이 있지만 그 안에는 여성의 현실과 미국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과연 놀라운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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